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코더 시험>은 <벌새>와 같으면서도 한편으로 다르다. 은희라는 아이, 은희가 오가는 어딘지 주목받지 못하는 유년시절의 학교와 불친절한 집 한 구석, 무심한 부모와 폭력적인 오빠, 이해가지 않은 언니. <벌새>의 전조 격인 듯 <리코더 시험>에서는 훗날 나올 장편영화와 유사한 장면들이 등장한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벌새>보다 조금 더 어린 <리코더 시험>의 은희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혹은 처음 시도해보는 것들 앞에서 좀 더 어리숙하고, 겁을 먹으며 상처를 받는다는 것이다. 어쩌면 <벌새>의 중학생 은희에게 덜 중요할 수도 있는 학교 리코더 시험, 사실은 그 주변의 것들에 대해 초등학생 은희는 조금 더 많은 애정과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여전히 언니는 야밤에 저 남자 친구를 데려오고 오빠는 무섭게 문을 두드리지만 <리코더 시험> 속 은희의 얼굴을 역시나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고 싶은 건 아직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은 그 첫 표정 때문일 것이다. 한 여자 아이의 일대기를 두 편의 영화로 진득하게 그리고 끈질기게 부여잡는 감독의 첫 발걸음이라는 수식은 그리하여 단순하게 <리코더 시험>을 <벌새>의 인과관계 요소쯤으로 치부하는 문장이 아닐 것이다.
자유연기 / 김도영 / 29 min 20 sec
관객과 무대가 있는 이상, 독백은 절대 홀로 선 고군분투가 아니다.그리고 그 자리에 서기 까지, 김도영의 카메라는 독박 육아 중인 연극배우 지연을 좇는다. 지연은 철없는 남편 앞에서, 오랜만에 찾아온 선배 앞에서 지나치게 인상을 찌푸리는 일이 없다. 나 힘들다며 울부짖지도 않으며 여기 나 좀 도와달라 적극적으로 필요를 요청하지도 않는다. 그래서일까. 힘들게 언덕길을 오르다 우연히 본 후배 배우의 포스터에 피식 웃음을 지었다가 자유연기를 할 때에 하필 그 작품 속 독백 대사를 외우는 지연의 표정은 30분 남짓한 러닝타임 중 또 처음 본 얼굴을 하고 있다. 그것은 무기력 끝에 처음으로 짓는 찡그림이다. 울음을 터트리며 지연이 외우는 대사는 연극 <갈매기>의 것인지, 영화 <자유연기>의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대사 속 자신을 지칭하는 주어는 명확하지 않으며 그가 말하는 행위 또한 지연이 살아왔던 현실의 행적과 닮아있다. 그렇게 지연은 고함을 치고 울부짖는다. 그러나 이 고함이 영화의 종착역은 아니다. 이내 눈물을 닦고 프로필 사진을 찍어야 하며, 흘러나온 젖을 수습하고 다시 아버지가 아이를 돌보고 있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연은 그렇게 끝없이 버틸 것이다. 살아낼 것이다. 지연이 연기하는 독백의 청자는 성의 없는 조연출의 요구도, 영화를 들여다보고 있는 관객들도 아니다. 앞으로도 계속 살아가야 할 지연 그 자신이다.
걸스 온 탑 / 이옥섭, 구교환 / 4 min 37 sec
짧지만 강렬하다. 영화는 평범하지 않은 이미지로 가득 차있다. 이옥섭과 구교환이 구축해낸 이 동화 같은 이야기에 어떤 말을 붙일지 잠시 생각해본다. 그러나 이내 되묻게 된다. 내가 감히 반려식물을, 반려식물을 끔찍이도 사랑하는 저 여자를, 여자의 곁을 지키며 외발자전거나마 끝까지 동행하고자 하는 또 다른 여자의 이야기를 두고 '이것은 평범하지 않다' 진단할 수 있을까. 평범하지 않음으로 평범함의 기준을 가르는 <걸스 온 탑>은 현실 속 동화, 동화 속 현실이 제각각 조우하며 물음을 던지는 영화다. 그렇기에 이 세계를 함부로 예쁜 초현실이라 치부해버리기엔 놓치는 지점들이 많다. 우희와 그의 반려 선인장, 우희가 살고 있는 6평 원룸, 주영이 담배를 피우던 동네잔치의 뒤편. 겉보기에 예쁘게 배치된 프레임 안 미장센들은 서로가 서로와 합치될 때 알쏭달쏭한 질문들과 여백들을 남긴다. 그래서 그 수수께끼는 이 영화가 단순하게 보기만 좋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이런 영화감독의 집요함이 싫지 않다. 그러다 이내 정이 들고 마주 서서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이 영화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