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그냥 한다.
어제는 요가를 빼먹었고 오늘은 갔다.
그저께는 갔지만 반쯤은 엎드려있거나 누워있다시피 했다. 내일은 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요즘 한 주에 네 번은 요가를 하려고 노력한다. 가기는 주로 귀찮고, 막상 하면 주로 좋은 요가는 이제 일상의 한 부분처럼 되었지만 여전히 나는 요가를 잘 모르고, 그런데 그냥 한다.
사실 살면서 알고 하는 게 별로 없다. 요가보다는 훨씬 오래 한 클라이밍도 뭐 알고 하는 건 아니니까. 사실 함께 사는 보리구름이도, 13년째 사귀고 있는 빙수도 내가 모르는 고양이나 모르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잘 안다고 할 수도 없다. 생각해보면 인생은 그냥 계속 뭐 잘 모르는걸 계속 잡다하게 하다가 가는 것 같다.
그래도 어쩐지 요가는 유난히 모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도..... 그냥 한다.
요가를 처음 시작한 건 클라이밍을 잘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어깨 힘은 약하고, 키도 크지 않은데 팔도 짧아서 유연하기라도 하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마침 암장에 요가 클래스도 늘 있으니 한번 들어보자 했던 것 같다.
몇 년이나 지났지만, 첫 수업에서 얼마나 당황했는지가 아직도 생생하다.
다운독 자세에서 다들 뒤꿈치가 바닥에 어느 정도 가까이, 또는 닿아 있는데 나는 거의 까치발 수준으로 발 앞꿈치만 닿아 있었다. 그러고도 무릎은 왜 펴지질 않는지. 어깨는 또 얼마나 아픈지.
또, 한국어도 들어도 알아먹기 어려울 것 같은 설명을 영어로 들으니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혼자만 엉뚱한 자세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싶어 다른 사람들의 움직임을 보기 바빴다.
요가 강사는 나에게 '목의 움직임'이 너무 많다고 했다. 실제로 내가 목이나 자세에 신경을 안 쓰고 있었기도 하겠지만 아마 거기에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보느라 더 그랬을 가능성이 크고, 요가 스튜디오에 거울이 없었던 샌더원에서의 요가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도 그래서였다.
'스트레칭' 개념으로 시작했던 요가는 생각보다 많은 근력을 요구했다. 내가 근력 운동을 안 하는 것도 아닌데 요가에서의 근육은 조금 달랐다. 나한테 있는 줄도 몰랐던 근육을 쓰느라 근육통을 앓기도 했다. 요가를 시작하고 몇 개월이 지나고 요가는 나에게 '운동'에 더 가까운 무언가가 되었다.
그럼 요즘 나에게 요가는 뭐랄까.. 이젠 스트레칭도 운동이 아닌 준비 또는 의식에 가까운 느낌이다. 요가를 '수련'한다고 말하는데 나는 너무 쪼랩이라 수련은 너무 거창한 것 같고, 그냥 내 몸으로 하는 어떤 의식 같다.
평소에도 내 몸을 가지고 살지만, 심지어 그 몸을 열심히 조져가며 클라이밍도 하고 서핑도 하지만 그건 어떤 목표(클라이밍이라면 완등, 서핑에서는 파도를 잡아 타는 것)나 즐거움을 향한 것이라 내 몸은 뒷전인 경우가 많다. 클라이밍을 하다 손가락이 아파도 '아이고 또 이러네' 하고 말고, 어딘가를 쓸리거나 부딪혀 생긴 상처나 멍을 보는 것도 운동이 끝나고 몸이 식고 난 뒤일 만큼 목표를 향해 달리느라 내 몸을 잠시 잊는다. 어려운 동작을 할 때는 모든 움직임을 미리 시뮬레이션하고 그게 착착 이루어질 때의 쾌감도 있지만 정작 내 몸이 어떻게 느끼는지는 조금 무시한다. 때로는 숨을 쉬는 것도 잊을 정도이니, 손목이나 팔꿈치, 무릎 등의 관절이 '야 이거 아니야 임마..!' 하고 외치는 소리는 당연히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요가는 가만히 누워서 내가 들이쉬고 내쉬는 숨을 느끼는 걸로 시작해 모든 동작 하나하나에서 내 몸의 소리를 듣는다. 가끔은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내 심장 박동을 느낀다. 힘을 줘야 하는 곳에 주고, 힘을 빼야 하는 곳에는 빼고 있는지 수시로 체크한다. 힘의 강도뿐만 아니라 방향도 세심히 체크한다. 어깨나 골반이 잘 정렬되어 있는지, 견갑골이 적당한 강도와 올바른 방향으로 조여지고 있는지, 허리가 과신전 되어있지는 않은지. 내전근에 단단히 힘을 주고 다리의 안쪽을 들어 올리고 있는지를 느끼며 동작을 이어나간다.
