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녀미 Jun 16. 2022

엄마에게

엄마, 엄마도 나도 전생이나 후생, 사후세계 같은 것을 믿지 않는 종류의 사람이었잖아. 어쩌면 그런 것들에 간절한 사람들에 대해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같아. 그런데 어쩌지? 엄마가 떠난 후로 나는 그런 사람들을 아주 많이 이해하게 되었어.

내가 마음속으로 엄마에게 말을 걸면 엄마가 듣고 있을 거라는 생각. 어디선가 나와 빙수를 지켜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 나중에 우리 모두가 다 만나게 될 거라는 생각. 그런 것들을 해.


엄마도 아빠도 제사상 같은 거 차리지 말고 그냥 가족들이 모여서 엄마 아빠가 좋아하던 것들 먹으며 엄마 아빠 생각이나 한번 하라고 했었지? 엄마는 내가 엄마 생각을 이렇게 자주 할 줄 모르고 그런 이야기를 했던 모양인데, 나는 그런 날이 아니어도 엄마 생각을 엄청 많이 해. 그래서 오늘은 거의 하루 종일 엄마 생각을 했지. 엄마가 좋아하던 노래를 듣고, 엄마가 좋아하던 음식에 대해 떠올려보고 (이건 정말 어려웠어. 왜 그렇게 여기서 구하기 어려운 음식만 좋아한 거야?), 옷장에서 엄마의 옷들을 보며 조금 만지작 거렸어. 엄마의 팔찌와, 귀걸이와, 향수에도 조금 오래 눈길을 두었지. 내가 언제나 쓰는 엄마의 그릇과 온갖 살림살이도 오늘은 왠지 조금 더 애틋했고 말야.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하며 조금씩 울었어. 


그래도 평소엔 엄마 생각에 울지 않은지 꽤 되었어. 벌써 여섯 해가 지났잖아. 

어느 해에는 유월이 되는 것조차 두려웠고, 어느 해의 유월에는 밤중에 자다 깨서 거실로 나와서 혼자 울었어. 흐린 날이 많았던 어느 유월에는 얕고 넓은 우울의 늪 속에 있는 것 같았고, 맑고 화창한 유월의 어느 시기에는 세상에 엄마가 없는데 날은 이렇게 좋다니. 배신감을 느끼기도 했지. 

올해는 좀 나은 편이야.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유월을 보내고 있었어. 오늘만 빼고. 아마 내일은 다시 괜찮을 거야. 집에는 빙수도 있고, 보리구름이와 아기 고양이들의 예쁜 짓들을 보면 시간이 아주 빨리 가. 


문득 구석구석 내 손길이 닿은 이 집에 엄마가 온다면 어떨까, 생각해봤어. 

엄마는 구름이를 많이 예뻐했을 것 같아. 보리는 엄마를 기억할까? 아마 못 할 테고 엄마도 보리를 실제로 보면 너무너무 커서 깜짝 놀랄 거야. 빙수와 나에게도 왠지 '너네도 늙었구나' 하며 웃겠지. 엄마를 많이 닮게 된 내 손을 잡아보고는 손이 왜 이렇게 미워졌냐며 속상해했을까? 그러면 나는 이 손으로 일궈낸 이 집의 풍요에 대해 엄마에게 자랑하고, 맛 보여 줄 거야. 이 손이 내 몸과 마음을 얼마나 강하게 만들었는지도 조곤조곤 이야기해주고 싶어. 어쩌면 말하지 않아도 엄마는 다 알고 있을 그 많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느라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겠지. 


