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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준호 Jun 21. 2020

5월의 정원, 향기를 품다

5월을 보내며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는 5월.

현관 문을 열고 나서다 활짝 핀 클레마티스 붉은 꽃과 마주치고 반가워서 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5월의 정원은 찬란하다.    


맨 먼저 봄을 알리며 대지를 깨우고 정원을 붉게 물들였던 꽃잔디, 철쭉, 영산홍 꽃들이 소리없이 자취를 감추더니 바톤을 이어받은 봄꽃들이 앞다투어 피어났다. 겨우내 아파트 베란다에서 발아되어 싹을 틔웠던 한련화가 노랗게 피었고, 페츄니아는 무성하게 잎을 돋더니 마디마디에서 짙은 자색 꽃잎을 달고 화분가득 탐스럽게 피었다. 갑작스런 꽃샘 추위에 현관으로 들고나기를 반복하며 애를 태웠던 초화화는 어린 솔잎을 땅에 꽂은 듯이 자란 몸통에서 갸느다란 줄기를 세우고 그 끝에 손톱만한 작은 꽃잎을 달고 신비스럽게 하늘거린다.    


봄을 시샘하는 심술을 부리느라 유독 강추위, 강풍이 많았던 올 초봄의 변덕스러운 날씨에 화초관리는 애를 먹었다. 일찍 화단에 심어진 난타나는 냉해로 사경을 헤매다 겨우 소생하여 꽃을 피우고 있으며, 항아리 물 속에 넣어준 부래옥잠은 갑작스런 혹한에 얼어서 세 번만에야 자리를 잡고 자란다. 그런 상처를 딛고 자란 화초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건 인지상정인 모양이다.    


바람이 불어도, 매서운 추위가 와도, 또한 너무 일찍 따뜻해져도 노심초사 손길이 더 필요했던 화초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자라나 정원을 꽃으로 가득 채웠다. 화단 곳곳은 여기저기 알록달록 화려하다. 가히 꽃잔치를 벌이고 있는 것 같다.    


무슨 연유였는지 아내의 눈밖에 나 하마터면 쫓겨날 뻔 했던 키 큰 패랭이는 정원 입구 한 켠을 점령하고 보란듯이 예쁜 꽃을 피우고 맨 앞에서 손님을 맞는다. 작은 바나나 모양의 독특한 꽃봉오리를 매단 백합도 손바닥만하게 큰 꽃잎을 열었다. 해를 넘기며 실내에서 월동한 로벨리아는 보랏빛 고운 자태로 감동을 준다. 범상치 않은 꽃모양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강렬한 인상의 데모르는 오래도록 지지 않고 화단을 지킨다. 작년에 심어둔 카네이션도 빨갛게 피어 마음껏 색감을 발산한다.    


라벤더 큰 키에 눌려 바닥에 바짝 눌러 붙어 눈에 잘 띄지 않는 애기 누운 주름도 자세히 보면 작은 꽃잎이 초롱초롱하여 꽤 매력적이다. 라벤더는 작은 바람에도 춤추듯 흔들리고, 항상 그 고운 향기에 마음을 빼앗긴다.    

개구리 알만한 작은 꽃잎이 하얗게 눈송이처럼 부풀어 피어난 알리섬의 진한 향기는 코끝을 자극하고, 꽃의 향기가 백리를 간다는 백리향도 양탄자처럼 덥수룩하게 화단을 뒤덮으며 자란 꽃무덤 위로 꿀벌들이 꽃송이보다 더 많다. 늦게 생장하면서 애를 태우던 자스민도 엄청 탐스럽게 꽃을 피웠고 그 진한 향기는 춤추듯 온 정원에 퍼져 나간다.    


감나무 아래 숲을 이루듯 피어난 원평소국과 단아하게 모여 하늘로 얼굴을 내민 춘절국은 아내가 가장 아끼는 꽃이다. 춘절국의 자태는 보는 이를 설레게 한다. 잎이나 줄기 사이에 드문드문 피어나는 일일초는 꽃잎의 색감이 예뻐서 볼수록 마음이 편안해진다. 꽃의 종류도 색깔도 다양한 제라늄은 지고 피기를 반복하면서 연일 새로운 기대감을 준다. 디기탈리스도 시작이다. 종모양의 꽃이 굴비를 엮어 놓은듯 나란히 매달려 매일 매일 갯수를 늘려가며 피어나는 모습이 신기하다.     


노란색, 핑크색, 자주색, 붉은색, 흰색의 다양한 꽃들이 축제를 벌이는 5월의 정원에선 걷는 걸음마다 설렘 가득하다.    

말없이 하얀 몸뚱아리를 곧추 세운 백묘국.

키가 높이 솟아 제 몸 가누기에도 힘이 든 샤스타 데이지.

긴 줄기에 빨갛고 큰 꽃잎을 달고서 의기양양한 양귀비 꽃.

작년에 심었던 야생화 뿌리의 새싹, 애기용담.

씨가 흩어져 날리며 발아되어 꽃숲을 이룬 마가렛.

긴 줄기를 자랑하며 번식력 강한 우단동자.

앙증맞은 작은 꽃잎이 품위있어 보이는 사계소국

눈물 같은 꽃잎을 줄기에 이슬 맺듯 매단 휴케라.

꽃 잎이 색깔별로 화려한 리빙스턴 데이지.

한땀 한땀 자라 데크 위까지 올라선 인동덩굴.

점잖은 모습으로 오래도록 변함이 없는 잉글리시 데이지.

수줍어 고개 숙인 모습으로 자주색 초롱을 매단 초롱꽃.

어린 순을 줄기에 달고 화분을 뒤덮은 칼 마삭.

가지 끝에서 바람에 흔들리며 피는 삼지구엽초 꽃.

복주머니 모양의 진분홍색 꽃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금낭화.

불빛에 반사되는 샹들리에 유리구슬마냥 꽃잎이 복슬대는 말발도리.    

온 힘을 다해 생명을 노래하는 이 녀석들은 어떤 인연으로 우리네 식구가 되었을까. 


말 걸어주고, 애태우고, 환희하고, 토닥여 주면서 함께 살아내는 사이 소리없이 우리네 가족이 되어 주었다.    

5월의 정원은 내게 첫사랑을 만난듯 설렘과 깊은 감동을 주고 떠나려 한다. 이제 화단은 또 다른 모습의 꽃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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