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에이에서의 열 여섯번째 임보. 43, 44, 45번째 고양이.
맥북 메모를 정리하다 찾은 임보 기록.
냉이 /여
달래 /여
쑥 /남
2023년 3월 28일 생.
첫 만남 2023년 3월 31일.
아이들이 온 날, 아이들의 묘생 3일차 날.
이렇게나 작은 고양이라니.
배에 탯줄이 달랑달랑 달린 작은 고양이 세 마리가 우리 집에 왔다.
5일차.
탯줄이 세 개,
손톱만큼 작고 아직 열리지 않은 통통한 귀가 여섯개,
아직은 전진밖에 (그마저도 겨우겨우 배밀이를 하며) 못하는 다리가 열 두개,
바들바들, 새끼손가락보다도 짧은 꼬리가 세 개.
부드럽다 못해 쫀득하게 느껴지는 발바닥의 젤리는 거의 투명하다시피 느껴지고
그마저도 발가락 각각의 젤리는 쌀알 반 개만큼 작다.
눈도, 귀도 열리지 않았지만 냄새는 맡을 수 있어서 분유 냄새를 따라, 고개를 돌리고
젖병을 빨다가도 금새 잠에 들지만 이마를 톡 건드리면 다시 빽- 하고 울며 고개를 들기 무섭게 전진한다.
3월생이라고는 해도 이상하게 추웠던 엘에이에서, 이 꼬마들의 엄마는 어떻게 임신 기간을 보내고, 출산을 하고, 삼일간 다섯 아이들을 지켜냈을까. 그리고 왜 아이들만 센터에 오게 되었을까. 엄마 고양이는 잘 있을까. 정말 말 그대로 핏덩이였을 다섯 아기고양이와 떨어져서.
9일차 밤.
설사가 멎었다가, 다시 하다가 한다. 이제는 셋 다.
달래는 이러다 배가 터지겠다 싶을 만큼 먹어서 걱정, 냉이는 입은 짧지만 계속 맘마타령하며 소리를 지르는데 목청이 너무 커서 걱정. 쑥이는.. 그냥 안먹어서 걱정. 하필이면 날도 추워서 더 걱정.
냉이는 어딘가 올라가 있는 걸 좋아하나보다. 빽빽 소리를 지르다 조용해서 보면 핫팩이나 인형, 담요더미 위에 올라가서 잠들어 있는 걸 볼 수가 있다. 우리 집에서 너는 얼마나 높은 곳에 오르게 될까. 조금 더 키워서 보낼 수 있으면, 그래서 온 집안을 휘젓고 다니는 너희를 볼 수가 있으면 좋을텐데.
달래는 하도 조용, 순둥, 차분해서 너무 작게 크지는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너무 많이 먹는게 걱정스러운 캐릭터가 되다니. 그것도 참 의외다. 삼남매 중 혼자 오늘아침까지도 눈을 못 뜨고 꼭 감긴 눈으로 있었는데 오늘 저녁에 보니 갑자기 눈을 뿅 하고 떴었다. 아직 냉이만큼 땡글한 눈은 아니지만. 까만 아기 고양이의 동그랗고 까만 눈망울은 정말 천하무적인데, 이번에야 말로 내가 홀라당 넘어가 버리는 건 아닐까?
쑥이는 어리광쟁이에 쭙쭙쟁이라서 결국 혼자 공간을 쓰게 되었다. 혼자 있으니 얼마나 외로울까 싶다가도, 그래도 혼자 있으니 좀 더 깊은 잠을 자는 것 같아 다행이다. 조금만 견디렴. 금방 셋이 꽁 붙어있게 해 줄게. 무슨 꿈을 꾸는지 지금도 꼼지락거리며 잠꼬대를 한다. 얼른 식욕이 돌아와서 아주 많이는 아니어도 너무 힘들지 않게 맘마를 먹었으면 좋겠다. 조금씩 자주 강제수유를 하는게 효과는 분명 있는 것 같지만 가뜩이나 작은 애를 꼭 붙들고 억지로 먹이려니 쑥이가 너무 힘든 것 같아서 걱정이 된다. 냉이가 그랬던 것처럼 얼른 쑥이도 다시 열심히 맘마를 찾기를.
11일차.
