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유튜브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잠을 못 이루다가 재밌는 영상을 하나 봤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1분만에 이해할 수 있게 요약한 쇼츠였다. 같은 공간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더라도 서 있는 자리가 모두 제각각이기 때문에 각자의 눈에 담기는 세상은 모두가 다른 모습이고 각자가 인식하는 3차원 공간 또한 전혀 다른 형태로 경험될 것이다. 이상은 ‘사람은 각자 자신만의 공간 축을 가지고 있다.’로 요약된다. 모두가 가지고 있는 공간축이 저마다 다른 것처럼 시간축도 다르다고 하는 것이 상대성이론의 핵심이다. 시간은 모두에게 똑같이 흘러간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이 말을 믿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시간이 언제는 빠르게 흐르고 언제는 느리게 흐른다는 것은 직관적으로 와닿지가 않는다. 시계 초침이 움직이는 것을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에서 가장 공평한 것이 시간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어쩜 저렇게 한결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것일까 싶어서.
그런데 유달리 생각이 많아지는 날은 시간이 그렇게 빠르게 흘러갈 수가 없다. 퇴근이 예정보다 늦어졌고 사무실 문을 나서기 직전까지 심각하게 고민하며 이야길 나누다가 mbti와 날씨 이야기를 하며 서로 헤어졌다. 아직은 일교차가 심한데 반팔을 입은 채로 퇴근을 하시다니요. 지하철역까지 먼데 걸어서 가시는 이유가 있나요. 운동을 좋아해서요. 혹시 mbti가? 아, i로 시작하기는 해요. 그냥 움직이는 것이 좋을 뿐이에요.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나눌 때는 시간이 보통 빠르기로 흘렀다.
그러다 혼자가 되어 지하철 개찰구를 통과해 텅 빈 지하철에 넉넉하게 앉아서 뭐든 읽으려는데 눈에 차는 글자가 단 한 글자도 없었다. 머릿속이 퇴근 전에 나눈 이야기들로 꽉 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한 글자 한 글자 떼어다가 펼쳐서 읽어보았다. 행여 글자와 글자, 문장과 문장 사이에 빈 공간이 있으면 그 행간을 새로운 생각들로 메워 보았다. 한 장의 글을 쓰는 데에는 족히 열 장, 스무 장, 백 장의 생각이 머리에 들어차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미 머릿속에서 백 장 분량의 글자들이 펼쳐지고 있으니 거기에 더해지는 생각은 천 장, 만 장은 가볍게 뛰어넘을 것이다. 휴대폰을 덮고 바닥만 보며 멍을 때리는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저녁에 지하철에서 휴대폰을 안 쳐다보고 있는 사람은 보조배터리를 챙겨오는 것을 잊은 장거리 통근러이거나 가족의 복수를 위해 칼을 갈고 있는 리암 니슨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나는 비록 지쳤지만 둘 다 아니었다. 생각이 한도를 초과해서 많아지고 길어지다 보니 내게 주어진 시간은 그것들을 다 감당하지 못했고 빠른 속도로 소진되었다.
시간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빠듯하게 사는 것은 정말이지 내가 원하는 삶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누군가는 이렇게 바쁘고 정신없이 지나는 하루를 보내며 성취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런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이렇게 확인한다. 내가 가진 내 시간의 그릇에 너무 많은 생각과 마음과 정성을 담으려 하면 빠르게 차오르다 어느새 그릇 밖으로 이 모든 것들이 넘쳐서 쏟아져버릴 것이다. 그건 분명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 생각과 마음과 정성이 얼마가 됐든 똑바로 된 그릇에 적당히 담기길 바란다. 그리고 원하는 지점에, 사람에 제대로 전달되기를 바란다. 아무리 시간이 등뒤에서 채근해도 부디 그럴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