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주택에 장독대가 한 몫
어릴적 우리 할아버지께서는 겨울이면 방안에 대나무로 거치대를 만들고 메주를 지푸라기로 묶어 주렁주렁 매달으셨다. 이 메주는 따뜻한 방안에서 바짝 건조되어 단단해지게 되고 그 과정에 어떤 놈은 갈라진 틈새로 곰팡이가 피기도 한다.
따라서 메주가 익는 겨울이면 방안에 문을 열고 들어갈 때마다 묘하고 이상야릇한 냄새에 시달리곤 했다. 그렇다고 진동하는 메주 냄새를 탓하던 시대는 아니었다. 누구네 집이나 다 그렇게 하면서 살았던 시절이었으니까.
아내는 언제부터인가 그 추억의 메주로 직접 된장 만들기에 나섰다. 지금껏 아파트 베란다에서 해오다가 올해부터는 단독 주택에 장독대까지 마련하여 된장 담그기를 시도하며 한층 신이 났다.
콩으로 메주를 직접 쑤진 않고, 이미 만들어진 네모 모양의 메주덩이를 사서 하는 것이니 복잡한 전반부 과정이 생략되긴 했어도 그나마 쉽지는 않은 일이다. 이미 건조된 메주를 생수와 소금에 담궈 숙성을 시켜 두었다가 가르기를 하는 것이다.
'가르기'란 숙성된 메주를 꺼내 부수고 으깨서 치대주면 된장이 되고, 액체는 걸러서 간장으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보통 메주 담근지 40-50일이 되면 가르기를 하는데 너무 일찍하면 메주가 덜 불어 치대기가 힘들고 너무 늦으면 메주가 불어서 풀어져 간장이 맑지 않게 된다. 따라서 꼭 날수에 연연하기 보다는 메주를 꺼내 상태를 보고 가르기 날을 결정하는 것이 좋다.
'된장 가르기'는 먼저 메주를 꺼내 큰 그릇에 담고 이미 담아낸 간장을 다시 조금 부어주며 골고루 치댄다. 으깬 메주는 깨끗이 소독한 항아리에 담아 간장을 잘 부어서 속으로 스며 들어가게 재어두고 숙성시킨다. 간장은 다른 항아리에 체를 대고 부어 이물질을 걸러낸 후 따로 숙성 시킨다.
옛 조상들은 이런 지혜를 어떻게 터득했을까. 실생활에서 경험으로 얻어진 고유의 레시피가 대를 이어 구전으로 전해오는 방식, 그런 것이 전통이 되나 보다.
된장 만들기에 점점 익숙해진 아내는 이제 콩을 사서 삶아 메주 만드는 작업부터 해보고 싶어한다. 그것 마저 성공하면 밭에 콩도 재배하겠다고 나설까 우려된다.
아무튼 가뜩이나 사라져가는 전통을 한가지래도 부여잡고 도전하는 모습이 대견하다. 숙성이 끝나는 내년에는 독특한 아내표 된장 맛에 마음을 빼앗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