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드라마+영화 추천선 (영화 <썸머 필름을 타고!> 외 2편)
***네이버 포스트 '오즈앤엔즈'에 기고한 글을 재업로드합니다.
***드라마/영화의 줄거리 및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최근 이직했다. 영화나 드라마 리뷰에 앞서 이 무슨 궁금하지도 않은 TMI인가 싶겠지만. 이직한 나에게 가장 절실했던 것은 무언가에 더 이상 질려하지 않고 새로 시작하는 마음이었다.
근래 개봉한 영화 <썸머 필름을 타고!>부터 시작하여 최근 SBS 드라마로 리메이크 된 드라마 <중쇄를 찍자>, 그리고 역시 매니아층들의 환심을 샀던 이전 개봉작 <카메라를 멈춰선 안 돼!> 이 셋 모두 일본 열도에서 난 작품인 것은 우연일까.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 시작하는 마음, 그리고 다시 도전하려는 마음에 대한 생생한 외침 그 기록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려는 당신에게
영화 <썸머 필름을 타고!> (2022)
이번 여름엔 너희들의 청춘을 내가 좀 쓸게!
영화를 보기 전 스틸부터, 요즘 감성이라 불릴 만한 필터의 장면들. 개봉 이전부터 SNS의 화제작이었던 영화 <썸머 필름을 타고!>가 개봉 후 1만 관객몰이에 성공했다. 사무라이 영화를 좋아하는 고등학생 '맨발'(*극 중 주인공의 별명.)이 우연한 계기로 자신이 직접 쓴 시나리오로 감독 데뷔에 도전한다.
촬영도 처음, 연기도 처음. 각자의 이상한 개성을 가진 이 오합지졸 고등학생 스탭진들은 촬영 현장을 거치며 차츰 영화인들로 거듭난다. 여전히 잡담을 나누며 여전히 엉뚱한 발상과 대화를 나누는 고등학생들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사무라이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직접 검술을 배워보기도 하며 촬영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연기에 대한 감상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그로 인해 할 말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각기의 말과 이야기를 주렁주렁 매달아놓고, 한 가지 비밀이 드러나기도 한다.
일을 하다 보면, 내가 일에 치여 일이 싫어진 것인지 사람에 치여 일이 싫어진 것인지 헷갈리는 지점이 온다. 그럴 때 이 영화를 추천한다. 고등학생들의 혈기와 청춘을 빌어 정신없이 영화 촬영장 안에 발을 들여다 놓다 보면 슬그머니 나 또한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니까 말이다.. 좋아하는 영화를 이야기 하느라 상기된 볼, 상대가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마음에 와닿을 때까지 열심히 설명하는 행위 자체를 사랑하는 이 오타쿠들은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로맨틱 코미디' 특유의 직접적인 표현을 싫어하고 유치하게 여겼던 주인공은 어느새 영화에 대한 고백을 외치며 영화 그 자체가 된다.
마지막 장면으로도 화제가 되었던 이 영화의 감독은 인터뷰를 빌어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영화를 좋아하는 마음이 자신을 구원한" 내용을 언급하면서 "특별한 사람은 되지 못하더라도 좋아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빛난다"고. 빛나는 청춘의 여름 한 조각을 떼어다 만든 듯한 이 영화, 분명 당신의 마음 속에서 꿈틀거리는 죽은 꿈을 깨울 수 있으리라.
뭔가의 시작을 앞둔 당신에게
드라마 <중쇄를 찍자> (2016)
이 콘티로는 독자를 두근거리게 할 수 없어요!
잘 알죠!
얼마 전까지 저도 평범한 독자였으니까요!
누군가 일드 좀 추천해달라 물어온다면 꼭 <중쇄를 찍자>를 권하곤 했다. 전직 유도선수가 부상 이후 다시 출판만화 편집자로 일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일을 담은 이 오피스 드라마는 개성 강한 만화가 캐릭터 뿐만 아니라 편집자들과 그들의 사정 등 만화계 전반을 폭넓게 다루며 꿈과 현실에 대하여 비춘다. 절망적이고도 참혹한 현실에 치우치거나 높은 이상만을 이야기 하기 보다 늙은 만화가가 새 시대에 새로이 부딪히는 장벽, 결국 꿈을 접어야만 하는 만년 하생 등 업계의 다양한 이야기가 사람들의 눈과 귀를 이끈다.
극 중 꿈과 희망의 화신급으로 통하는 주인공 쿠로사와 코코로(쿠로키 하루 役)는 사실 날 때부터 만화가였거나, 만화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었다. 유도선수를 하다 그 꿈이 좌절됐을 때 쿠로사와 코코로를 구원했던 것은 책만 열면 다른 세계로 향할 수 있는 수많은 만화책, 만화잡지들이었고 그로 하여금 제 2의 인생을 꿈꾸게 한다.
세상 사람들이, 한 번 좌절하고 나면 다시는 일어날 수 없을 것처럼 실패를 논하고 있을 때 우리의 주인공은 두번째 직업을 천직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마음과 열정을 쏟아붓는다. 새로운 일을 도전한다는 것은 그 일이 익숙해질 때까지 초짜마냥 버둥거려야 하고, 자신의 버둥거림을 온전히 나 스스로 지켜봐야 한다는 것에서 오글거리고 유치하다. 그러나 그것도 그 나름대로의 사회 초년생만이 누릴 수 있는 낭만이 아니던가. 이번 주 금요일이면 공개될 배우 김세정의 '온마음' 캐릭터 또한 궁금해지는 이유일 것이다.
다시 도전하는 마음에 대하여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2018)
퐁!
앞서 언급한 영화 <썸머 필름을 타고!>를 보며 2018년도에 개봉했었던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를 떠올린 것은 나뿐이었을까? '원테이크 좀비액션영화'라는 파격적인 컨셉을 걸고, 영화를 찍기 시작한 사람들의 우여곡절을 담은 이 영화 역시 결국 작중 누군가의 시작이자 도전을 담은 이야기이다.
시시한 재연 드라마의 PD 히구라시 (배우 하마츠 타카유키 役). 딸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아무도 하지 않는 '원테이크 좀비영화' 제작제의를 받아들인다. 항상 웃는 얼굴로 OK만 외쳐댔던 그가 영화 컷이 떨어지는 순간 그 안의 흑염룡(?)을 깨워 진정 감독으로 변하고 마는데... 원테이크 촬영이라는 환경 덕분인지 영화 촬영에서의 변수가 각종 웃음코드로 작동하는 것이 이 영화의 특징이다.
만년 OK남이었던 히구라시가 얼굴을 찌푸리고 고함을 지른다. 영화를 잘 만들기 위함이다. 불평을 내지르고, 땀과 구토(?)를 뒤집어 써가며 이리 뛰고 저리 뛰지만 결코 영화 촬영 현장을 하차하는 일은 없을 지니. 다시 날아오르고자 하는 감독, 그리고 각기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스태프들의 일사군란한 현장. 앞서 언급한 <썸머 필름을 타고!>의 좋아한다는 고백보다도 날 것이고 <중쇄를 찍자>의 다양한 현장보다야 좁고 음습하지만 영화 카메라 안과 밖을 나다니며 관객 또한 현장의 롤러코스터를 타게 만드는 '현장감'은 그 어느 작품보다 최고다. 이 여름 무엇보다도 '자극'이 필요한 당신에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