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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홍 Jan 09. 2021

어느 겨울나기

어느 겨울에 날아보기

떨어진다. 모든 물체는 질량에 상관없이 같은 속도로 떨어진다는 어느 오래된 이야기가 사실인지 알 길이 없다. 초속 5센티미터의 속도로 떨어진다는 벚꽃잎이 된다면 어떤 마음일지 상상해본다. 지금 추락하는 이 순간을 길게 늘여 영원히 영원히 공중에 떠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이 인다.





수직으로 자유낙하하려는 마음은 허공에 떠도는 각기 다른 크기의 바람 때문에 산산이 흩어진다. 찬공기는 모든 것을 얼어붙게 하지만 그 냉랭한 입김이 그를 살아있게 했다. 주위를 둘러봐도 온통 자신과 같은 이들뿐이다. 어떤 이는 혼자 있고 또 어떤 이는 군가와 혹은 무언가를 꼭 끌어안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모두 여전히 떨어지는 중이다.





혹은 날고 있다. 날아가는 것과 떨어지는 것의 차이가 무엇일지 생각해본다. 내가 기꺼이 그러려고 했는지 아니면 무언가에 떠밀려 억지로 이렇게 된 건지. 아무튼 손끝을 스치는 바람결의 감촉이 나쁘지 않다. 볼을 에는 듯한 추위도 좋다. 깊은 물속에서 질식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시원하게 숨을 쉬는 것들이 있다. 찬바람을 맞으며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얼어 죽는다는 말은 여기서는 말이 되지 않는다. 단단히 얼어있기 때문에 여태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멀리 지평선이 보인다. 지평선을 볼 수 있는 순간은 아주 찰나이기 때문에 눈을 바로 떠야 한다. 곧 죽 늘어선 성냥갑 같은 건물들 사이로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 사이로 노랗게 해가 지고 조각달이 뜰 때면 어쩐지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상상에 울컥한다. 그러나 눈물이 날 것 같은 순간을 조심해야 한다. 그랬다간 진짜로 사라져 버릴 테니까.





누군가의 숱한 울음 끝에 태어났기 때문에 끝나는 순간에도 눈물과 함께할 수밖에 없다. 울지 않으면 태어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반대로, 울지 않으면 죽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나 어떤 울음은 내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저 바깥에서부터 내리친다. 나와 같이 날고 있던 혹은 떠밀려 떨어지고 있던 이들이 빗발치는 울음 사이로 하나둘 사라져 가는 것이 보인다. 그들의 영원은 순간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곧 영원같이 흘러간 순간에 허무한 끝이 도래한다. 이제 영원 같은 몇 초 후에 어느 거뭇한 타이어 앞바퀴에 흔적도 없이 스러져 녹아버릴 것이다. 혹은 오래 기다린 폭설의 설렘 끝에 태어난 눈사람의 손가락에 내려앉을지도 모른다. 겨울이 길다고 한다. 얼어붙은 순간이 한 뼘 더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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