엄마는 우리 집의 구석구석을 살펴보고는 이 많은 것들을 어떻게 다 이고 지고 사냐고 잔소리를 했을지도 몰라. 아니, 분명히 그랬을 거야. 이건 대체 언제 쓰기나 하냐고, 안 쓰는 건 얼른 버리라고 말했을 거야. 엄마는 화정언니 집에 가서도 주기적으로 옷장을 뒤엎어 '이건 버리고, 이건 안 입으면 나 주고' 하며 옷들을 정리했다고 했으니까. 화정언니가 그 이야기를 하면서 얼마나 웃던지. 엄마의 시선으로 보는 나와 빙수의 집이 궁금해. 이곳의 어떤 점들을 좋아할까, 어떤 점을 대견해하고, 어떤 것들을 또 몰래 갖다 버릴까. 틈만 나면 물건을 정리해 갖다 버리던 엄마 아래에서, 어떻게 이런 딸이 태어난 걸까? 나는 우리 집에서 자란 아기 고양이의 오래된 털공 하나조차도 버리지 못하는데 말야. 어제도 친구에게서 받은 목베고니아가 무럭무럭 자라서 잎을 정리하는데 그 잎도 버리지 못해서 잎꽂이를 해 두었지 뭐야. '같은 용도의 물건이 여러 개 있을 필요는 없다' 고 생각하는 엄마는 분명 말하겠지. '얘는 똑같은 애가 세 그루나 있는데 더 늘려서 뭐하게?' 왠지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해. 


나는 사실 엄마 기일을 챙기는 것에 대해 자꾸 미루곤 해. 

나는 엄마와 헤어진 날이 아니라 엄마와 만난 날을, 그리고 엄마가 세상에 온 날을 기념하고 싶어.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미루고 미루다가 저녁 메뉴를 결정했지. 엄마가 좋아하던 것들 중에서는 왜 내가 뚝딱, 차려낼 만한 음식이 없는 걸까? 바로 떠오르는 건 아구찜과 전어회, 회냉면인데 나와 빙수는 먹지도 못하는 것들이잖아. 애초부터 음식에 대한 관심이 많지도 않은 엄마니까 내가 뭘 차려도 상관없어할 것 같아서 빙수와 나는 연어를 사서 회를 조금 썰고, 잡채를 조금 했어. 물론 오늘 한 잡채가 적은 양은 아니지만, 엄마가 하던 양에 비하면 반도 안 되니까 조금이라고 할게. 사실 김밥을 쌀까, 하다가 빙수가 사케를 사 온다고 해서 술안주에 조금 더 어울리는 잡채로 메뉴를 바꿨어. 빙수가 다 올 때가 되어서야 당면과 건표고를 불렸지. 당면을 불리기에는 괜찮았는데 표고를 불리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는지 잡채를 다 완성하고 나서도 표고가 덜 불어서 꼬독꼬독했지 뭐야. 내가 거의 모든 잡채를 다 좋아하긴 하지만, 그래도 엄마의 잡채는 유난히 맛있었는데 사실 이젠 그 맛도 잘 기억이 안 나. 이젠 내가 따라 하는, 엄마가 잘하던 엄마의 음식들이 그냥 내 입맛과 방식으로 적당히 변화해 굳어져 버린 거겠지. 몇 가지 만이라도, 엄마가 하던 그때 그대로의 음식 맛을 느낄 수 있게 레시피를 받아 적어두었으면 좋을 텐데. 아마 엄마 잡채의 고기는 내 잡채보다 적었을 거고, 설탕도 적게 들어갔을 것 같아. 색깔은 어땠었지? 조금 더 연했던 것도 같은데. 시금치와 당근이 아주 많아서 좋았는데, 나는 오늘 당근을 많이 넣는다고 넣었어도 부족하더라고. 이럴 줄 알았으면 엄마 옆에서 더 자주 엄마의 요리를 배워둘 걸. 

아, 오늘 빙수가 사 온 사케는 마음에 들었어? 엄마였다면 잡채나 연어가 없이 에다마메만 가지고도 남은 사케를 다 마시고도 남았을 거야. 고래가 그려진 병의 라벨도 엄마가 좋아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 엄마가 자주 이야기하던 빙수의 미적 감각에 대해 다시 감탄하고 '그런데 왜 얘랑 결혼을...' 하며 놀리듯 웃었을지도 몰라. 


