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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녀미 Jul 30. 2021

내 고양이를 놔두고 남의 고양이 사진을 보다가.

아 나도 고양이 있지. 엄청귀여운 걸로두 개나!

 오전에 잠에서 깨어나 침대에서 핸드폰을 붙잡고 꾸물거리다 보면 반려동물에 대한 인스타 툰들을 자주 보게 된다. 세상의 모든 동물은 제각기 예쁜 구석이 있고, 또 가끔은 정말 유난히도 예쁘거나 귀여운 동물들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사랑스러운 게 집사의 눈으로 보고 묘사한 각자의 반려동물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뒷구르기를 하면서 봐도 귀여운 내 새끼의 수많은 예쁘고, 귀엽고(주로 웃겨서), 사랑스러운 모습 중에서 고르고 골라 애정이 듬뿍 담긴 눈길로 그려내고 묘사했을 테니 다른 것에 비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그런 피드를 하도 많이 봐서 그런지 이제 온갖 유명한 고양이 인스타툰은 어지간하면 다 보여주는 느낌이 들 정도인데 그런 계정의 주인공 고양이들 중 대부분은 성묘이고 꽤 나이가 많은 경우도 있다 보니 병과 싸우거나 세상을 떠나는 고양이의 이야기들이 담기기도 한다. (이슬아 작가는 '내가 이제 쓰지 않는 말들'이라는 내용의 프로젝트에서 '투병'이라는 단어에 대해 고민하다 이제는 '치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고 적었지만 나는 내 고양이가 아프다면 병을 다스리고 함께 살아가겠다는 마음보다는 무조건 병에 맞서 싸워서 내 고양이를 지키고 싶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고양이가 아파서 병원을 가게 되어 휴재한다는 소식에는 수많은 응원의 덧글이 달리기도 하고, 식사를 거부하던 고양이가 다시 뭔가를 조금 먹으려 한다는 소식에 마치 내 고양이가 그런 듯 기뻐하는 사람들도 있다. 검사 결과나 병원에 대해, 아플 때 도움이 되는 음식이나 사료에 대해 정보를 나누기도 한다. 정말 슬프게도 고양이가 하늘나라로 떠나게 되면 글로나마 애도를 표하며 그래도 아이가 집사의 사랑을 많이 느꼈을 거라고, 행복한 고양이로 살다 갔으니 꼭 마중을 나올 거라고 위로한다. 


 인스타 세상에는 아프거나 너무 일찍 (얼마를 살았건 세상을 떠나는 건 언제나 너무 일찍이다.) 세상을 떠난 고양이들도 참 많아서 그런 피드를 보다 보면 눈물을 글썽거리다가 정신을 차리고 얼른 내 고양이들을 보러 가고 싶어 진다. 


 어느새 4살, 6살이 되어서 이제 한창때를 보내고 있는 내 고양이 구름과 보리. 보리가 두 살이 넘어 세 살쯤 되면서부터 보리가 그렇게나 나이를 많이 먹었다는 사실이 언제나 낯설고 가끔 충격적이었는데 (보리가 기네스북에 오를 만큼 오래 산다 하더라도 앞으로 35년 정도밖에 함께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여섯 살이 된 지금은 인터넷으로 보리 구름 이의 사료를 주문할 때마다 보이는 '시니어용 사료' 옆에 붙어있는 '7+'라는 문구가 못마땅하기만 하다. 아니 고작 7년을 살았는데 시니어라니..... 한국어 표기는 더 싫다. 8세 이상 노령묘.. 노령...... 왜 우리 보리가 1년만 더 있으면 노령묘가 되는 건지 생각만 해도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고 뭔가 화가 나기도 하고 그렇다. 


 여하튼 그렇게 아직도 아기 같지만 사실은 너무 듬직한, 임보 하는 진짜 아기인 고양이들과 비교하자면 거의 신선이나 다름없는 보리 구름이 와의 소중한 시간이 지금도 쏜살같이 흘러가고 있기에, 이렇게 침대에서 꾸물거릴 시간이 없다고. 얼른 거실로 나가서 소중한 내 새끼들에게 더 많이 사랑을 전하고 눈을 맞추고 쓰다듬어 주겠다고 생각하며 침대에서 일어난다. 침대에서 꾸물거리는 시간이 한 시간은 되는 것처럼 참 길게도 적어놨지만 실제로 그 시간을 그렇게 길지 않고 보통 5분, 길어야 10분 미만이다. 물론 나를(내가 나와서 줄 밥을) 기다리는 보리구름이에게는 짧지 않은 시간이다. 


 인스타에서 온갖 쓰잘데 없는 것들을 보느라 내 고양이에게 눈길을 주지 않은 시간이 더 길 것 같기는 하지만, 때로는 인스타에서 보게 되는 어떤 이별 이야기들 때문에 나는 더 많이, 자주 내가 언젠가 겪을 내 고양이들과의 이별을 떠올린다. 그때 후회하지 말고 지금 당장 내 고양이를 한번 더 보자고. 털을 빗기며 고롱거리는 소리를 듣고, 조금 미안하지만 꽉 끌어안고 치카를 시키고, 내 고양이들이 더 나이를 먹어 온갖 것들에 시큰둥해지기 전에 낚싯대를 더 많이 휘두르고, 바스락 거리는 비닐 공을 끝없이 던져주고, 실감 나는 연기로 잡기 놀이를 하자고. 사진도 동영상도 지우지 말고, 더 많이 찍으며 우리가 사랑한 기록을 많이 많이 남겨두자고 그렇게 마음먹게 된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엄마가 죽기 전에도 내가 이런 걸 알았더라면. 엄마의 영상을 더 많이 남기고 목소리를 녹음하고. 엄마의 사소한 몸짓이나 말투 같은 것들을 내가 80년이 지나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더 많은 것들을 기록해야 한다는 걸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니 그런 것들은 다 필요 없다고. 한번 더 엄마의 손과 발을 주물러주고, 집안의 무거운 공기로부터 슬금슬금 도망치지 않고 엄마 옆에 누워 엄마가 좋아하는 음악을 함께 들었더라면. 엄마는 하나도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냥 내 옆에 있어주기만 하면 된다고 엄마가 지겨워할 때까지 말하고 또 말하고 엄마를 더 많이 안아줄걸 그랬다는 후회를 이렇게 많이 할 거라는 걸.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그 시간을 충실히 보내며 더 사랑하지 못한 것에 대해 이렇게나 자주, 늘, 끊임없이 되새김질하며 엄마를 그리워할 거라고 알려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제 나는 그럴 엄마가 없어서 소파에서 곤히 자는 내 고양이들의 양치를 시키러 간다. 내일은 더 많이 놀아주고, 일주일째 못 본 손톱깎이를 꼭 찾아서 손톱을 다듬어주고 간식을 준 다음 꾹꾹이 타임도 충분히 가지게 하리라. 그리고 고양이들이 나를 귀찮아하고 쿨쿨 잠만 자더라도 그 사랑스러운 동그란 뒤통수와 펑퍼짐한 궁뎅이에 내 뜨거운 사랑의 눈길을 보내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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