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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구랑 Mar 21. 2024

잔기술과 기본기

마케팅 발상법

최근 경기도 시장상권진흥회의 온라인 홍보 대행사 선정 발표회에 참석했다. 여섯 곳의 대행사는 저마다 최선을 다해 효율과 효과를 보장하겠다며 온라인 운영 전략과 실행 방안을 발표했다.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아 선정된 대행사는 트렌드에 맞게 구체적이면서도 실질적인 아이디어가 돋보인 곳이었다. 사실 그들과 박빙의 접전을 벌인 업체가 한 곳 더 있었다. 이 업체는 프로젝트 특성상 시장 상인들의 만족도가 결정적이니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행과 동시에 상인들의 의견을 살피고 수렴한 후속 리포트를 내서 실행에 적용할 것이라는 진지하고 남다른 제안을 내놓았다. 좋은 평가를 줄 만했다.

하지만 망설인 순간은 잠깐이었다. 그들의 신선한 아이디어를 가려버린 것은 발표자의 옷차림이었다. 검정 구두 위로 하얀 양말이 드러나 있었다. 결과가 말해주듯 요즘 보기 드문 촌스러운 패션 감각이 발표 내용을 가려 심사위원들의 평가에 악영향을 준 것이 틀림없었다. 글로벌 색채 전문기업 팬톤사가 발표한 올해의 유행 색채는 피치 퍼즈다. 그들은 복숭아빛의 컬러가 밝고 따뜻한 색조로 아늑한 느낌을 불러와 코로나를 이겨낸 사람들에게 내면의 평화와 외면의 건강을 도우리라 예측했다. 피치 퍼즈는커녕 하얀색 양말에 검정 구두라니. 패션 감각을 언급할 것도 없이 발표자는 설득의 기본을 잊고 있었다. 비즈니스맨의 기본은 호감 가는 인상과 옷차림이다. 말콤 글래드웰이 저서 ‘블링크’에서 밝혔듯 인간의 선택에 첫인상이 미치는 영향력은 결정적이다.

심사를 마치고 점심을 먹기 위해 들른 곳은 심사장 근처 A중국집이었다. 식사를 마친 손님 몇몇이 문을 열고 나와 바로 옆의 한 카페로 들어가고 있었다. 두 집은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관계로 보였다. 가게 안에는 테이블이 널찍한 공간에 듬성듬성 여유롭게 배치되어 있었다. 개인 가구의 증가를 고려했는지 혼밥용 일인용 테이블도 벽 쪽을 향해 따로 설치되어 있었다. 주문은 키오스크로 받았는데 때론 종업원이 나와 주문과 결제를 직접 돕기도 했다. 테이블 위의 플라스틱 알림판에는 SNS에 리뷰를 올리면 탄산음료를 무료로 준다고 적혀 있었고, 벽에 붙은 포스터에는 걸어서 1분 걸리는 B문구 1층 커피 매장으로 가면 맛좋은 커피를 30% 할인된 가격으로 마실 수 있다고 쓰여 있었다.

메뉴는 짬뽕을 주 무기로 몇 가지만 집중해서 취급하고 있었다. 신장개업 집치고는 꽤 많은 사람이 북적였는데 짬뽕 그릇을 받아 든 후에야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자잘한 마케팅이 아니었다. 음식의 본질인 맛이었다. 우선 면발이 찰졌다. 장기간 숙성시킨 면을 주방장이 손으로 치대서 뽑는다고 했다. 국물 속 오징어와 조개는 생물로 조리해서 탱글탱글했고 거기서 우러나온 국물 맛은 신선하고 고소했다. 메뉴판엔 주문 후 조리를 시작하니 좀 기다려 달라고 쓰여 있었다. 얼마 안 가 맛집으로 등극해 단골손님들이 들어찰 듯 보였다.

발표장의 그 프레젠터가 우연히라도 여기에 들러준다면 깨달을 것이 많을 듯했다. 잔기술이 통하려면 기본이 받쳐줘야 한다. 우리나라 축구를 월드컵 4강에 올려놓은 히딩크 감독이 그랬듯이 축구 선수라면 체력부터 다져놔야 선수들의 위치를 변화시키는 포메이션 전략도, 개개인의 드리블과 패스 능력도 날이 설 것이다. 기업 경영도 마찬가지다. 대중문화 추세와 생활 양식 변화를 읽어내 고객의 욕구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마케팅도 중요하지만, 기초가 튼튼해야 성장이 꾸준하게 유지될 것이다. 제품을 알리기에 앞서 제품부터 들여다 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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