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발개도리 Feb 15. 2024

한반도의 추운 겨울과 따뜻한 겨울

- 잊지 못할 계절 겨울 이야기 -

한반도의 지평선에 서로 다른 북한과 남한의 환경은 확연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나는 나서 자란 고향의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 그해, 그 겨울을 잊을 수 없다.  사랑하는 어머니가 없이 홀로 처음으로 맞이한 겨울이 제일 따뜻한 겨울이었다. 북한의 겨울과 남한의 겨울은 대조를 추위와 따뜻함의 대조를 이룬다. 처음으로 맞이한 따뜻한 겨울은 나에게 견디기 힘든 가장 무서운 '외톨이'라는 추위를 알게 하였다. 그럼에도 추위를 이겨내면 온갖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오는 것을 알기에 나는 그 추위를 꿋꿋이 버텨 낼 수 있었다.


 




 처음으로 맞이한 따뜻한 겨울


2012년 1월 어느 날

한반도의 북쪽에서 남쪽으로 건너가는 여정은 저에게 무한한 아픔의 경험과 새로운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대한민국에 도착한 순간!!

목숨 걸고 대한민국으로 오던 그 길들이 스치듯 지나갔습니다.


중국 대륙을 횡단하는 버스, 그리고 북한사람이라는 것이 발각될 위기의 기차 안,

라오스라고 하여 라오스인 줄 알았고, 오토바이를 타라고 하여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외국인의 허리를 붙잡고 오토바이를 타며 달리던 소름 돋는 순간들,


야밤에 몇 시간 산을 넘어 악어한테 먹힐 수도 있다는 두려움의 매콩 강을 건너 태국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조금이나마 안심할 수 있는 태국의 짧고도 긴 거의 두 달이라는 체류로 이어졌습니다. 언어 소통의 어려움으로 함께한 동행자들과의 시간은 흘러가는 대로 흘러 보냈습니다. 그 시간 이민자로서의 절차를 따라야 대한민국으로 갈 수 있는 여건이 주어졌습니다.


그 시간들은 TV에서만 봐 왔던 범죄자들의 취급을 받으며 키재기가 있는 앞에 서서 사진 찍기, 열손가락 지장 찍기, 재판, 감옥생활, 조사 등 평범한 일상들에 상상도 못 할 어려운 순간들로 가득 차있었습니다.


다행인 것은 빨리 한국으로 무사히 도착만 하면 된다는 긴장감과 태국경찰들이 칭찬하던, 욕을 하던 대화가 통하지 않기에 그냥 무시하면 그만이었습니다.


이민자로서의 절차가 끝난 후,


대한민국으로 입국하는 첫 비행기의 여행은 저에게 시간여행자의 경험을 선사하였습니다. 태어나 한 번도 비행기를 타고 여행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던 저는 여름의 나라 태국에서 5시간 만에 대한민국의 겨울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향을 떠난 그날부터 모든 날들은 눈물과 슬픔에 빠져있는 저를 위로하듯 신비의 세계를 펼쳤습니다.


대한민국에 입국한 그해 겨울은 태어나 처음으로 경험한 따뜻한 겨울이었습니다.


대한민국에 입국하여 5년! 저는 대한민국의 계절 중에 겨울을 제일 좋아했습니다. 지금은 진달래 꽃이 피는 봄이 정말 기다려집니다.


사람은 '환경 속의 인간'이라 저도 현재 환경에 적응하며 살기에 지금은 남한의 겨울이 춥게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제가 경험한 따뜻한 겨울은 잊을 수 없는 추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 해 겨울은 저에게 제일 따뜻한 겨울이었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영영 이별하며 혼자 외롭게 보낸 제일 춥고 추운 겨울이었기 때문입니다.



 고향의 겨울 풍경 그리고 추억의 눈송이


제가 살 때까지만 하여도 고향의 겨울은 평균 영하 15도였습니다. 때로는 영하 20~30도까지 내려갔습니다. 겨울에 두꺼운 내의를 입지 않거나, 장갑을 끼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추웠습니다. 그런 추운 겨울에도 저는 자전거를 많이 타고 다녔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보면 볼은 빨갛게 얼고, 속눈썹에 성에가 하얗게 껴 눈사람으로 만들어 버리곤 합니다.


눈이 내리는 날엔 직장 동료들과 함께 도로 위의 눈을 치우던 생각이 납니다. 눈 치우기 싫어서 투덜대면서 나가도 눈 치우는 일은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눈덩이를 굴려 익살스러운 눈사람을 만들기도 하고, 눈덩이를 만들어 슬그머니 다른 사람의 패딩 모자에 넣어놓고 장난을 치던 날도 있습니다.


북한의 경제는 대한민국에 비해 몇십 년 뒤처져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에는 맑은 공기가 자욱한 자연이 남아 있습니다. 아침에는 새벽안개 흐르고 집집마다 밥 짓는 냄새, 구수한 토장(북한에서는 콩으로 메주를 발효시켜 담그는 장을 토장이라고 부릅니다.) 국 향이 그리워집니다. 또한, 집을 지키는 개들의 짖는 소리가 정겹게 들립니다.


저에게 고향의 추운 겨울이 따뜻하게 남아 있는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곳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조용히 눈을 감으면 엄마가 바둑이와 함께 항상 마중나오시 던 동구밖 길이 눈앞에 선합니다.


또한, 나의 고향은 밤하늘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고향의 밤은 은하수가 쏟아지는 별을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날들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깊은 밤 창문을 열면 북두칠성이 산 위 떠 있고, 그 아래 제가 살던 고향집이 있습니다.


'어디 가든 북두칠성 따라가면 집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네.'


저는 북두칠성 아래에는 우리 집이 있다고 믿었던 그 시절, 그 순간들이 여전히 그립습니다.


하지만, 10년 전 나의 고향에도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받아 여름 온도가 28도로 정말 더운 날이 하루, 이틀 생겨나기 시작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황사바람'의 영향을 받아 날씨가 부옇게 흐릴 때도 있었습니다.


이 모든 추억은 시간이 흘러가면서도 변하지 않는 고향의 따뜻함을 떠올리게 해 줍니다. 그리고 지금도 북두칠성이 우리 집을 비추고 있는 듯한 느낌은 영원한 고향의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언젠가는 고향에 꼭 가서 추억 속의 추운 겨울을 만나보고 싶고, 풀벌레 우는 소리를 감상하며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저에게 그날이 꼭 오기를, 한반도의 통일이 꼭 오기를 소망해 봅니다.



겨울의 추위를 이기면 봄의 따뜻함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











작가의 이전글 사회주의 경제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