건강하게 쉰여덟 살이 된 엄마의 모습이 궁금해. 어떤 옷을 입고, 어떤 헤어스타일을 하고 다녔을까? 설마 여전히 숏컷을 하고 하이힐을 신고 다녔을까? 여전히 그렇게 예쁜 옷을 입고 (여기서의 내 옷차림에 대해서는 어떤 의견을 냈을까..?) 호탕하게 웃으며 현명하고 지혜로운, 조금 해탈한 사람 같은 쿨한 발언을 할까? 내 친구들에게는 아직도 '이모가~' 하고 스스로를 지칭하고, 빙수에게는 '수빈아' 하고 부를까? 뭔가 '장모님'이 된 엄마의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어서, 아무래도 빙수와 전형적인 '장모-사위' 관계가 되었을 것 같지가 않아. 어딜 가서도 빙수를 '우리 사위' 라거나, '이서방'이라고 지칭할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여전히'우리 수빈이' 아니면 '우리 딸 남자 친구... 가 아니라 남편' 정도로만 말할 것 같기도 해. 

나와 빙수가 마흔, 엄마가 예순일곱 살쯤 되면 어떨까? 나처럼 빙수의 스무 살을 기억하는 엄마니까 '어머 너희가 벌써 마흔이라니..' 하며 놀라고는 마흔 살 빙수의 얼굴에 남아있는 앳된 모습을 끄집어내겠지. 엄마가 스물다섯 살의 내 얼굴에서 아기 때 모습을 찾아냈던 것처럼 말야. 다 같이 노래방에 가면 엄마는 그때도 '애인 있어요'를 열창했을까? 할머니가 된 엄마의 손을 잡고, 역시 할머니가 된 이은미 콘서트에 가는 상상을 하곤 해. 


엄마, 엄마는 스스로에 대해 '모성애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자주 평했잖아. 단 한 번도 엄마의 사랑을 의심한 적은 없지만 조금 특별한 스타일의 모성애를 가졌던 것만은 분명해.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엄마를 너무나 존경해. 나와 빙수는 아직 아이 생각이 없지만 아이를 갖는다는 것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나누긴 하거든. 매번 그 결론이 '이 세상에서 굳이 아이를 낳고 잘 키울 자신이 없다'는 방향으로 나긴 하지만 말야. 어떻게 엄마는 나와 빙수가 결혼을 한 그 어린 나이에 나를 낳고 키웠는지, 스물일곱의 엄마를 만난다면 정말 물어보고 싶어. 그때의 엄마를 만난다면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아주 많아. 아니, 그냥 몇 살의 엄마를 만난 대도 아주아주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이렇게 하루가 또 지나가네 엄마. 이런 날들을 아주아주 많이 보내고 견뎌야 하는 걸까 가끔 많이 두려워. 

6년이 지난 지금도 내가 꿈을 꾸는 거면 좋겠고, 꿈에서 깨어나면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가서 예전처럼 엄마의 철없는 딸로 엄마와 투닥거리고 싶어. 엄마의 '으이구, 이 호랑말코야. 꼭 너 닮은 딸 낳아서 키워봐라' 하는 말을 듣고 싶어. 언젠가 나도 그 말을 누군가에게 하는 날이 올까? 

엄마, 내가 만약 아이를 낳는다면 엄마가 엄마로 살며 느꼈던 온갖 기분과 감정들에 대해 배우며 엄마 생각을 너무 많이 하게 될까 봐 두려워. 


엄마, 여기는 이제 막 여름이 시작되고 있어. 엄마가 좋아하는 가을 날씨는 여기에선 연말이 지나고 1월이나 되어야 조금 느낄까 말까 해. 엄마 생일인 9월은 말할 것도 없이 한여름이지. 몇 달 후에 있을 엄마 생일에는 조금 덜 슬픈 마음으로 상을 차리고, 조금 더 웃으면서 빙수와 함께 좋은 사케를 마실게. 

keyword
작가의 이전글 나는 요가를 잘 모르지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