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녀미 Feb 05. 2024

보리에게

보리야, 네가 가고 여기엔 비가 많이 와.

네가 가고 나는 많이 잤고, 많이 울었고, 또 조금은 네 사진이나 구름이와 달래를 보며 웃기도 했어.

엄마를 보내고 나서도 그랬지만 이렇게나 슬픈데 또 배가 고파서 밥을 먹고, 가끔씩은 모든 걸 잊은 듯이 다른 생각에 집중하기도 하는게 너무 놀라워. 

하지만 그보다 훨씬 자주, 틈틈히 멍해지고 몇시간에 한번씩은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나. 


네가 갔는데도 우리는 구름이와 달래에게 사줄 캣 휠을 고르고, 낚싯대를 휘두르지만 그러다 벽장 안에 쌓여있는 네 간식들을 보면 정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아. 슬픔으로 인해서 정말로 가슴이 아플 수 있구나. 누군가 가슴 위를 짓밟고 쥐어뜯는 것 같은 통증이 정말로 느껴지는구나를 다시 느껴.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천진하게 긍정회로를 돌리던 나는, 틈틈히 식욕이 없을 너에게 줄 츄르를 백개나 샀잖아. 일본에서 가져온 것과는 달랐는지 어쨌는지 네가 마음에 들어 하지는 않았지만. 

아빠가 가져온 수십마리의 동결건조 열빙어도 야무지게 소분된 그대로이고 아직 비닐 포장을 뜯지도 못한 깃털 장난감이 열개는 되는데. 유리병에 담긴 레몬 사탕 역시 한가득 남아있는데. 이 모든 것들이 세상 까다롭고 사랑스러운 내새끼 너를 위한 거였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츄르도, 템테이션도, 열빙어도, 장난감도, 레몬사탕과 비닐봉지도 아끼지 말걸. 모든 것들이 이렇게 한가득, 뭣도 모르는 동생들의 몫으로 남아버리고 말았네. 


보리야, 나는 네가 정말정말 너무나도 그리워서 죽을 것 같아. 집 아무 구석에서나 네가 한가롭게 그루밍을 하다 내가 뭘 하나 보러 올 것 같고, 내가 맥없이 침대나 소파에 누우면 네가 궁금하다는 얼굴로 내 배 위에 뛰어 올라올 것 같아. 화장실에 갔다가 나올 때 너에게 고맙다고 인사해야 할 것 같고, 옷방에 들어갈 때에는 냉동실이나 서랍 위에 네가 있지는 않을까 심장이 덜컹 해. 그리 길지도 않았던 간병생활이 조금은 익숙해져 있었는지 안방 문이 닫혀있는 걸 보면 네가 편하게 쉬고 있는지 궁금해서 인사하러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

하지만 방 안에도 어디에도 너는 없고 옷 방에 잔뜩 깔려있던 담요와 전기매트도 치워서 방 안은 싸늘하고 고요해. 


나는 정말 바보같이 최소 반년, 어쩌면 몇 년 정도는 너를 간병하게 될 줄 알았어. 올해는 캠핑이나 여행도 없겠지, 네가 수술하고 오면 배변패드를 여기저기 깔아주어야 할까, 주사기를 넉넉히 사 두는게 좋을까, 하는 것들을 상상했어. 그런데 고작 이틀만에 떠나는건 정말 너무해 보리야. 마음의 준비를 했어야 했는데 안 한 내가 잘못한 걸까? 하지만 어떻게 그 일주일 사이에 마음의 준비를 할 수가 있겠어...


우리 가족 중에서 이 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보리야. 구름이와 달래가 태어나기 전에도, 나와 빙수가 밖에 나가서 머무는 동안에도 보리는 이 집을 지켜주고 있었지. 병원에서 검사들을 마치고 집에 왔을 때 보리가 이 집을 편안해하는게 느껴져서 너무 좋았다고 빙수가 말했어. 내가 많은 애착을 갖고 관리한 이 집을 보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잖아. 이 집에서 떠날 때 슬플 이유가 이미 열댓가지는 되는 것 같은데 네가 이 집만 사랑하고 떠나버려서 나는 다른 집에 갈 일이 벌써부터 두려워. 이 집 모든 곳에 머무르는 네 모습이 이렇게나 눈에 선한데, 네가 모르고 너를 모르는 장소에 가서 내가 행복할 수 있을까? 그 곳에서도 너를 이토록 생생히 그릴 수 있을까? 


보리야, 나는 말 그대로 시간을 견디고 있어. 늘 시간이 너무 빠르다고 아쉬워했던 나인데 네가 진단을 받고, 떠나고, 오늘까지 이어진 이 모든게 겨우 일주일 사이의 일이라는게 믿기질 않아. 또 얼마나 시간을 보내야 조금이라도 덜 울면서 널 떠올릴 수 있을까 싶은데, 시간이 정말 너무너무 느리게 흘러 보리야. 그런데 그 와중에도 달래와 구름이의 시간은 사람의 시간보다 빠르게 흐르고 있으니까 그것도 두려워. 


너무너무 사랑해 보리야. 그리고 너도 나를 정말 많이 사랑하고 좋아했다는걸 알아. 정말 매 순간순간 다 알고 있었어. 네가 싫어하는 온갖 것들을 해도 뒤끝없이 나를 찾던 너. 여덟살이 되어서도 아기가 엄마한테 하듯 소리없이 울고, 꾹꾹이를 하고, 그릉거리고, 한쪽을 내게 맞대고 보내준 시간들을 절대로 잊을 없을거야. 네가 나를 위로해주었던 많은 밤들과 우리가 투닥거리고 화해하길 반복하며 쌓은 우정과 사랑, 신뢰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하고 감사할게. 


작은 앞 이빨로 앙, 하고 내 손가락을 무는 사랑스러운 내 고양이. 

혼내면 말대꾸하며 꼬리로 바닥을 팡팡 치는 금쪽같은 내 고양이. 

너무 사람같은 고양이라서 이번 생이 아홉번째 였을까봐 조금 겁이 나지만, 그래도 또 고양이로 나에게 와줘 보리야. 네가 내 첫 고양이라서 내가 부족한게 너무 많았으니까, 다음에는 더 잘 하도록 노력할게. 

내가 꼭 알아챌게. 언제 어디서 네가 오더라도, 보리가 왔구나 하고 너를 안을게. 



매거진의 이전글 냉이, 달래, 쑥 육아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