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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원을 포기하기 위한 노력

by 안승준

걷기만 해도 돈을 주는 앱이 생기더니 요즘엔 누르기만 해도, 열기만 해도 돈을 주는 앱들이 수두룩하다. 출근길의 지하철에서는 함께 같은 앱을 켠 승객이 있는지 확인하고 눌러서 10원을 받고 무료로 제공되는 복권을 긁고 3원을 받는다. 30초 광고를 보면 5원을 주고 천 보를 걸을 때마다 버튼을 누르면 또 3원을 받고 하다 보면 출근길이 바쁠 지경이다. 서너 개의 앱을 옮겨가며 버튼을 누르고 화면을 문지르고 하면 특별한 노력 없이 계속 돈을 버는 것 같은 신기한 기분이 들지만, 모두 모아놓고 세어보면 나의 출근길 40분 동안 내 노동의 대가는 100원이 채 되지 않는다. 그나마 손가락 몇 번 누른 대가라고 생각하면 못 받은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원래 그 시간은 뉴스를 보고 책을 읽던 시간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대체 행동으로 내게 주어지는 대가는 턱없이 소박하다.


사람들의 심리를 세밀하게 분석한 후 만들어낸 마케팅 전문가들의 연구와 설계의 결과물이라 그렇겠지만 많은 사람이 몇십 원 혹은 몇백 원을 벌기 위해 수백만 원짜리 스마트폰을 들고 고급 인력의 노동력을 소모한다. 무료 햄버거 쿠폰을 받기 위해 100일의 시간을 매일 같은 버튼을 누르고 천원을 벌기 위해 수백 번 앱을 여닫은 내 모습을 깨닫게 되면서 단호하게 몇 개의 앱을 삭제했다.


주변의 가벼운 권유와 재미나고 달콤한 유혹으로 가볍게 시작한 나의 앱테크는 생각보다 나의 많은 시간을 앗아갔다. 사람이 매시간 생산적인 일만 할 수는 없지만 투자한 시간을 생각하면 작은 돈을 벌기 위해 투자한 나의 시간과 놓쳐버린 가치는 생각보다 크다. 매일 같은 시간 버튼을 누르는 대신 외국어 한 문장을 읽을 수도 있었고, 앱을 여닫는 시간에 주변의 안부를 물을 수도 있었다. 5천 원짜리 햄버거 하나 대신 몇 권의 독서를 할 수도 있었고 몇백 원의 복권 당첨금 대신 해박한 시사 지식을 얻을 수도 있었다. 남아있는 몇 개의 앱에서는 아직도 “오늘은 방문하지 않으셨네요”라는 유혹의 푸쉬를 보내고 있지만, 10원 벌이 대신 뉴스 기사를 읽고 있는 나의 출근길은 훨씬 더 여유롭고 풍요로워졌다.


며칠 전 바쁘게 오가는 중에 사무실 열쇠를 잃어버렸다. 당장 찾아올 불편함이 머릿속을 맴돌고 불안한 마음은 열쇠가 떨어져 있을 만한 곳에 대한 온갖 가능성으로 나의 모든 생각을 채워갔다. “내 열쇠가 혹시 거기에 떨어져 있을까?”라고 전화를 걸고, 차에 혹시 열쇠가 떨어졌는지 봐달라고 아내에게도 부탁했다. 가방의 물건을 모두 꺼내고 갔던 곳들과 앉았던 의자를 모두 살펴보았지만, 열쇠는 찾을 수 없었다. 금방 다시 열쇠를 찾을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짐작 가는 몇 군데를 살펴봐도 없다는 건 단시간에 내가 열쇠를 되찾을 수 없다는 것임을 나는 인정해야 했다.


내가 해야 할 행동은 몇천 원 정도의 지급과 작은 수고로움으로 새로운 열쇠를 빠르게 복사하는 일이었다. 작은 열쇠 하나를 찾기 위해 여러 사람을 움직이게 하거나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얻게 될 이득에 비해 그 투자가 너무 컸다. 작은 열쇠를 찾는다 하더라도 그 행위는 경제적이지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최소한의 열쇠를 찾으려는 노력으로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면 또 다른 시간과 노력과 관계를 소비하는 대신 빠른 포기와 다른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 옳았다.


시각장애인으로 살다 보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난처한 상황을 종종 마주하곤 한다. 혼자 걷다가 작은 물건을 떨어뜨리기도 하고 색깔을 단서로 장소나 물건을 구분해야 하는 일들도 생긴다. 바닥을 열심히 더듬거나 모르는 사람들을 애타게 불러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많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해야 할 행동은 과감하고 단호한 포기이다. 작은 물건을 찾기 위해 어떤 상태인지도 모르는 바닥을 하염없이 더듬고 있는 것은 내가 목표로 해야 할 일이 아니다. 언제 지나갈지 모르는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기 위해 “이것 좀 봐 주실래요?”하고 목매어 외치는 것도 그다지 좋은 선택은 아니다.


놓치고 포기해도 되는 작은 것들에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앱의 10원짜리 버튼만은 아니다. 작은 것을 과감하게 놓는 것은 우리의 집착이 가려버린 더 큰 것을 되돌려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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