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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탄재 Jul 16. 2022

[초단편] 말로 이야기 EP 02. 전화 예절

전화한다고 미리 전화해주세요

 말로는 조용히 출발하는 지하철이 못마땅했다. 예전에는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아도 지하철의 움직임으로도 몇 정거장이 지났는지 느낌으로 알 수 있었는데, 기술이 발전을 했는지, 요즘 지하철은 그 미세한 진동이 약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말로는 전기로 움직이는 것들이 대부분 싫었다. 시대정신을 과시하는 듯한 미래적인 디자인도 싫었고, 선구자 같은 운전자의 우쭐한 표정도 마음에 안 들었다. '지구를 지킨다고? 그 전기는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알고 있어?’라고 쏘아붙이고 싶었다.


 말로는 전기차가 쌔액 소리를 내며 조용히 다가오는 모습이 의도를 숨긴 사기꾼 같다고 생각했다. 야채를 가득 실은 트럭이 시장 바닥을 기어코 헤쳐나갈 수 있는 것은 내연기관이 전달하는 묘한 공기의 떨림이 사람들 등으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전기차는 예의 없을 정도로 조용하게 등장했고 사람들을 놀랬다.

 

 말로는 지하철에 타면 사람들의 목소리가 듣고 싶지 않았다. 귀를 덮어버리는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쓰고 눈을 감았다. 둥둥둥둥 드럼 소리가 시작되자 사람들의 환호소리가 시작되었다. 누군가의 등장을 예고하는 드럼 소리였다. 애먼 드럼 소리는 관객들을 조련하듯 환호성이 잦아들 때까지 계속되었다. 긴장감이 고조되었을 때 존 레전드가 등장하며 첫 구절을 뽑아냈다.

https://youtu.be/liCPOMDaLzk

적절한 등장의 예시


그래, 등장은 이렇게 확실하게 해야지


 무대 위에서 박자에 기죽지 않고 분위기를 리드하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뛰었다. 나에게도 기회가 있다면 저렇게 등장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PIP로 유튜브 화면을 돌려놓고는 존 레전드에 대해서 검색하고 있는데 불쾌한 진동이 시작되었다. 모르는 번호였다. 말로는 전화를 하기 전에 어떤 용건으로 전화를 하겠다고 알려주어야 예의라고 생각했다. 전화를 받지 않자 뒤이어 재촉하듯 두 번째 진동이 울렸다.


부재중 전화가 있어서 연락드립니다
누구시죠?




https://brunch.co.kr/@chalamet/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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