오늘 아침 쑥이는 센터 병원으로 갔다. 어제 자정 지나서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던 쑥이를 안고 겨우겨우 조금 먹이고, 쓰다듬고, 조금 울다 두시 쯤 잤다. 고양이가 아픈 밤은 정말 힘이 든다. 빙수가 ‘무슨 일이 있으면 깨우라’고 했지만 어느 정도가 ‘무슨 일이 있’는 정도인지 자꾸 생각하게 되었다. 쑥이가 걷지 못하는 것? 목소리가 정말 많이 작아진 것? 목을 못 가누는 것? 물처럼 흐르는 설사를 하는 것? 토할 것처럼 배를 꿀렁이는 것? 아픈 것처럼 낑낑 소리를 내는 것? 하지만 쑥이는 등에 손을 대면 그릉그릉거렸고, 억지로 맘마를 먹이면 또 잘 삼켜주었고, 토까지 할까봐 정말 겁이 났지만 토를 하지는 않았다. 아마 억지로 먹인 맘마에 놀랐거나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조금 웅크리고 있는 쑥이를 한참 보다가 그나마 자세를 편하게 바꾸고 새근새근 잠자는 것을 보고 나니 나도 잘 수 있을 것 같아서 방에 들어가 네시 알람을 맞추고 잤다. 알람이 울리기 시작하자마자 정신은 번쩍 떠졌는데 어쩐지 상자를 열어 보기가 겁이 나서 먼저 불을 환하게 켜고 분유를 데운 뒤에야 상자를 열었다. 쑥이는 가장 나중에 공들여서 먹여야지, 싶어 달래와 냉이 먼저 먹이려는 생각이었는데 어쩐지 쑥이를 톡, 건들자 마자 쑥이가 고개를 번쩍 들고 아까보다 더 큰 목소리로 울었다. 핫팩을 테이블에 놓고 쑥이를 그 위에 올려 젖병을 입에 물렸는데 스스로 젖병을 빨지는 않았지만 아주 심하게 거부하지도 않았다. 아기들이 아프면 아플수록 몸에 힘은 못 줘도 입을 꾹 다물고 안 먹으려 하는 것을 많이 봐 와서 몸에 힘이 더 생기고 맘마를 강하게 거부하지 않는 게 좋은 징조라 생각되었다. 쑥이는 아주 빨리는 아니지만 조금 더 힘차게 걸을 수 있고 목소리도 더 커졌다. 네시 반, 다시 애들을 재우고 나도 자러 갔다. 쑥이를 다 낫게 해준다면.. 하고 기도하며 걸었던 조건들을 지키느라 힘이 들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다 잠이 들었는데 아홉시 반쯤, 수빈이가 날 깨우며 아무래도 쑥이를 센터에 데려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거실로 나와보니 수빈이는 캐리어와 핫팩을 준비하고 쑥이는 담요에 싸여 테이블 위 햇빛 아래에 있었다. 체중이 많이 줄어있어 강제급여로 최대한 체중을 올려놓았다고 했다. 고작 몇 시간 사이에 왜 그렇게 체중이 줄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쑥이는 몸에 힘이 없었지만 여전히 손으로 몸을 쓰다듬으면 그릉거렸다.
12일차. 쑥이가 고양이별로 갔다.
정말인지 알 수는 없지만, 너무 많이 아파하지는 않았다고. 마지막까지 사람의 품에 안겨 있다가 떠났다고 했다. 그게 위안이 되었다. 겨우 열흘도 함께 있지 못했구나 쑥아. 이제 겨우 눈을 떴는데. 눈만 떴을 뿐, 세상에서 아무것도 제대로 본 것이 없을텐데. 소중한 존재들을 자꾸 잃을 수록, 사후세계를 믿게 된다.
23일차.
쌀알 반 개 만한 작은 젤리들이, 이제는 녹두만큼 자랐다.
한 손에 세마리가 올라올 만큼 작던, 콩주머니만큼 작고 그보다 더 가볍던 아이들이 이제는 많이 커서 제법 쓰다듬을 만 하다. 지금은 두 마리만 남았지만.
태어난지 이제 막 3주를 넘겼을 뿐인데 어쩜 이렇게 예쁘게 굴까. 제법 눈을 맞추고 어리광을 부리고 엄마에게 하듯 소리없이 운다. 혼자 제대로 쉬를 하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쉬를 할 때면 정해진 자리에만 쉬를 할 만큼 똑똑하고 엄청나게 잘 먹고, 잘 놀고, 두어 번은 깜짝 놀라서 애를 흔들어 깨웠을 만큼 잘 잔다.
