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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구랑 Jan 22. 2024

어깨에 힘빼기

머케팅 트렌드 발상

열심히 일한 사람은 떠날 자격이 있다. 교인이 십일조 헌금하듯 번 돈의 십프로쯤은 여행에 쓰자는 생각으로 방학만 되면 이곳저곳으로 다니고 있다. 낮선 곳에 가면 언제나 번쩍하고 불 밝히는 순간을 만난다. 2019년의 발리 여행에선 끄득이란 충직한 택시 드라이버를 만나 설득이란 내쪽으로 끌어다니는 심리전이 아니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협력술임을 깨달았다. 그렇게 나온 책이 ‘선의의 시대를 여는 설득의 12법칙’이다. 22년 롯데 자이언츠의 마케팅 자문을 맡아 KTX를 타고 오가며 부산 거리에서 영상을 촬영 할 때 얻은 영감으로 ‘요즘 카피 바이블’을 펴내기도 했다. 얼마전엔 휴양지로 유명한 태국 끄라비를 다녀왔다. 스노쿨링을 좋아하는 부부의 입장이 맞아 떨어졌고 뒤죽박죽 쌓인 생각들을 정리해서 두세개의 칼럼거리나 얻어오자는 심산이었다.


끄라비의 아오낭 해변과 라일레이의 프라낭 해변은 기암절벽으로 둘러쌓이고 모래해변으로 이어져 낙원과도 같은 풍광을 드러냈다. 라일레이에서 솟아오르고 끄라비에서 떨어지는 일출과 일몰의 붉은 태양은 놀랍도록 선연했다. 관광객이 몰리는 끄라비 해변은 식당과 가게들로 북적거리고 번쩍였는데 원주민과 관광객들이 적절한 자기 규율아래 자연스럽게 뒤섞여 쓰레기나 고성방가가 보이거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7박 8일의 여정은 머리가 지끈대는 돌발 사태의 연속이었다. 우선 도착하자마자 냉방병에 걸려 해변 근처도 못가고 이틀 동안 침대에서 뻗어버리고 말았다. 두번째 사건은 방안에 틀어박혀 몇일간 작업해서 구글 드라이버에 업로드한 자료가 연동되있는 누군가의 실수로 통째로 날아가버린 일이다. 마지막 결정타는 돌아가는 날 갈아 탈 비행기가 결항된데다 이걸 알아보려고 매달린 저가 여행사의 불친절로 비용도 손해보고 기분마저 잡친 일이다. 절대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지만 찬찬히 되짚어보면 얻은 것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먼저 냉방병 문제다. 온라인으로 발권을 받은 안사람의 스마트폰 와이파이가 방콕 스왓나폼 공항에서 터지지 않아 아내와 말싸움끝에 열이 치받아 벌컥대며 마신 맥주가 빌미가 됐다. 얼음넣은 맥주를 두툼한 파커를 입고 땀 흘리며 들이키고 씩씩대다 차가운 기내로 들어가니 병을 자초한 꼴이었다. 문서를 날렸다고 시차가 다른 서울의 동료에게 문자로도 모자라 서너번씩 전화로 따져 물은 것도 사리 분별의 부족이었다. 이전 자료에 기억을 보태 보수공사를 시작하면 되는 일이고 추궁이 아니라 아량을 보였더라면 배려심 많은 상사가 되었을 것이다. 비행기 결항과 무료 환불건으로 여행사 교환원과 통화때도 위압적인 어투로 닥달한 한 점도 못내 후회다.


몸도 아프고 자료에 돈까지 손해 본 여행이지만 그래서 더 기억에 남을 것이다. 물론 아름다운 순간도 있었다. 라일레이 리조트에서 수영장 바로 옆방을 배정받아 한밤중까지 수영장에 누워 별빛을 바라볼 수 있었던 기억이 그것이다. 어깨에 힘을 빼고 물에 몸을 터억하고 내맡기면 몸이 떳다. 서울로 돌아와 마음을 가라앉히고 결항에 따른 환불 요청을 차분하게 설명하니 저쪽에서도 처리 방법을 찾고 있다고 조곤조곤 설명했다. 어깨 힘을 빼야 물에 몸이 뜨듯 마음의 힘을 빼고 느긋해져야 나이값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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