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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지 Feb 09. 2019

광기 어린 우연 혹은 고독자의 운명

영화 <테이크 쉘터>

***본 리뷰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번 매거진에서는 이전에 TV, 라디오 등에서 그 줄거리와 소식을 접한 영화를 직접 보고 그에 대해 쓰는 기회를 가져볼까 한다. 그런 영화가 있었구나, 귓가에 맴도는 혹은 눈앞에 아른거리는 풍문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내가 정말 그 영화를 다 보았다면 어떤 감상을 가졌을 것인가라는 구체화에 한 걸음 내딛는 시도이기도 하다. 


 

https://programs.sbs.co.kr/radio/musichigh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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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풍문 속 그 영화' 첫 번째 작품은 매일 23시~1시 '존박의 Music High', 2019년 2월 3일에 방송된 코너 '캐릭터 바이 캐릭터'에서 소개된 영화 <테이크 쉘터>다. 한 여자의 남편이자 딸의 아버지인 커티스(마이클 섀넌)는 얼마 전부터 비슷한 내용의 악몽을 반복적으로 꾸기 시작한다. '폭풍우가 몰려온다'라는 예고와 함께 그의 꿈은 흙비가 내리고, 흥분한 반려견이 자신의 팔을 물고, 새떼가 공격하는 등 커티스와 그의 가족을 위협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악몽을 꾸고 불안이 극심해지자 급기야 커티스는 집 앞에 방공호를 만들기 시작하고 주변 지인들은 그를 외면하기에 이른다. 





<테이크 쉘터>에서 주인공이 꿈을 꾸고 재난에 대비하는 과정은 얼핏 '노아의 방주' 이야기와 비슷하다. 홀로 예언을 듣고 예언의 무게를 감수하는 고독자 커티스는 그의 아내 사만다(제시카 차스테인)가 보기에 아주 위태로운 남편이다. 그는 타고난 예언가도 아니며 이전에 이와 같은 초현실적인 사건을 겪은 적도 없기에 태풍에 대한 망상 혹은 그에 대한 의심은 멀쩡하다가도 천둥소리 같은 환청을 듣고 무리하면서까지 직장 소유의 기계를 집에 들여 방공호를 만들게 한다. 꿈을 꾸는 것이 남자의 우연인지 운명인지에 대한 거대한 물음을 묻기도 전에 예언의 신성함은 커티스가 살고 있는 인간사에서 너무 비현실적이고 심지어 광적인 것이기까지 해서, 혼란으로 뒤덮인 일상은 커티스를 극단적인 불안으로 몰아간다. 이때 영화는 인간사를 초월한 비가시적인 무엇을 쫓기보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아버지이자 이전에 한 번 가정의 해체를 겪은 아들로서 트라우마를 안은 그의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실재에 다가가고 그들을 중심에 두고자 한다. 바로 그의 아내 사만다와 딸 해나다. 그가 걱정했던 것만큼,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사만다와 커티스, 그리고 해나는 폭풍우, 혹은 커티스의 불안 이전에 이미 한 번의 고비를 넘겨왔다. 해나가 청력을 잃고 장애를 가지면서부터 아이와 조금씩 수화를 배워나가며 그와 대화할 때마다 그전까지는 할 필요가 없었던 손짓을 동원한다. 가족 구성원이 함께 무언가를 해나간다는 전제 하에 이 고비는 그들의 연결고리를 끊을 위력의 고난도 아니며 해나가 바뀐 환경에서 적응해나간다는 의미에서 재난도 아니다. 영화의 초반 해나와 수화를 오가는 부모의 대화를 바라보는 카메라는 해가 드는 부엌 테이블에 앉아있는 세 가족을 함께 담는다. 그러다 커티스의 꿈이 심화되고 그의 불안이 가중되는 만큼 그가 가족을 지키고 싶어 하는 심리가 강화될수록 그는 그 자리에서 점점 밀려난, 혹은 스스로 물러난 '가장', '아버지'가 된다. 





커티스의 꿈들에 나타나는 공통점 중 하나는 닥치는 폭풍우로부터 지켜야 하는 존재인 딸 해나가 항상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때 해나를 안고 웅크리고 있거나 도망치는 커티스를 보며 카메라는 안겨있는 해나를 커티스와 함께 불안해하는 인물이 아닌 짐짝처럼 안겨있는 정물처럼 찍는다. 아이의 뒤통수와 작은 등은 아버지의 꿈에서 무감각해 보이고 무감정해 보인다. 커티스는 꿈에서 깨어난 뒤에도 아내에게 자신의 불안상태나 이상행동의 원인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으면서 그가 지켜야 할 가족들을 주변부로 밀어내 버린다. 고독자의 얼굴을 한 아버지는 그의 의무감에 대해 함구하며 자신이 떠안은 무게에 대해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아내에게 날카로워지고, 이해받지 못할 행동을 독단적으로 행하는 남편에게 사만다 역시 화를 내고 행동에 대해 묻고 따지려 든다. 이제 모든 상황이 불안해진 그의 앞에 세상에서 가장 솔직한 얼굴을 내보이는 사만다의 존재는 미래에 대한 예언과 징조 모두를 무용하게 만드는 커티스의 현재 그 자체다. 함께 이겨내는 가족의 모습은 서로가 영원히 합치될 수 없기에 이해'하려 들고' 소통'하려 드는' 몸부림의 과정에서 우러나온다.


 



그의 마음속에 일어났던 폭풍을 한 고비 넘기고 나서 바닷가로 여름휴가를 떠난 그의 가족은 마음 한편이 무겁다. 휴가가 끝난 후 커티스가 정신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의사의 권고 때문이었다. 바닷가에서 함께 모래놀이를 하던 커티스에게 하늘을 보고 있던 해나가 수화로 말한다. '폭풍우'. 드디어 폭풍우가 왔고 그 재난을 바라보는 가족의 표정은 막연한 두려움과 생존에 대한 위협이라기보다 그동안 그들이 함께 견뎌왔던 불안에 대한 무게감을 다시 상기하고 있었다. 커티스가 미치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불안의 실재를 파고들었던 그 과정을 무기력하게 하지 않는 이유는 비현실로 시작해 비현실로 끝나는 영화가 불가사의를 설명하는 가장 이성적이고도 인간적인 방법론을 썼기 때문이었을까. 재난으로 시작해 재난으로 끝나는 영화는 결국 이들을 함께 이겨내는 가족에 방점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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