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마음에 대하여
바빴다. 일에 치이고 또 치였다. 일을 잘하려면 공부도 열심히 해야 했다. 무언가에 쫓기듯 지낸 것이 아니라 내가 내내 무언가를 열심히 쫓아다녔다. 그래서 요새 좀 소홀했다. 적막아, 그렇지? 나 없이 혼자 노느라 심심했을 거야. 그래서 말인데 내가 좀 늦긴 했어도 이제 나랑 좀 놀아주라.
퇴근하고 주로 무얼 하고 지내시냐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 건 혼자 남겨진 텅 빈 시간을 손바닥 위에 올리고 발을 동동 구르는 중이라고 이실직고할 수 없어서였다. 이번 주말에는 뭘 하고 쉬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밀린 집안일을 잔뜩 하고 그것도 모자라 안 해도 되는 화분 정리까지 하고야 말았던 건 순전히 놀면서 시간을 보내는 법을 몰라서라고 생각했다. 몇 시간을 그렇게 혼자 열심히 아등바등하다가 결국 손에 잡히는 모든 일을 다 마치고 나서야 동작을 멈추고 나면 그렇게 허무할 수가 없다. 처음 몇 달 정도는 무언가 열심히 사는 느낌이 좋았다. 내 삶을 내 손으로 꾸려가는 기분이 차올라 뿌듯했다. 그러나 요샌 자꾸 뭔가가 빠진 기분이다. KBS <대화의 희열 3>에서 오은영 박사님은 "허구의 독립"이라는 이야기를 하시면서 사람은 의존 욕구가 충분히 채워지지 않았을 때 나오는 의젓한 행동을 설명했다. 그래, 내가 혼자서도 잘 살아보려 했던 마음 중 일부는 허구였다 이거지. 사실은 누군가의 손길이 무척 그리웠다. 이제 인정할 때가 된 것 같다. 혼자서 어떻게든 씩씩하게 잘 살아보려고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면서 노력했어도 외로운 건 어쩔 수 없다.
자, 이제 의존 좀 해 볼까?
하지만 막상 누군가에게 의존을 해 보려고 눈치를 살살 살펴보니 마땅치가 않았다. 내가 떠들 곳, 기댈 곳을 열심히 찾지 않으면 결국 철저히 혼자 남겨지는 순간이 너무 많았다. 내가 먼저 내 이야기를 꺼내고 어떤 기분인지 말하고 징징대지 않으면 그들은 굳이 나의 상태를 먼저 묻고 살펴주지 않았다. 각자의 삶이 너무나 바쁘고 복잡한 탓이다. 얼굴 보고 만나기 어려운 요즘 같은 때에 만남의 시간은 너무 귀하고 짧아서 그 시간에 무얼 나눌지는 심혈을 기울여 결정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상대적으로 뒷전으로 밀리는 것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어린애 같은 마음은 나눌 시간이 없어, 잠시 미뤄두기로 결정한다. 동시에 아무 데나 눕지 말고 누울 자리 보고 발 뻗으라는 오래된 조언이 떠오른다. 오늘 이 사람과의 만남에서 섣불리 내 마음을 열어보이지 않은 선택에 뒤늦게 박수를 보내는 대신 다른 자리를 찾아보기로 한다. 춥진 않은지, 땅은 고른 지, 바람은 안 부는지 살펴보고 심혈을 기울여 선택한 누울 자리마다 조금씩 다리를 뻗어 보았다. 나쁘지 않았다. 여기는 팔 한쪽, 이쪽은 다리 한쪽, 또 저기다가는 머리를 대고. 조금씩 편안해지는 몸과 마음의 부분들을 느껴보았다. 그런데 여전히 어딘가 부족하다.
나는 그냥 대자로 뻗고 싶었던 것일까.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마음을 여는 대신 그냥 여섯 살 때 미처 부리지 못한 떼를 마저 쓰고 싶었던 걸까? 마트에 누워서 허공에 대고 발을 차려했던 거니? 그런데 어딘들 대자로 뻗을 수 있을까. 깊이 생각할수록 뭘 하고 싶은 것인지 잘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내 마음의 소리에 조금 더 귀를 기울여보기로 했다. 자기 전에 침대맡에서 일기를 쓰다 문득 일기라는 것을 처음 쓰던 시절로 돌아가 보았다. "나는 오늘~"로 시작하는 문장들을 이용해서 그날 있었던 일들을 종이 위에 모조리 적고 그 일들에 대한 느낌들로 주석을 달아보았다. 그랬더니 그날의 일기가 한도 끝도 없이 늘어났다. 결국 한 페이지, 두 페이지, 세 페이지쯤 되었을 때 팔이 아파 포기하고 그 뒤의 남은 일들은 대충 갈무리하고 펜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혼자서 뭐 이렇게 바쁘고 내 마음은 또 왜 이렇게 분주해. 아, 나와 내 마음에 대해서 나 스스로에게 전부 털어놓는데도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고 힘이 드는구나. 하물며 다른 사람한테 내 마음을 전부 내보이는 건 또 얼마나 품이 들까. 다리 좀 뻗으려다가 “네~ 저 다리 뻗을게요~ 갑니다~ 자리 좀 비켜주세요! 지금 무릎 펴는 중이고 이제 발목 갑니다! 거의 다 왔어요. 이제 마지막으로 발가락 뻗을 공간 좀 만들어 주세요~ 오케이!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소리 지르며 이리저리 뛰어다녀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생각만 해도 그 자체로도 피곤하고 그렇게 해서 어렵게 어렵게 뻗은 다리의 감각이 편안할지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었다.
내가 나와의 시간을 보내는 법을 알고 싶었다. 모든 마음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욕구는 유아기적인 환상일 것이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적당한 자리를 보고 편안하게 몸을 뉘일 수 있는 나와의 시간을 발견하고 싶어 졌다. 아무리 마음을 나누고 서로 가까워진다고 해도 나눌 수 없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눈 앞에 떠오른 어떤 감정은 오롯이 혼자서 처리해야만 배경으로 물러난다. 그럴 때 슬며시 적막이 곁에 와 앉았다. 적막은 미처 풀어내지 못한 타래를 한 올 한 올 떼어내는데 필요한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내가 스스로의 내면을 가만히 들여다볼 시간도 벌어주었다. 시끄러운 바깥세상의 소음에 가려진 내 감정과 생각에 가까워질 수 있게 나를 도와줬다. 이전에는 적막이 단지 내 눈과 귀를 막고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로부터 나를 떨어뜨려 놓는 나쁜 친구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하면 적막은 분주함에 눈 감지 못하는 깊은 밤이나 시끄러운 마음의 소리가 만드는 아픈 이명으로부터 나를 지켜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그토록 멀리하고 싶었던 적막을 가까이해야겠다. 언제가 되었든 그때가 되면 조금의 망설임만 느끼고선 옆에 앉혀두자. 그리고 향기로운 차가 되었든 시커멓게 탄 콩으로 내린 쓴 커피가 되었든 일단 들어보기로 하자. 다만 그 순간에 마지못해 받아 든 독이 든 찻잔을 입에 가져다 대는 기분만은 사양하고 싶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내 마음을 만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사람이 바로 나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누려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