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발개도리 Jan 11. 2024

어머니께서 알고 계신 '남조선'

- 마음의 다리, 자나 깨나 그리운 어머니와의 통화 - 


"어머니"

엄마가 되어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면서도 때 없이 찾는 그 이름 어머니!!

북한이라는 나의 고향은, 사랑하는 어머니가 계시기에 더 절절하게 그리운 곳이다. 


"어머니"

마음에 꾹꾹 눌러둔 그리움과 다시 만나지 못할 수 있는 길을 떠남에도 이별의 말 한마디 남기지 않고 떠난 죄스러움으로 나는 오늘도 "어머니"를 불러본다. 

나의 간절한 소원 중에 어머니와의 상봉이 있다. 잠깐이라도 사랑하는 어머니를 꼭 만나고 싶다. 

고향에 계시는 어머니를 만날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얼마만큼 더 아프고 힘들어야 나의 소원이 이루어질까?

그날은 통일일까? 과연 한반도의 통일은 올까? 

혹시라도 통일의 날이 온다면, 미래는 알 수 없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희망을 잃지 않고 사랑하는 어머니와의 상봉을 기도하는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을 간직하며 내 자리에서 꿋꿋이 그리움을 견디는 것뿐이다. 





"어머니, 어머니 맞습니까?" 


2012년 9월 어느 날!

저는 북한에 계시는 어머니와 1년 만에 전화통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헤어진 지 1년이 흘렀지만 10년, 20년, 그 이상의 시간이 흐른 듯 전화기 너머의 어머니 목소리를 구분하기 어려웠습니다. 


"도리 맞니? 도리야 어디야?" 


어머니도 울기시작하고 저도 함께 울었습니다. 저는 고향을 떠날 때 어머니에게 편지한 장 남기지 않았습니다. 저의 부재를 어머니가 어떤 방법으로 이겨내실지 마음이 아팠습니다. 제가 소속되어 있는 직장과 담당보안원, 보위부 등 제의 행방을 알기 위해 어머니께서 불려 다니셨으리라. 주변 이웃들과 조직의 추궁과 중요하게는 어디로 간지 모르는 소중한 딸의 안전 때문에 백발이 되셨을 어머니를 생각하면 죄책감에 마음이 무너집니다.


어머니를 만나면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어떤 일들을 겪으셨는지? 

얼마나 힘드셨는지? 


하지만 짧은 통화시간에 하나도 묻지 못하고 그냥 엉엉 울다가 끝났습니다. 북한보위부에서 전화 전파를 추적해 통화하다 걸리게 되면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통화를 길게 할 수 없습니다. 


그로부터 저는 해마다 전화통화를 이어주는 브로커를 여기저기 찾아 어떻게 해서든 어머니와 통화하고 따뜻한 목소리를 들으면 마음의 안정이 깃듭니다. 


그러나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세월이 흐르면서 어머니와 통화하고 난 후 저는 계속 마음의 눈물이 흘립니다. 어머니에게 꼭 100살까지 사셔야 된다고 당부를 하지만, 더는 어머니를 만나지 못할 것만 같아 저의 마음은 매일매일 어머니 계신 곳으로 달려갑니다. 


저 하늘 흰구름에 실려 내 마음 달려가네
지금도 나를 기다리며 열려있을 고향집
그리운 고향길을 다시 걷고 싶어라 다시 걷고 싶어라

- 북한 텔레비전연속극 <력도산> ost -



2016년 어느 날에도 저는 자나 깨나 그리운 어머니와 통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도리야 어떻게 지내니? 엄마는 한잠도 못 자고 니 걱정이다. 맨날 시위하고 난리던데 그런데서 어떻게 사니?"


저는 말문이 막혀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설명을 드려야 하지?


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하느라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때입니다. 아마 어머니께서는 북한의 보도에서 내보낸 촛불시위를 너무 무섭게 보셨던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경험하지 못한 어머니는 촛불시위가 대한민국의 전부 모습인 것입니다. 


사실 저는, 정치에 관심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북한에서의 경험으로 정치에 적극적으로 저의 의사 표현을 하기 두렵습니다. 북한은 정치적 발언을 한마디 잘못하면 큰일 납니다. 그리고 고향의 가족들이 혹시라도 저 때문에 불이익을 당할까 봐 저는 말 한마디, 글 한 글자에도 주의를 기울인답니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도 저에게 큰 도전이고 용기입니다. 


제가 자랄 때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습니다. 


"어디 가서 항상 말 조심해라. 짧은 혀 잘못 놀렸다가 긴 목 잘린다." 


이런 배경에서 성장한 저는 촛불시위 곁에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머니께 안심하실 수 있도록 대한민국의 상황을 간단히지만 강력하게 설명해 드렸습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남조선'이라는 자본주의를 두려워합니다. 


저와 통화하실 때 어머니께서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밤은 발편잠을 자겠다. 항상 네가 잘못될까 봐 니 걱정뿐이다. 나는 당의 배려로 잘 살고 있다. 아무 걱정하지 마라" 


고향이 물난리 나서 집이 잠겼던 해에도, 열악한 환경에서 코로나 19를 겪으면서도 어머니는 늘 저를 걱정하십니다. 그리고 불같은 제 성격을 알고 계시기에 남편한테 잘하라고 늘 말씀하십니다.


그러는 어머니께 저는 매번 말씀드립니다. 


"어머니 제 걱정은 하나도 하지 마세요. 항상 어머니와 꼭 만나고 싶은 생각뿐입니다. 어머니, 저는 어머니가 상상 못 하실 정도의 생활을 누리고 있어요. 그리고 여기는 여자들이 얼마나 살기 좋은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어요. 어머니, 제가 어머니 딸이에요. 대학원도 다니고, 운전도 하고, 비행기 타고 여행도 다니고... 어머니, 딸을 정말 좋은 곳에 시집보냈다 생각하시면 돼요."  


우리 어머니는 과연 저의 이야기를 진실로 믿으실까요? 


제가 나서자란 고향에서 여자가 운전한다거나, 평민이 비행기 탄다는 이야기는 하늘에 별을 딴다는 이야기나 다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딸이 어머니를 안심시키느라 일부러 더 붙여서 하는 말이라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우리 어머니가 알고 있는 남조선과 현재 대한민국은 너무나 다른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도 저처럼 북한이라는 우물을 벗어나보신 적이 없습니다. 어머니는 더 충성심이 강한 세대입니다. 그리고 저보다 더 정직하게 선하게 살아오셨기에 '고난의 행군'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겪으면서도 한 번의 의심 없이 그 나라에 충성을 다하고 진심을 다하며 살고 계십니다. 


저는 어머니와 통화를 하면서 더더욱 분단된 한반도의 현실을 마음속에 더 깊이 느낍니다. 어머니와의 짧은 통화는 한반도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어머니의 따스한 목소리는 항상 마음에 따뜻이 스며듭니다. 기회를 빌어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무한한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언젠가 어머니의 품에 안길 있는 그날을 소망합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상봉의 그날까지 부디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그리움은 미처 닿지 못한 노래의 가사처럼, 항상 내 귓가에 맴돌고 있습니다. 

- 알버트 슈바이처 -



작가의 이전글 난생처음 실제로 만난 '남조선 괴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