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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홍 Jan 12. 2021

다시 초콜릿을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작은 행복들에 쉽게 중독되길

음악이 나라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라는 우스운 말에 우습게도 동의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그것 말고도 중독성 있는 몇 가지 합법적인 성분들에 의지해서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그중 하나이고 특히 카페인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을 것만 같다. 건강상의 이유로 가끔 커피를 끊어야 할 때면 내가 꿈을 꾸는 건지 꿈이 나를 꾸는 건지 알 수 없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이제 초콜릿 없이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몸이 되어가는 중이다.







일단 하루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모닝커피를 마신다. 이미 몸이 카페인에 절여져 있어서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잠이 깨지 않을 뿐만 아니라 머리가 아파 도무지 일과를 시작할 수가 없다. 일을 하든 공부를 하든 텔레비전을 보든 상관없이 커피를 내린다. 가장 좋아하는 루틴은 진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약 한 시간 뒤에 그것보다 연한 커피를 한 잔 더 내리는 것이다. 점심을 먹고 나서 커피를 한 잔 더 내린다. 식곤증은 도무지 혼자선 견뎌낼 수 없어 친구가 필요하다. 저녁엔 커피를 마실지 말지 잠시 고민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기 전까지 커피를 마실 수 있었는데 최근 규칙적인 삶을 통해 스스로를 책임져보기로 결심한 탓에 가급적 저녁 커피는 삼가고 있다. 다음 날의 모닝커피를 위해서 지금의 한 잔은 아껴두기로 한다.





대신 늦은 밤 무언가 마시고 싶을 때는 핫초코나 허브티를 마신다. 핫초코는 너무 연하지는 않되 분말이 충분히 녹도록 물의 양을 잘 조절해야 하고 허브티는 그 날의 기분에 따라 무얼 마실지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 그러다 정 커피맛이 그리우면 성에 차지 않는 디카페인 커피를 탄다. 가끔은 진짜 커피를 마신 것 같은 기분에 혹시 잠이 오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괜한 걱정도 해 본다. 사실 맛없는 디카페인도 보통 커피처럼 맛있길 바라는 마음에 그러는 것 같다.





나에게 밤에 차를 내려 마시는 것은 스스로를 소중하게 돌보는 행위 중 하나이다. 밤이 되면 아무도 내게 맑은 정신으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온전히 혼자 있는 시간을 누리면서 따뜻함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런데 내가 별로인 사람처럼 느껴질 때, 나를 그냥 내 버려버리고 싶을 때는 허브티도 마시지 않게 된다. 일과 시간의 커피는 죽지 않기 위해 먹지만 허브티는 그 시간을 잘 보내보려고 마시는 쪽에 가깝다. 잘 살려는 생각이 없었던 최근 며칠간 허브티에는 손이 잘 가지 않았다. 핫초코도 마찬가지였다. 이 겨울을 포근하고 달달하게 보내보고 싶어 추위도 안 타면서 남들이 춥다춥다 하는 초겨울에 얼른 사둔 핫초코가 아직도 한참 남았다. 아무것도 마시지 않고 내가 나를 저 옆으로 치워두었던 그 밤들은 너무 쓰고, 또 추웠다.





일 년 내내 못살게 굴 것 같은 말도 안 되는 추위에 떤지도 한참 됐는데 초겨울에 샀던 핫초코는 아직도 너무 많이 남아 있다. 내가 날 충분히 돌보지 않은 탓이다. 추위도 안 타는 내가 춥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스스로를 따뜻하게 감싸주지 않았다. 그러나 어차피 얼어 죽을 판에 따뜻한 음료를 마셔서 무엇하겠는가. 커피며 차며 간식이며 잔뜩 쟁여 둔 선반이 우스웠다. 무얼 해 보겠다고, 이 아무것도 아닌 몸뚱아리로 얼마나 잘 살아보겠다고 저길 저렇게도 꽉꽉 채워둔 건지 싶어서. 하루에 몇 개씩 까먹던 초콜릿에는 몇 달간 손도 대지 않았다. 내가 달콤함을 맛볼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싶었다.





그러다 얼마 전 아주 작은 도움을 준데 대한 감사 표시로 받았던 초콜릿 기프티콘을 드디어 교환해서 가지고 왔다. 바싹 마른 밋밋한 아침에 작은 기분전환이라도 되길 바라는 마음에 아침에 커피를 마실 때 한 개씩 까먹어봤다. 다 먹는데 일주일이 걸렸다. 그랬던 게 그새 습관이 들어버렸는지 이제 아침에 커피뿐만 아니라 초콜릿이 있어야 하루를 제대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몇 달간 묵혀두었던 초콜릿 더미를 다시 앞으로 끌어내었다. 그리고 아침마다 손에 집히는 대로 꺼내 먹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딸기맛이 많이 나오면 그 날 아침엔 기분이 좋다. 딸기맛이 아니어도 괜찮다. 그냥 초콜릿이어도 아침 세 시간 동안 한 시간에 하나씩 까 먹고 나면 내가 나에게 참 잘해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고 싶다는 것을 다 해주다니, 먹고 싶다는 것을 다 먹게 해 준다니. 자기 자신만큼 스스로에게 잘해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또 자기 자신만큼 정말 별것 아닌 것으로 스스로에게 큰 행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이제 카페인 말고 또 다른 중독 물질이 생겼다. 그렇게 아침에 초콜릿을 먹을 수 있게 되어서 진심으로 기쁜 나날들이 시작되었다.





오늘 밤에는 허브티를 마셔보려 한다. 좋아하는 것만 쏙쏙 빼 먹은 탓에 제일 덜 좋아하는 향들만 나머지공부하듯 남았지만 아무래도 좋다. 무엇이든 내 몸에 좋은 어떤 효능을 가지고 있는지 다 알고 있다. 음, 어디 보자, 오늘의 허브티는 페퍼민트레몬이다. 민트를 싫어하지만 페퍼민트는 목감기에 좋다고 했다. 나는 기관지가 안 좋으니까 페퍼민트를 마시면 도움이 되겠지. 민트를 싫어하지만 레몬향이 가미되어 있으니까 괜찮겠지. 찬 바닥에 누워서 얼어 죽는 꿈을 꾸다 금세 깨어난 며칠 전 겨울밤과 달리 오늘 밤은 어쩐지 따뜻하게 잘 수 있을 것만 같다. 이대로 잠에 들어 깨어나기 싫다는 생각은 그만두고 대신 내일 아침은 딸기 초콜릿이 손에 몇 개나 잡힐지 기대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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