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이 지배하는 사회 속 나는 어떤 인간인가, 어떤 인간이 돼야 하는가
“한국 경제 비극의 씨앗을 보여준다.”
“정부의 잘못된 경제 정책에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다.”
“사실같이 보이는 허구로 위장한 역사 왜곡 영화다.”
IMF외환위기라는 실제 사건에 상상력을 더해 만들어진 <국가부도의 날>, 때문에 이 작품에는 다양한 논란과 평가가 뒤따릅니다. 저는 이 작품을 IMF외환위기라는 상징적 사건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 속 군중, 즉 우리를 조명한 영화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이 작품은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나는 어떤 인간이며, 어떤 인간이 돼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자본주의 사회
자본주의: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이 지배하는 경제체제 (두산백과)
근대경제체제는 자본으로 운용됐습니다. 상업자본주의, 산업자본주의를 거쳐 현대는 금융자본주의 시대입니다. 금융 상품 거래로 창출되는 이윤은 전통적 상품 시장 규모를 압도했습니다. 분기마다 발행되는 투자리포트와 쉴 새 없이 오르내리는 그래프 뒤 어딘가에 존재하는 금융이라는 상품, 그 상품으로 소득을 올리려는 투자자 혹은 투기꾼, 이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경제체제 속 군중들은 이전보다 더 많은 기회와 위기를 마주하게 됐습니다.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사이에 또는 미처 모르는 사이에.
금융자본주의 시장경제 속 위기는 정확한 원인과 시점이 불분명합니다. <국가부도의 날>은 IMF외환위기의 이름을 빌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위기 상황을 제시합니다. IMF외환위기는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원인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대표적으로 충격론과 구조론-, 더욱이 ‘한갑수’로 대표되는 군중들은 이해할 수 없는 사건입니다. 갑자기 발생해 아시아의 4마리 용 중 으뜸이라던 국가를 파산직전까지 몰고 간 IMF외환위기. 영화는 이것이 누군가에게는 위기였고, 누군가에게는 기회였다고 말합니다. 이와 비슷한 사건이 다시 발생한다면 우리는 <국가부도의 날> 속 누구의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4가지 경제주체
시장경제는 가계, 기업, 정부와 외국에 의해 전개됩니다. 우리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각각 역할과 목적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경제생활을 영위합니다. 그러나 이론과는 다르게 유독 소외된다고 느끼거나, 진짜로 소외되는 집단이 있습니다. 가계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대중, 우리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제적 고속 성장은 정부와 기업의 주도로 이뤄졌습니다. 일반 국민들은 이에 대한 몫을 정당하게 분배받지 못했다고 느끼며 정부와 기업에 강한 적대감을 가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영화가 다루는 사건의 사실 여부를 떠나 관객들이 깊이 공감하는 것은 <국가부도의 날>이 오랫동안, 그리고 지금도 느끼고 있는 소외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기 때문입니다.
<국가부도의 날>은 등장인물에 경제주체로서의 개인을 투영했습니다.
1) 가계:
한갑수 등 → 위기에 의해 삶이 파괴된 소시민
윤정학 등 → 위기 속 기회를 포착해 다른 사람의 피해로 부를 축적한 자본주의의 수혜자
2) 기업:
그릇공장, 협력업체 →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되기도 하는 대다수의 자영업자
대기업 → 국가와 결탁해 부정한 이익을 취득하는 기업
3) 정부:
한시현 등 한국은행 통화정책팀 → 국가경제를 수호하는 정의로운 이상적 정부
재정국 차관 등 → 정경유착을 일삼는 부도덕한 정부
4)외국:
IMF,미국 → 자국의 이익(개인의 이익)을 위해 우리나라의 시스템을 악용하는 외국(인)
망막의 시세포는 빛을 전기적 정보로 전환하고, 뇌는 이를 시신경을 통해 전달받아 해석합니다. 이처럼 기능과 역할이 분명한 세포들이 맡은 바를 다함으로써 우리는 살아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인간사회는 그렇지 않다는 점입니다. 정부는 정부이기만 하지 않습니다. 기업도, 정부도 가계와 마찬가지로 개인으로 이뤄진 집단입니다. 주어진 역할과 사익추구가 충돌할 때, 사람들은 갈등합니다.
영화는 인물을 통해 각 경제주체가 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제시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IMF외환위기를 겪고, 다양한 결과를 도출합니다. ‘사실’에 대한 많은 논란이 있지만 그것이 어찌됐든 간에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영화 속 그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그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선택
‘이럴 줄 알았더라면, 나도...’
‘내가 IMF외환위기를 겪었더라면’
관객들은 <국가부도의 날>을 보며 나라면 어땠을까를 생각합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생각에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가 중단되지 않는 한, 영화 속 IMF외환위기는 곧 우리에게 닥칠 다른 모습의 위기 또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해외의존도는 앞으로 더 커질 것입니다. 게다가 북한이라는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변수가 있습니다. 1974년 제1차 석유파동, 1980년 제2차 석유파동, 1997년 IMF외환위기, 2008년 세계금융위기와 현재 진행 중인 부동산문제, 가상화폐, 4차 산업혁명은 모두 ‘국가부도의 날 속 IMF외환위기’입니다. 영화 말미에 한시현이 다시 정부가 되고, 재정국 차관과 윤정학이 기업이 된 것처럼, 우리 중 누군가는 정책을 집행하는 공무원의, 누군가는 경제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기업의, 누군가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지 않은 외국의 역할을 할 것입니다. 영화를 보며 등장인물에 나를 대입해 생각으로만 했던 선택들을 직접 실행할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누구의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의 선택은 어떤 사회를 만들어낼까요? 쉽진 않겠지만, <국가부도의 날>을 보며 욕하던 그 모습만은 아니길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