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사이드 르윈>
*** 본 리뷰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http://www.imbc.com/broad/radio/fm4u/movie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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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작품은 매일 20시~21시 'FM 영화 음악, 정은채입니다', 2019년 2월 10일에 소개된 영화 <인사이드 르윈>이다. 우리의 주인공 르윈 데이비스(오스카 아이작)는 추운 겨울 뉴욕에서 자기만을 위한 집 한 칸, 코트 한 벌 없이 정처없이 떠돌아아야 하는 무일푼 뮤지션이다. 한때 잘 나갔던 적도 있었지만 듀엣으로 함께 노래를 부르던 파트너 마이크의 자살 이후 발매한 솔로 앨범의 성적은 부진하기만 하다. 그의 가족도, 옛 애인과 지인도 누구 하나 그에게 호의적이지 않지만 르윈 그 자신 역시 먼저 그들에게 선의를 베푸는 일이 없다. 텁텁하고 건조하기보다 차가운 습윤함을 한구석에 품고 있는 도시 뉴욕을 떠나기 위해 지푸라기 붙잡는 심정으로 시카고로 향하는 차에 몸을 맡긴 르윈은 언제나처럼 한 손엔 기타를, 한 손엔 아는 사람이 맡긴 고양이가 들쳐업는다.
여타의 음악영화와 다르게 <인사이드 르윈>에선 영화도 영화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도 노래를 부르는 일에 순수한 열정이나 선심을 애써 가져다보이지 않는다. 맨처음 클럽에서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친 르윈이 갑작스럽게 안면식이 없는 남자에게 얻어맞고 그가 이제까지 겪어온 고생담을 플래쉬백되면서 영화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는데 이때 영화 속 노래들은 뮤지컬처럼 시도때도 없이 플레이된다기 보다 뮤지션인 그에게 음악이, 특히나 포크송이 어떤 밥줄이고 생계수단인지를 좀 더 건조하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상을 준다. 돈을 벌기 위해 탐탁치 않은 노래를 트리오로 녹음하거나 불편한 자리에서 그가 뮤지션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급작스럽게 노래를 요청받는 상황들 속에서 음악은 과장되기보다 절제된 기회로, 녹록치 않은 그의 삶과 어느 정도 합의된 절충안으로도 보인다.
영화 맨 처음에서 성공적으로 마친 공연 이후 그가 진심을 담아 노래부르는 장면은 그로부터 약 1시간의 시간이 흐른 뒤 산전수전을 겪은 시카고의 클럽에서야 모습을 드러낸다. 함께 시카고로 길을 나선 동승자는 경찰에 잡혀가고 이후 돈이 없어 길을 전전하며 생활하는 그에게 세상은 매정하기만 하다. 기타연습은 커녕 당장 발밑이 축축하게 젖은 신발 하나도 어찌하기에 버거워하는 그가 당도한 곳은 아직 영업하기 훨씬 전의 불꺼진 클럽이다. 우여곡절 끝에 클럽 사장을 만나고 그 앞에서 오디션을 보게 되어 기타를 맨 르윈을 본다. 어두운 무대 덕에 그를 감싸고 있는 그림자가 그를 집어삼킬지 아님 은은하게라도 비추고 있는 빛이 희망이 되어줄지 아직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제인 여왕의 죽음'이라는 내용의 가사가 난해하지만 그를 감싼 명암의 깊이만큼이나 귓가를 울린다. 음악은 소리의 높낮이가 아닌 진동의 예술이라는 전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는 그 순간에 음악영화이자 로드무비인 영화 속 그가 떠돌았던 뉴욕과 시카고의 공기는 3분남짓되는 노래 속에서 관객들의 귓가에 들린다기보다 울려온다.
예술이라기보다 노동으로, 생계수단으로 한없이 진지해질 수 있는 이 작업환경은 중간중간 독특한 위트를 품고 있기도 하다. 특히나 아는 교수가 르윈에게 맡겨놓은 고양이는 주인공 르윈과 붙어다니며 그의 유일한 동반자까지 되어주며 몇몇 재미있는 장면을 연출한다. 고양이가 잠깐 집을 나가고 난 뒤 르윈이 그의 옛 여자친구 진(캐리 멀리건)과 카페에서 말다툼을 할 때 갑작스럽게 카페를 나가는 르윈은 길거리를 신나게 뛰어다니고 있는 그의 고양이를 붙잡고 다시 카페로 돌아온다. 사실 그 고양이는 암컷으로, 처음 교수가 맡겼던 수컷 고양이와 털만 같을 뿐 전혀 다른 길고양이였지만 이후 그가 시카고에서 뉴욕으로 돌아오는 도로에서 환상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장면에선 마치 그 고양이가 그의 뮤즈인마냥 인생을 은유하고 있는 시어이자 노랫말과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회색의 도시에서 그가 언제나 안고 다니는 치즈색 고양이의 노란색 털처럼 영화 곳곳에 위치한 유머와 아이러니가 르윈의 행보에 앞서거니 뒷서거니 그의 인생을 뒷받침하고 그럼에도 삶이 계속되는 것처럼 르윈은 그럼에도 노래를 부른다. 쉬운 일이 하나 없지만 어떻게든 또 지나가고 이겨내는 가사를 쓰며 멜로디를 입힌다. 우연한 기회에 접한 영화였음에도 기대보다 꽤 좋았던 그의 음악들이 생각지도 못하게 나의 주말을 흠뻑 적셔놓았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