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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수 Oct 12. 2020

대학시절 대체로 ‘아싸’였는데 그 이유는 술때문이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OT에서 사발로 술을, 그것도 온갖 음료와 섞어서, 그날 처음본 동기라는 사람들과 함께, 선배들이 ‘의리(처음 봤는데 무슨 의리)’를 운운하며, 강제로, 그것도 여러 번, 비위생적으로 ‘맥였기’ 때문이다. 술에 대한 내 최초의 기억이다.


아직도 생각난다. 포도맛 환타가 섞인 그 말도 안되는 사발에 담긴 술(이라고 불리는 것). 폭력적인 위계질서에 치를 떠는 사람이라 당장 학생회를 중심으로 한 ‘인싸’들과 벽을 세웠고(그들이 먼저 선수 칠 것 같았다) 그 이후로 MT건 뭐건 가본 바 없다.


이런 내가 마케팅 소모임에 들어갔다. 어쩌다 보니 들었는데, 역시나 실수였다. 매주 모임을, 내가 주선해야 했고 소모임의 목적은 마케팅 케이스 스터디...개뿔 ‘술’이었기 때문이다. 지겨운 화양리 먹자골목을 몇 번 오가며 결심했다. 이 모임, 나간다.


하지만 천성이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회장까지 맡아버렸다. (나는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그 이후에도 여러번 일을 그르쳤다.) 이상하게 그 모임은 다 우유부단한 사람들만 모여있었다. 그 중에서 내가 가장 진취적이고 결단력있는 사람이었던거다. 회장이 되던 해에 나는 역시 모임에(보나마나 술자리)에 참여하지 않는 학과 회장의 지적을 받고 자진해서 소모임을 해체시켰다. 이정도로 술을 싫어했다.


나는 술을 태생적으로 못 마신다. 분해하는 효소가 없단다. 두 잔만 마시면 얼굴이 단풍잎처럼 빨개진다. 혼자서 테이블 위에 있는, 아니 식당 냉장고에 있는 술을 다 마신 듯한 색이다. 아마 잘 마셨다면, 이런 기억도 없을테다.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대체로 술을 좋아하는 척 했다. 저녁은 무조건 술이 함께 곁들어지는데, 주니어때는 술을 못 마시거나 안 마신다고 할 수도 없을뿐더러 취재원에게 나를 각인시키기도 어려워서다. 이 기자, 주종은 어떻게? 무조건 폭탄이죠. 소폭 가즈아! 깔깔.


새벽까지 술을 마시면서 몸은 힘들었지만 단 한 번도 힘들다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어려서였을까. 아마 술을 마셔서 죽는 것보다, 직장을 갖지 못해 굶어 죽을 확률이 더 크다고 본능적으로 판단한 것일 테다.


최근 코로나19로 술자리가 눈에 띄게 줄었다. 술을 강권하는 사람도 많이 줄었다. 앞으로도 점점 줄어들거다. 술을 못마신다고도 당당하게 얘기한다.


하지만 나는 술을 잘 마시고 싶다. 지금까지 술에 대한 안 좋은 기억만 늘어놔 놓고 무슨 소리냐고 할테다. 정확히는 궁금하다. 나는 술이 왜 땡기는 날이 있는 건지, 취한 기분이 왜 좋은 건지(난 불쾌하다), 삼겹살엔 왜 소주가 생각나는 건지, 퇴근 후 넷플릭스 앞에서 맥주 한 캔만 있으면 왜 행복해지는지 궁금한 것이다. 술 맛을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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