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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홍 Apr 05. 2021

분노에 내 좋은 면이 잠식되지 않게

휩쓸릴 것 같은 두려움은 접어두기

나는 화를 잘 못 낸다. 하지만 그렇다고 분노라는 감정을 잘 느끼지 않는 사람인 것은 아니다. 여덟 살 때는 작은 아씨들을 보고선 자신의 소설 원고를 다 태워버린 에이미에게 화를 벌컥 낸 조에게 감정이입을 했다. 그리고선 마찬가지로, 에이미를 물에 빠뜨려 죽일 뻔한 뒤 자신의 감정을 후회하며 눈물을 흘리는 조에게도 공감이 갔다. 조의 엄마는 화를 누르는 것은 원래 어려운 일이라며, 자신은 40년 동안이나 노력해서 겨우 화를 참을 줄 아는 사람이 되었지만 아직도 화가 날 때가 있다고 고백한다.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는 어린 마음에 나도 앞으로 40년 동안 노력해서 화를 안 내는 사람이 되자고 결심했다. 약속했던 40년 가운데 21년이 지났고 이제는 반대로 화를 잘 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조의 엄마 말고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참는 것이 미덕이라고 배웠지만 내가 본 잘 참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기 마음의 분노나 아픔을 잘 표현하지 않거나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그게 미덕이라고들 하니까, 그런 모습들에서 어떤 아름다움을 찾아보려고 노력해봤다.






표현 좀 하고 살아라, 정 없게 그러지 말고. 그러다 마음 상한다. 혼자 속앓이 하지 말고. 몸 아픈 거는 티를 좀 내 봐. 나 사랑하는 거 맞아? 네가 나에게 그 정도의 마음을 품었는 줄은 몰랐어, 티를 안 내서... 표현하라는 이야기는 살면서 정말 많이 들었는데 내게 그렇게 말했던 이들이 나에게서 끌어내려했던 표현들 또한 그만큼 다양했다. 초콜릿맛이 나는 정이 오갔으면 했다는 관계에서는 딱딱하고 차가운 사람이라는 실망 섞인 이야기를 들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말없이 아파하는 나를 걱정하면서 무슨 일이 있으면 이야기를 해 달라고 상냥하게 곁을 내어주었다. 서로 사랑하기로 약속한 관계에서는 내가 자기를 사랑하는 줄 몰랐다고 했다. 그 순간에 그에 대한 내 사랑은 존재했으나, 마치 없는 것처럼 취급되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좋은 감정과 너에게 좋은 마음까지도 이렇게 숨길 필요가 있는 것인가 싶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무언가를 내내 꽁꽁 숨겨온 사람에게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두려움 때문에 내 마음을 그렇게 숨겨왔는지를 먼저 규명해야 했다.






처음에 화를 내지 않기로 결심했던 마음으로 돌아가 본다면 그건 그 화가 나와 상대방을 집어삼켜버리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나는 너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거야.”라는 무서운 말로 표현된 조의 분노가 에이미를 물에 빠뜨리고 조가 자신의 행동을 눈물로 후회했던 것처럼 내 마음이 나를 슬프게 하고 누군가를 그렇게 다치게 하면 어쩌나 두려웠다. 함부로 화를 냈다간 다른 사람의 화를 살 것 같아서 무섭기도 했다. 나름의 합당한 이유로 잔뜩 화가 난 어린이들은 너무 자주 어른들에게 혼이 나게 마련이다. 좋고 나쁨이라는 단순한 기준으로 세상의 모든 것들을 분류할 수 있다면 화가 나는 것과 화를 내는 것은 ‘나쁨’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바구니에 망설임 없이 던져 넣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아무튼 그건 나쁜 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화가 많은 어린이였고 화를 낼 때마다 스스로를 나쁜 사람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목적이 다양할 수 있다고 생각해보면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그렇게까지 두려워하지는 않을 텐데. 표현을 해라,라고 했을 때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뭐가 있었길래 하지 못했던 걸까. 네 마음속의 거무튀튀한 것을 들킬 것 같아서? 나 혼자만 하던 나쁜 생각과 구차한 바람 같은 것들이 표현이라는 명목으로 불쑥 튀어오를까봐? 표현을 잘하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내 마음을 보이는 것은 마치 주머니 속에 든 거 다 꺼내서 책상 위에 올리라는 명령처럼 느껴진다. 오랜만에 꺼내 입은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어본다. 언제 받았는지도 모르는 구겨진 영수증이나 한 번 물을 먹었다 뱉고 나서 빳빳해진 휴지조각 같은 것들을 만진다. 하지만 천 원짜리 너댓 장이 들어있네. 그러네. 주머니 안에 꼭 나쁜 것만 들어 있는 건 아닐 텐데. 그냥 주머니에 손을 넣어 불쑥 꺼낸 것이 낡은 영수증일 수도 있지만 천 원일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좋은 꿈 꾼 날에 길을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로또집에서 이 천 원을 써버릴 수도 있는 거잖아. 마음을 잘 표현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졌다. 누군가에게 칭찬의 말을 하거나 염려를 표할 때 망설이고 싶지 않다. 내 마음이 온전히 전해질까 두려워하고 싶지도 않고 내가 전하고 싶은 마음이 부끄러워 뒤로 숨기는 대신 엉뚱한 것을 꺼내고 싶지 않다.






어린이 세계명작 작은아씨들을 보고 오십 살 때까지 화를 참는 법을 연습하기로 결심했던 어린이는 삼십 살 즈음 영화로 만들어진 작은아씨들을 봤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같은 장면을 보고 더 이상 화를 참지 않기로 했다. 아니, 그보다는 화를 참는다는 명목으로 내 마음을 무턱대고 숨기는 일은 그만두기로 했다.


“나도 40년째 노력하고 있어. 분노에 내 좋은 면이 잠식되지 않게.”
“그럼 저도 그렇게 할래요.”
“나보다 좋은 방법을 찾았으면 해. 어떤 천성들은 억누르기엔 너무 고결하고, 굽히기엔 너무 드높단다.”


여전히 내 화가 상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힐까봐 두렵다. 그런데 내가 저 사람한테 꼭 전하고 싶은 따뜻하고 보드라운 마음까지 참아줄 수는 없을 것 같다. 그건 나 혼자 가지고 있기에는 너무 따뜻해서 그만 놓쳐버릴 것 같다. 그렇게 바닥에 흘리고 깨지는 모습을 보는 대신 예쁜 리본으로 묶어서 건네주자.





* 커버 : 그레타 거윅 감독 영화 <작은 아씨들>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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