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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장례식

by 안승준

집안 어른의 장례식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왕래가 잦지 않던 친척들을 두루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당연히 그렇겠지만 주된 소재는 고인이 되신 어른 관련이었다. 그분과 어떤 일화가 있었는지 생전에 어떤 말씀을 주로 하셨는지 성격은 어땠는지… 각자가 기억하는 한 사람에 대한 기억은 다양하기도 했다.

나와 가까운 어른이긴 했지만 내 나이 두 배쯤 되는 어른의 어리고 젊었던 날들에 대해서는 이날에 듣는 것이 대부분 처음이었다. 형제들과는 어떻게 지냈고 그의 형제들은 그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부모님이 그로 인해 뿌듯했던 날과 속상하셨던 때는 언제였는지, 어떤 짝을 어디에서 어떻게 만났고 결혼한 이후의 삶은 어떻게 흘러갔는지의 이야기는 이 입과 저 입을 통해 합쳐져 며칠 전 남긴 유언으로 이어지기까지 길었고 방대했다.

가까운 가족인지라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키다 보니 더 많은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고인이 가시는 마지막 자리인지라 좋은 추억들을 대체로 회상했지만, 자세히 듣다 보면 원망과 억울했던 일도 있었고 속상하고 아쉬웠던 내용도 있었다. 가만히 듣다 보면 사흘 동안 그간의 삶을 속속들이 평가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답할 리 없는 그의 자리에서 다른 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솔직하게 그와의 만남을 풀어놓았다. 숨기는 것도 감출 것도 없이 어쩌면 그동안 꽁꽁 숨겨 넣았던 것까지 경쟁하듯 상 위로 얹었다. 오늘이 아니면 더 이상 그 말을 할 수 없는 것처럼 오가는 말들 속에서 그에 대한 내 생각도 다시금 정리 되어갔다. 서로를 마주하고 앉아 있는 가족들은 둘러앉은 다른 모든 이들에게도 각자의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 다만 오늘은 다른 이의 장례식이 아닌 그의 장례 날이었으므로 그를 제외한 다른 이와의 이야기는 조금 덜 내어놓고 있었을 뿐이다.

나에 대해서도 그랬을 것이다. "잘 자랐네."라고 이야기하신 어른도 있고 "오랜만에 보니 더 멋져졌네."라고 말을 건넨 친척도 있지만 나의 날이었다면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조금은 더 솔직하게 오랜 시간 나누었을 것이 분명하다. 나로 인해 즐거웠던 시간도 나누었겠지만 내게 받은 상처와 나로 인해 속상했던 때의 이야기도 술안주로 올랐을 것이다.

만약 고인이 살아계셔서 사흘 동안의 이야기를 모두 들었다면 꽤 깊은 생각들을 가지고 새로운 삶을 다짐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고?'

'그걸 그렇게들 좋게 생각해 줬다니 의외인데!'

'그땐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그 부분은 내가 좀 고쳐야겠다.'

'그렇게 좋아해 준다면 그런 거야 얼마든지 더 할 수 있지.'

모여있는 사람들에게 대답하거나 해명할 수는 없지만, 그리고 다시 살아난다 하더라도 그들의 기대대로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직접 들었다면 적어도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질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나로 인해 오늘 모여 솔직하게 나누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어떤 이야기들이 오갈까 궁금해졌다. 자신 있는 부분도 조금은 있지만 혹시나 하며 섬칫한 후회가 밀려오는 부분들도 많았다.

'조금 더 잘할걸!'

'조금만 더 생각할걸!'

'조금만 더 착하게 살걸'

모인 사람들의 입과 입을 통해 내가 떠올리는 것보다 더 많은 기억이 모여질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나를 보는지가 내 삶의 목표는 아니지만 사흘 정도 진하게 중간평가를 받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생전에 모의 장례식을 여는 이들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불편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굉장히 괴로운 일이겠지만 조금은 후련하고 가벼운 새 마음으로 남은 시간을 살 수도 있을 것 같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평가보다는 다시 한번 노력할 수 있는 지금쯤 중간평가를 받아보고 싶다. 지금 당장 나의 중간 장례식을 열 수는 없겠지만 다른 이들의 작은 이야기라도 좀 더 귀 기울여 들어야겠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없지만 조금 더 나은 사람은 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끝을 마주하게 되고 나를 지켜보는 이들은 그날 나에 대해 솔직한 평가를 나눈다. 우리가 목표로 삼고 가지고 싶고 이루고 싶어 하는 것들은 의외로 그날의 평가대상이 아니다. 고인이 얼마나 많은 재산을 모았는지보다는 어느날 문득 나에게 건넨 따뜻한 한 마디가 그를 떠올리는 장면이 된다.

다른 이의 장례식에서 내가 그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나의 삶을 조금 더 좋은 평가로 옮기는 방법이 보인다. 어른의 장례식에서 나를 진하게 돌아본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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