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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탄재 Jul 28. 2022

뭐야… 좋아하기로 했었잖아…

아들에게 타이푸드 콜드콜을 해봤다.


나는 이제 막 초등학생이 된 아들과 함께 며칠 전부터 태국을 여행하고 있다. 여행지로 태국을 고른 이유는 대부분의 숙소에 수영장이 있고, 물가도 싸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아들과 동남아의 맛을 함께 느껴 보고 싶기 때문이었다.


아들은 집에서 밥을 잘 먹지 않는다. 그나마 면은 좀 자시고 특히 라면을 좋아한다. 또 아들은 서걱서걱하고 식감의 차가운 음식을 매우 좋아한다. 과일로 치면 수박, 아이스크림으로 치면 샤베트다. 어떤 생각으로 ‘그렇다면 당신은 태국 음식을 좋아하겠구나.’라는 천치 같은 생각을 했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 광경을 상상했다.


거친 세멘 바닥 위에 프라스틱  상과 의자를 깔아 둔 길거리 음식점에 간다. 우리는 마이 싸이 팍치 캅 같은 말은 하지 않는다. 옆 테이블 태국 사람이 먹는 그대로 주문한다. 사진 찍을 준비를 하고 있으면 음식이 나온다. 아들이 우와 아빠 너무 맛있겠다-! 섣불리 젓가락을 든 아들을 멈춰 세우고는 태국 북쪽 지방 남쪽 지방 운운하며 면스플레인 한판 하고 나서야 허락된 순서로 양념을 하나씩 소개하며 태국의 맛과 향을 즐긴다.


태국에 도착하자마자, 쇼핑몰에 가서 야금야금 태국 음식 삼대장을 시켜서 한번 테스트를 해보았는데 은근히 잘 먹는 것을 보고, 역시 거절할 수 없는 맛이구나라고 생각했다.

백예린의 <이럴거면 그러지지말지>가 생각나는 장면

타이 푸드에 거부감이 없다고 확인하고, 수영으로 입맛을 돋웠다. 급작스런 운동으로 탄수가 당길 때 즈음이 되어 제대로 타일랜드의 맛을 즐길 수 있는 전문 식당을 찾아갔다. 스트륏의 거친 스피릿이 빠져있었지만 음식은 굉장했다.

솜분씨푸드. 어른들은 아주 맛있게 먹었답니다.

뜨거운 부성애로 볶음밥에 이 게살과 소스를 비벼서 한입 올려드렸지만 밥알이 있어서 거부. 아 뭐 그럴 수 있지 밥알이 있었잖아. 이 새우 완자 튀김은 네가 좋아하는 오뎅 튀김이라고. 아 오뎅 안 좋아하는구나. 근데 이거 새우 완자라고 오뎅 아니야. 이 국물 하나도 안 매워. 아… 새우도 안 좋아해… 그럼 이 망고라도 먹어볼래? 태국 사람들은 망고랑 찹쌀밥이랑 같이 먹는데! 하하하! 아… 연유 같은 저거 찍지 마? 저거 연유 아니야 달콤한 코코넛 밀크 같은 거야.


글로 내가 다시 쓰면서도 질리는데 아들은 얼마나 질렸을까. 하지만 그만큼 나도 질렸다. 실패한 영업 사원의 성과 없는 콜드 콜은 사람을 지치게 하지. 아들은 오로지 땡모 빤(수박 슬러시) 두 잔을 먹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왜 안 먹었을까를 차분히 분석해보았다. 아! 이런 병신. 면이 없었잖아. 하하하. 내일은 아들이 좋아하는 면을 먹으러 가자구.


아침에 일어나서 산책을 하면서도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수영은 땀이 좀 난 상태에서 해야 더 시원해라며 십 분 정도 거리에 있는 공원에 데려갔다. 가는 내내 툭툭이를 탄다고 징징거리길래 나도 급속도로 진이 빠졌다. 은근히 신경을 건드리는 오토바이 무리들과 교통체증을 벗어나 공원에서 도마뱀과 끼마귀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마음은 좀 누그러졌지만, 앞으로의 여정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어디선가 잡아탄 툭툭이를 타면서 텐션은 다시 즐거움 수준으로 올라왔다.

룸피니 공원. 도마뱀과 까마귀가 이주 많습니다.

그래, 아무튼 힘든데 먼데까지 데려간 아빠가 미안하니까 오늘 저녁은 네가 좋아하는 면을 막으러 가자. 하하하. (라고 생각했던 이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네요) 이번엔 네가 좋아하는 팟타이를 제대로 즐기게 해 줄 테니 공복만 준비하라고. 하하하. 오전 수영 두 시간. 키즈카페 한 시간. 점심 땡모 빤 한잔. 오후 수영 두 시간. 극강의 공복 스케줄로 돌리다 보니 결국 아들 입에서 배고프다는 소리가 나왔다. 너의 머릿속 태국 음식에 대한 갈망을 채워줄 곳으로 가자. 경건한 마음으로 배를 타고 강을 건너 유명 팟타이 집에 도착했다. 위생을 신경 쓴 샤핑 몰 분점이다. 특히 엄청난 오륀지 쥬스가 있는 곳이니만큼 준비는 완벽했다.

팁싸마이@아이콘시암. 아, 역시 이곳도 어른들에겐 굉장했습니다.

오륀지쥬스에 감탄하며 음식을 기다렸다. 생각보다 작은 접시 위에 얇은 달걀 피로 사악 감싼 국수가 튀어나오자 아들은 실망했다. 팟타이 싫다고 했잖아. 이거 어제 네가 좋다고 먹은 그거랑 같은 거야. 계란에 쌓여서 다르게 보이는 것뿐이야.


아니야. 나 팟타이 억지로 먹은 거야.


오.

오?

언제 이렇게 커가지고 상대가 미안할까 봐 억지로 먹어주는 배려심 깊은 아이로 상장했지? 내가 그동안 정말 아들에게 무심했구나.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나는 성숙하지 못했다. 그럼 너 오렌지 쥬스만 먹고 이거 먹지 말고 돌아가서도 배고프단 소리 하지도 말고 어쩌고 저쩌고…라고 말했을 뿐.

아들이 그동안 거절했던 음식은 수없이 많지만, 매일 아침에 내가 이것저것 해주는 게 싫다고 했을 때가 가장 서운 했었다. 이건 그다음 정도가 될 것 같다. 그때부터 아침에 뭔가 해주는 일은 하지 않고 있지만, 밖에서 사 먹는 음식에 서운함을 느낀 것은 좀 신선했다.


아들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 아들이 원하는 것인지, 내가 아들이 원하는 것을 원하는 것인지 아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왜냐하면 그건 엄청난 양의 '대화'라는 기초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나의 엄청난 아침 요리를 거절당했을 때도 애들이 먹고 싶은 음식이 아니라 내가 먹었으면 하는 음식을 주었다. 반성한다. 하지만 동시에 다시는 너에게 맛있는 것을 소개해 주지 않을 것이다라는 유치한 다짐을 하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라. 아빠도 휴먼이야.  


반쯤 삐진 상태로 다음날 아들이 가고 싶다는 곳, 먹고 싶다는 것만 먹으면서 지냈다. 그래. 나도 이게 편하다. 다만 내가 몇십 년 더 살았으니까 종종 물어는 볼게. 근데 수영은 그렇게 하는게 아니고 어쩌고 저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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