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끌어 모으다 못해 팔아치운 후기
제 나이 33살. 지난 6월에 영끌...하다 못해 영혼을 팔아서 구축 아파트를 매입했습니다. 시장은 혼란스러웠고 결단은 느렸고, 과정은 서툴러서 후회가 됐습니다. 지금도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치 않습니다. 결국 결과론적인 얘기이기에... 저는 투자의 목적이 아닌 실거주 목적으로 아파트 구입을 고민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후기를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01. 서울 아파트에 대한 첫 기억
“오빠, 노원 주제에 무슨 말이 많아 ㅋㅋㅋ” 나는 20대 초반에 들었던 이 말이 지금도 종종 떠오른다. 전역 이후 다녔던 한 학원에서 친해진 그룹이 있었다. 친해지니 밥도 먹고, 술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했는데 종종 사는 동네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A는 B가 노원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종종 저런 내용의 발언을 했다. 말의 뉘앙스로 무시하는줄 알았지 나는 왜 노원에 사는 것으로 무시를 당해야되는지 몰랐다. 노원이 왜? 노원은 나에게 7호선 외곽에 있는 동네,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A는 종종 경기도 안양에 사는 C를 무시하는 얘기를 하곤 했다. 그 말도 당시에는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안양 정도면 내 출신지에 비하면 대도시중의 대도시였다.
다행히(?) 나는 A에게 직접적으로 그런말을 들은적이 없다. 그 이유는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아예 무시당할 꺼리도 안됐기 때문이었다.(는 사실도 나중에 깨닫게 됐다) 나는 학교 근처 다세대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한국은 주거지에 따라서 계층이 나뉘는 사회였다. 강남인지 강북인지, 강남에서도 무슨 구인지, 무슨 동인지, 그 중에서도 신축인지 구축인지 등에 따라서 피라미드처럼 세분화됐다. 어렴풋이 알고만 있었지 체감하지 못했다. 사회생활을 하고, 그것도 한참 지난 후에야 체감하게 됐다.
수년 뒤에 모임에서 만난 A는 결혼을 한 상태였다. 테이블 위에 주먹만한 키링을 올려놨다. 그 키링에는 수입차 열쇠와 한강이 보인다는 래미안 현관카드키가 주렁주렁 매달려있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전혀 궁금하지 않아서 우연히 알게됐다) A는 강남 출신도 아녔고, 어찌어찌 최근 집값이 올랐을 뿐인, 서울만 봤을때 중간정도에 속한 구에 살고있었다.
그냥 웃겼다. 너 내세울게 래미안 아파트 현관 키 밖에 없구나. (물론 나는 내세울게 쥐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이 역시 늦게 알게됐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내 휴대폰에는 삼천여명이 넘는 사람이 저장돼 있다. 아이스 브레이킹으로 사람들은 항상 어디에 사는지를 의례적으로 묻곤 했다. “성수동이요” 하면 사람들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거기 엄청 오른데잖아요? 부럽습니다” “핫한 동네 아닙니까” 부터 시작해서 구체적으로 단지를 묻는 이들이 있다. “어디인가요, 이마트쪽인가요 뚝섬쪽인가요?”
“오피스텔에서 혼자사는데요.” 라고 대답하면 초롱초롱했던 눈빛이 다시 돌아온다. “아 혼자 사시는군요, 그렇다면 부모님은 어디에 계세요?”에서 한번 더 나의 잠재적인 자산수준을 가늠해보는 이들이 많다. 지방에 계신다고 하면 아아-. 여기서 이제 끝. 너는 나보다 아래급지에 사는 사람이야.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판단이 종료된다. 물론 자본시장과 자산시장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는 경우가 많아서 더더욱 그랬을수 있다.
20대 초반에 만났던 A의 행동이 무례하고 이질적이었지만, 사고방식 자체는 자체는 특별하지 않은것이다. 적어도 서울에서는 그렇다. 서울에서는 내가 사는 동네는 나의 인간 수준을 대변하는 하나의 지표가 된다.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선악의 문제는 아니다. 그냥, 서울이라는 동네는 그렇게 된거다.
우리는 계층 나누기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생각해보면 20대 초반에 사람을 만나면 각자 출신 대학으로 미묘하게 열패감을 느끼고 조금은 우월감을 느꼈던적이 있지 않나. 10대, 아니면 그 이전부터 대학서열을 내제외한 사람들이 대학으로 울고웃다가, 직장 간판으로 다시 한번.
그리고 그 이전에 어느 지역에 자가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 것인지에 따라 또 다른 구분짓기가 시작된다. 서울 아파트는 계층을 구분짓는 욕망의 결정체로 느껴졌다. 적어도 주거의 목적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