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상 트렌드 문장
주례사는 짧지만 인상깊었다. 결혼전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결혼후엔 두 눈을 감으라고 했다. 연애 때는 평생파트너의 자격을 따져야 하지만 결혼 때는 서로의 단점이 보이고 다툼이 일어나니 이럴 땐 눈을 감고 져줘야 상대의 마음을 열고 점수도 따서 여러모로 좋다는 뜻이겠다. 재미있고 신선했다. 발상의 관건은 남다른 관점이다.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른 생각을 떠올려야 한다. 새로워서 어? 하고 수긍되어 아! 해야 한다. 이 방면의 대가는 시인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그들에겐 모두 다른 눈이다. ‘눈은 살아 있다’(눈/김수영). 김수영의 눈은 순결한 양심이다.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 지네(산에 언덕에 /신동엽). 신동엽의 눈은 공허감이다. ’어느덧 밖에는 눈발이라도 치는지, 펄펄 함박눈이라도 흩날리는지‘(월 훈/박용래). 박용래의 눈은 적막과 고독이다. ’찬 서리 눈보라에 절개 외려 푸르르고‘(백자부/김상옥). 김상옥의 눈은 시련과 역경이다. 디지털 시대의 발상력은 여기에 세 가지 조건이 더 붙는다.
첫번째는 구체성이다. 개별 데이터나 정보부터 세밀하고 명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나무부터 제대로 관찰해야 숲의 윤곽을 제대로 그릴 수 있다. 소금을 만드는 것은 햇볕이 아니라 햇살이다. 햇볕은 적외선이라 온도의 개념이고 햇빛은 가시광선이니 조도의 개념이고 햇살은 자외선이라 살균의 개념인 것이다. 그러니 햇빛은 세상을 밝히고 햇볕은 세상을 덥히고 햇살은 세상의 부패를 막아준다.
두번째는 시대성이다. 시대의 흐름을 읽어야 시대의 흐름을 만들 수 있다. 궁수는 바람을 이겨내지만 비지니스 맨은 바람을 계산해서 올라타야 한다. 앞으로도 수명은 늘고 대면소통은 줄어들 것이다. 싱글족과 실버층이 늘어나면 고독은 누구나의 문제가 된다. 혼술 집은 늘어날 것이고 반려견 시장은 더 커질 것이다. 한 백화점엔 반려식물 보관코너까지 생겼다. 시대의 시선을 갖춰야 반보 앞선 처방전이 마련된다.
세번째는 현장성이다. 지난 학기 기말과제는 학교 주변 상점의 이름을 평가하고 대안을 내라는 것이었다. 진짜 마케터는 교수가 아니다. 물건파는 상인이다. 진짜 카피라이터가 금전등록기를 울리는 문장의 소유자인 것처럼. 이론은 장인의 솜씨를 전하는 수단일 뿐 장인의 손길을 넘지 못한다. 아이 가르치는 법을 정리한 책이 아이를 업어 키우며 터득한 할머니의 특별하고도 사려 깊은 방식을 이길수 앖다. 자개장을 제작하는 강연을 듣는 것보다 자개장을 짜는 목수와 마주앉아 그의 손길과 경륜을 몸으로 전수받는 쪽이 순도 높은 습득의 시간을 제공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발상의 훈련법을 하나 보탠다. 글쓰기다. 새가 인간을 위해 비행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하늘을 나는 새를 보고 인간은 비행기를 만들었다. 하늘에 길을 열겠다는 인간의 의지가 작동한 결과다. 창의성은 감각이나 재능이 아니다. 뭔가 이루려고 애쓰는 자가 획득하는 습관의 퇴적물이다. 피카소나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들이 벼락같은 영감, 변덕과 광기 같은 수사로 설명되는 것은 창의성에 대한 모독이다.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에서 진땀을 흘리고 밤잠을 설치며 고뇌하고 결정하고 행동하는 자의 영속적인 자발성, 집중력, 성실성을 간과하지 말라. 이런 관점으로 보면 글쓰기는 발상력을 위한 등하불명의 훈련법이다. 글은 생각의 부유물이자 침전물이다. 그리고 생각한다는 것은 문제를 의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문제를 풀려면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해하고 정리해서 통로를 찾아야 한다. 글쓰기야 말로 문제의 발견, 데이터의 처리, 관점의 발견, 기품 있는 표현이 가미된 창의성의 온전한 단련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