클라이밍에서는 세터가 의도한 베타를 깨는 건 일상이고 때로는 몸에 올바르지 않은 (무리가 되는) 자세를 하면서라도 완등을 하고, 웨이트 운동을 할 때에도 자세가 무너지는 순간까지 무게를 들지만 요가에서는 내가 집중할 수 있는 만큼, 밸런스를 잃지 않을 만큼만 한다.
허리를 과신전하면 더 낮은 체어 자세를 할 수 있고, 골반 정렬을 깨고 다리를 외회전 하면 더 높은 스텐딩 스플릿을 할 수 있지만 내가 그런 걸 하려고 요가를 하는 게 아니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내 몸이 뭐라고 하는지에 더 귀 기울여 본다.
가끔은 내가 모든 걸 잊고 엉뚱한 힘을 줄 때도 있는데 좋은 요가 강사는 그런 부분을 잘 짚어준다. 아마 나뿐만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다 그러고 있는 모양인지 어깨를 귀에서 멀리 내리라고, 혀와 턱에 힘을 빼라고 말해줄 때가 많다. 어깨에 쓸데없는 힘을 주는 일은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꽤 자주 내가 얼마나 이 악물고 요가하고 있었는지를 깨닫는다.
요가 수업의 첫 5분 정도는 호흡하며 가볍게 몸을 데우고 이제 막 시작했다는 느낌이지만 가끔은 '와 너무 힘든데...?' 싶어 시계를 봐도 겨우 십오 분 남짓 흘러있는 날들이 있다. 모든 운동이 다 그렇지만 (운동이 아니라고 했으면서) 첫 20분이 가장 힘들어서 첫 차투랑가는 거의 무릎을 대고 한다. 손의 위치도 많이 내리지 못한다. 차투랑가 뿐만이 아니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거의 모든 시퀀스에 포함된 기본자세들을 수업 초반부터 반복하며 내 몸이 조금씩 데워지는 과정을 알아차려 본다.
아직 어깨의 피로가 풀리지 않았구나, 오늘 힙이 유난히 타이트한걸 보니 너무 많이 앉아있었구나 하며 몸의 컨디션도 체크한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부위는 조금씩 더 공을 들여 움직여본다. 물론 그럴 마음의 의지가 있는 날에나 가능한 일이다. 몸 컨디션뿐만 아니라 마음도 조금 피곤한 날은 그제처럼 모든 동작은 다 쉽게 변형해서 하거나, 그마저도 안 되면 시도 때도 없이 차일드 자세를 하며 호흡을 고른다. 요가는 그래도 되는 게 참 좋다. 몸이 아픈 게 아니라 그저 컨디션이 안 좋을 뿐이라면 그만큼만 하는 요가도 안 하는 것보다는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다른 운동이라면 안 하는 게 더 좋은 경우에도.
그렇게 '뻔한' 자세들을 한 시간 동안 돌아가며 반복하다 중간중간 뭔가 끼워 넣거나 변형하는 게 전부인데, 어쩐지 몸은 그 한 시간 동안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느낌이다. 첫 차투랑가를 겨우겨우 몸을 끌어올리고 일으키고 당겨서 의지를 가지고 했다면, 그 차투랑가를 포함한 몇 개의 동작으로 이루어진 시퀀스를 몇 번 반복하고 나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먼저 간다. 어떤 날은 심지어 아주 가볍게 간다. 내가 이런 푸쉬업이 된다고? 내 다리가 이렇게 가볍다고? 따끈하게 데워진 몸이 훌훌 날아 가는데 의식이 엥? 하고 영문을 모른 채 끌려가는 느낌이다.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단단한 몸에 약간은 말랑한 정신. 그런데 모든 게 단순해서 지금 이 순간만이 중요하고 충만한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 그럴 때는 주로 눈을 감고 그 순간을 즐기지만 눈을 떠서 거울을 보게 되면 내가 엄청 행복한 얼굴로 웃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런 순간들이 늘 있는 것은 아니고 여전히 요가의 어떤 정신적인 면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요가는 이제 나에게 스트레칭이나 운동만은 아닌 것 같다. 이걸 취미의 영역에 두어도 될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오래 즐기는 취미 중 하나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