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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녀미 Aug 13. 2022

바보들아.

바보들아, 곧 이 집에서 떠나야 하는 줄도 모르고 태평하게 쿨쿨 잠만 자다니. 

일어나서 좀 놀아두렴. 자잘한 사고도 좀 더 치고, 오늘 만큼은 보리 구름이를 조금 더 괴롭혀도 되고, 집안 구석구석 더 많은 털공과 장난감을 숨겨두렴. 나중에 내가 찾으면서 더 많이 울고 더 많이 너희를 떠올리도록. 어차피 까맣게 잊게 될 곳이지만 그래도 너희가 분유를 먹고, 화장실 사용법을 배우고, 처음으로 손톱을 깎고, 처음으로 사료를 까드득 씹어 먹었던 이 집. 첫 하악질과 첫 화분깨기와 첫 우다다를 했던 이 곳에서 조금 더 놀고 가렴. 몇 시간 후면 낯선 곳에 가게 될 테니까 그 곳에서 너무 오래 불안에 떨지 말고 거기서 조금 더 자렴. 


내 욕심에 너희를 너무 오래 데리고 있었을까. 너희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너무 잘 아니까 조금 큰 뒤에도 어떻게든 금방 입양 갈 거라며 뻔뻔하게 버티고 있었는데, 문득 오늘 너희를 보내기 직전에야 이런 생각이 들어. 혹시 내가 너희를 조금 더 오래 보고싶은 마음에 욕심을 부렸는데, 내 욕심 때문에 너희가 집을 찾기까지 쉘터에서 오래 기다려야 하면 어쩌나. 너희의 가족이 될 지도 모르는 사람들은 유리 창 밖에서 너희 모습을 보고 너희를 조금 겪어보는 걸로 결정을 내리게 될 텐데. 


졸린 돌멩이의 강력하고 사랑스러운 '머리 꿍'과, 공을 던지는 족족 달려가고 물어오기까지 하는 바위의 매력을, 어디서나 느긋한 표정으로 굴러다니는 먼지의 느긋함을,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장난감을 물고 쫑쫑쫑 걸어다니는 모래의 집요함을 그 사람들은 모를텐데. 거의 첫 인상만으로 입양 여부가 결정되는 세상에서, 너희들을 너무 오래 데리고 있어서 사람들이 너희를 대충 보고 지나치면 어쩌지. 


혹시 며칠이 지나도 너희가 거기에 있어야 하면 어쩌지. 

너희가 너무 보고싶으면 어쩌지. 

임보를 하며 많이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너희는 너무 오래 함께 있어서 더 힘든가봐.

나는 너희를 많이 보고싶어 하겠지만, 너희는 얼른 새로운 곳에 가서 다 잊었으면. 


너희를 깨워야겠다. 조금 더 놀고, 고기를 먹이고, 그리고 보내야겠다. 

정말로 보내고 싶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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