잘 싸기만 해 주면 완벽한 아기고양이일 텐데.
25일차.
아기고양이가 3주쯤 되면 제법 움직임이 빨라진다.
살짝이나마 폴짝, 하고 뛸 수 있고 도리도리도 슬로우버젼의 도—리—도—리—가 아니라 적당한 속도로 할 수 있다.
그보다 더 빨리, 그루밍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놀랍다. 그렇게 아기인데도, 누가 가르쳐준 것이 아닌데도 몸 단장을 할 수 있다. 또 이 즈음에 스스로 쉬를 할 수 있게 되고 손톱도 집어넣기 시작한다. 그 전까지는 손톱이 늘 나와 있는 상태라 수유를 하다보면 손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긁힌다.
그보다 더 어릴 때인 2주 무렵에는 눈을 제대로 뜨고 뭔가를 어렴풋이 볼 수 있는 모양이다. 상자 밖이 밝으면 잠을 덜 자서 상자를 담요로 덮어두어야 길게 잠을 잔다. 물론 사물을 식별할 만큼의 시력은 아니다.
그보다 조금 더 일찍인 1주에서 열흘 무렵, 귀가 열린다. 그 전까지는 귓 속이 통통한 살로 막혀 있어서 도저히 고양이 같지가 않다. 물론 귀가 열리고 나서도 한참이나 소리에 둔해서 청소기를 돌려도 쿨쿨 잔다. 이 때에는 애들을 소리가 아닌 터치로 깨워야 해서 재미있다. 쿨쿨 자던 애들이 톡 건들면 빽- 하고 운다. 톡, 빽-, 톡, 빽-, 톡, 빽- 이렇게 아이들을 깨워서 분유를 먹인다. 제대로 걷지 못해서 배밀이로 이동한다.
그보다도 더 어린, 태어난지 일주일도 안 된 시점의 아기고양이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때의 아기고양이는 제대로 기어다니지도 못해서 꾸물거릴 뿐이지만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젖병을 코 앞에 대면 입을 벌리고 젖을 빨 준비를 하고, 쭙쭙이를 하는 애는 신기하게도 냄새로 상대를 구분해서 자기가 점찍은 애 한테만 쭙쭙이를 한다.
이렇게 어린 아기고양이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일. 그릉거리는 일이다. 밥을 먹을 때, 졸린데 포근한 곳을 찾았을 때, 사람의 손길이 닿았을 때. 그릉그릉거릴 수 있다. 백그람 남짓의 작은 고양이도.
35일차. 아이들의 세계가 매트리스 하나 만큼 커진 날.
하루가 다르게 큰다. 새로운 공간과, 새로운 장난감들을 만난 냉이와 달래는 정말 폴짝폴짝 뛰어서 모든 공간을 돌아다닌다. 그러다가도 냉이는 화장실을 찾아 쉬를 하고, 밥을 먹고 난 다음에는 잠자리 쿠션을 찾아 가서 잠을 잔다. 하루가 다르게 크는 이 아기고양이들의 머리 속에서는 이 공간이 어떻게 인식되고 있을까? 냉이는 650그램이나 되고 박스 담장을 가뿐히 넘을 수 있을 만큼 자랐지만 여전히 분유를 먹는다. 알아서 먹을 때까지 두고 싶지만 고작 분유를 먹고 저렇게 뛰어다니니 금방 배가 고파질 수 밖에. 분유를 잔뜩 먹여도 한시간만 지나면 배가 홀쭉해서 이제는 습식을 먹으면 좋겠기도 하다. 달래의 눈망울은 여전히 초롱초롱. 언제나 배가 동그랗도록 잘 먹고 습식도 잘 먹는데 냉이보다 90그램 가까이 덜 나간다. 배만 볼록하지 아직 어깨도 작고, 손도 작고, 무엇보다도 달래는 참 짧다. 다리는 짧지 않은데 몸이 짧아서 통통 뛰어 다닐때 정말 귀엽다. 밥을 먹고 나서 냉이는 잠쿠션으로 가서 잘 준비를 하는데도 달래는 더 놀고 싶어서 구름이 상자 위에 비스듬히 올려진 요가매트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그제야 졸려졌는지, 내려오기가 무서웠는지 한참 멍하니 꾸물거리고 있는 걸 내려서 냉이 옆에 갖다 놨더니 지금은 둘이 사이좋게 코 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