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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녀미 Jan 15. 2021

작고 무방비한 고양이의 잠

내전근이 강한 집사가 무릎냥이를 얻으리라

이 작고 무방비한 회색 고양이.

몸을 웅크리면 내 무릎 위에 쏙 들어오도록 작은 이 고양이는 자주 내 무릎 위에서 늘어지게 잠을 잔다.

무슨 꿈을 꾸는지 손을 움찍거리고 얼굴을 찡그리기도 하면서 깊은 잠을 잔다.


동그랗게 말려 작게 잠을 자다 자꾸 길어지고 늘어져 흘러내리는 이 회색 고양이는 내 다리가 점점 떨려오는 걸 알기나 하는지 자기 맘대로 자세를 바꿔가며 아무런 걱정 없이 잠을 잔다. 이 작은 고양이가 바닥에 떨어질까 걱정하는 것은 온전히 나의 몫. 통통한 엉덩이가 꿍, 하고 바닥에 떨어지지 않게 손으로 살짝 받혀주는 것도 나의 몫. 따뜻하고 말랑한 발바닥 젤리를 겨울밤의 찬 공기로부터 살짝 가려주는 것도 나의 몫. 이 작은 고양이가 편히 잠을 자게 하려고 내 손은 분주하고 내 근육도 힘을 낸다. 


내가 아주 어릴 때에는 나도 엄마 배 위에서, 아빠 무릎 위에서 흘러내리도록 깊은 잠을 잤을 테지만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까마득한 옛날의 일. 


이 작고 무방비한 회색 고양이는 그저 모든 걸 나에게 맡겨두고 내 무릎 위에서 편안히 잠을 잔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인 남편이 팔베개를 해 주어도 팔이 저릴까 하는 걱정에 목에 힘을 빼기가 쉽지 않은데 이 작은 고양이는 내 다리가 저리든지 말든지, 허리가 아프든지 말든지 아랑곳하지 않고 몇십 분이고 나른한 잠을 잔다. 가끔 잠꼬대 꾹꾹이를 하느라 내 옷의 올을 잡아당기고 바지 위에 동그란 침 자국을 남겨놓는 것은 덤이다. 그러다 잠에서 깬 고양이는 홀라당 바닥으로 뛰어 내려가 기지개를 켜고, 그루밍을 조금 하고, 밥을 오독오독 먹고는 다시 내 의자 아래에서 물끄러미 나를 올려다본다. 나의 내전근은 아직 충분히 휴식하지 못했으니 애써 무시하고 틈을 주지 않으면 끄엥, 소리는 내며 내 허벅지를 톡톡 건드린다. 결국 그렇게 내전근 트레이닝 두 번째 세트 시작. 


살다 보니 사는 게 참 별거 없구나, 앞으로도 쭉 이렇게 사는 건가 막막할 때도 있지만 이 작은 고양이가 내 무릎 위에서 잠을 잘 때는 새삼 비장한 기분이 든다. 이 고양이가 언제까지나 이렇게 어디서나 늘어지게 잠을 자는, 버릇없고 무방비한 고양이로 남을 수 있게 해 줘야지. 내가 지켜줘야지. 이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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