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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지 Feb 03. 2020

그 문을 언제 두드려봤던가

영화 <밤 사이>, <주근깨>, <안부>

***본 리뷰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매월, 각기 다른 주제의 독립영화들을 모아 상영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이들이 있다. 독립영화 큐레이터 오렌지 필름은 한 달에 단편 세 작품을 각기 다른 영화관에서 상영하며 감독과 관객이 만나는 자리를 기획하는 이들이다. 상영회는 올 2월에도 어김없이 돌아왔다. '*추신 : 우리 우정 영원히'라는 타이틀 아래 류연수 감독의 <밤 사이>와 김지희 감독의 <주근깨>, 진성문 감독의 <안부>를 연속으로 틀며 우정과 사랑 사이 혹은 우정조차 되지 못한 이 낯설고도 어설픈 감정을 각기 다른 독립영화의 시선에서 푼다. 이번 주제를 놓치기엔 아직 상영회차가 남아있다. 독립영화에 관심이 있거나 단편영화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시간표 및 극장별 일정은 오렌지 필름 인스타그램과 블로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블로그 주소 : 

https://m.blog.naver.com/PostList.nhn?permalink=permalink&blogId=orangejanee&proxyReferer=https:%2F%2Fl.instagram.com%2F


 인스타그램 주소 :

https://instagram.com/orange_film?igshid=1dkispv7qh0w2)



밤 사이 / 류연수 / 17 min


  학교를 그만두고 일찌감치 수능 준비에 들어간 은서는 독서실에서 중학교 동창을 만나게 된다. 이름은 지원이었고, 사실은 서로 얼굴도 긴가민가 겨우 알아보던 사이였던 이 둘은 함께 공부를 하다 친해진다. 그러다 오해가 생기고 은서는 지원과의 사이를 풀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벌인다. 한때 마주 보며 웃었던 얼굴이 사뭇 다른 낯섦을 안고 거리가 멀어지는 과정은 한순간에 일어난다. 그 나잇대의 거의 모든 관계를 처음 겪는 십 대의 시절이라면 감정의 농도는 따뜻한 물에 퍼지는 잉크처럼 더욱 빨리 퍼진다. 영화가 진행되는 그 밤 사이에 은서와 지원은, 특히 은서는 사귄 친구를 떠나보내는 과정을 모두 겪는다. 그렇다면 이제 이 이별을 어떻게 보내줄 것인가. 은서는 독서실을 그만둔 지원의 남은 기간을 양도받는다. 친구의 다 치우지 못한 책상은 그대로일지라도 은서는 다시 혼자가 되는 길을 택하며 지원의 유일한 흔적을 그렇게 품기로 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일상의 모든 과정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주근깨 / 김지희 / 27 min


  다이어트 캠프에 갇힌 십 대 영신은 룸메이트 주희와의 한 사건을 겪는다. 입맞춤 이후 지옥과도 같던 산속의 외딴 캠프는 그래도 살만 한 공간이 되었고, 다른 남자를 좋아하는 주희를 지켜보는 내내 영신은 애가 타면서도 행복감을 느낀다. 영신과 주희는 다이어트에 갇힐 만한, 그저 그런 몸으로만 그려지지 않는다. 끊임없이 엄마에게 마른 몸을 강요받는 영신과 다이어트에 성공해 캠프 비용을 환불받고자 하는 주희의 고군분투는 미디어가 이제껏 안일하게 그려왔던 십 대 소녀의 감성과는 사뭇 다른, 그야말로 치열한 삶의 현장을 그린다. 그때 <주근깨>의 카메라는 감정으로 요동치는 영신의 주위 역시 디테일하게 담아내고자 한다. 그리고 운동을 위해 내내 몸을 흔들어대는, 혹은 곰보빵 하나도 몰래 훔쳐먹어야 하는 다이어트 캠프의 아이들을 그저 유쾌하게만 그려내지도 않는다. 자신이 하는 일에 각기 몰두하며 자생하는 인물들. 트레이너의 윽박지르는 고함이 아닌, 스스로가 선택한 길 위에서 마침내 뛰기 시작한 영신의 발걸음이 가벼운 이유는 영화가 구석구석 담아내며 기꺼이 빛을 들인 이 사각지대들에 있다.



안부 / 진성문 / 25 min


  잊고 지낼 만하고, 잊고 지냈을 수도 있던 사람을 다시 찾아낸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그저 그의 생일이라는 이유만으로 주영은 사라진 옛 친구 소미를 찾아 나서기 시작한다. 당시에 친근함을 공유하던 옛 친구가 남긴 족적들은 번번이 실패하고 어쩌면 너무 늦게 찾은 것이 아니냐는 듯 주영을 맥 빠지게 한다. 그런 주영을 속이는 것은 소미가 남긴 흔적들만이 아니다. 현재 근황을 애타게 찾고 있는 친구임에도 마지막 만남 당시 대화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는 주영 역시 사실은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 영화는 인물들을 긴박하게 조여 오지도 않지만 주영 옆에 머릿속의 혹은 그  곁의 소미 컷을 지속적으로 배치시키며 한낮의 질척한 추격적을 그린다. 엔딩에 울려 퍼지는 김사월의 '누군가에게'의 가사처럼 인생에 잊을 수 없는 사람은 때론 누군가를 그리며 찾는 스스로로부터 비롯하기도 한다. 그 문을 우리는 언제 두드려보기라도 했던가. <안부>는 안부를 건넬 용기를 지닌 혹은 용기조차 지니지 못한 모든 이들을 위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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