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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는 사람 Jul 17. 2022

<벼랑에 선 사람들>

발로 쓴 기사

  앞 포스팅의 <황혼길 서러워>와 같이 읽으면 좋을, 같은 출판사의 책이다. <황혼길 서러워라>보다 먼저 읽었다. 나는 영화나 책 소개에 별점을 잘 안 매기지만 이 책을 읽은 2019년 당시엔 별점 5개에 4개 반쯤 주고 싶었다. 책을 읽은 그 해 연도의 책 선물 중 이 책이 가장 많았었다. 또, 그 해에 내가 읽은 '올 상반기의 책'으로 꼽기도 했었다. 오늘 그때의 독서 메모를 옮기며 발간 연도를 보니 나온 지 벌써 10 년이 됐지만 책 내용 면면으로 보면 여전히 '올해의 책'으로 꼽기 지나치지 않다. 책 속에 인용된 숫자, 통계만 좀 달라졌을까 '벼랑에 선 사람들'은 오히려 더 늘어나지 않았을까 싶으니까.


  요즘은 방송국, 신문사에 가만히 앉아서 돈 주고 기사를 사는 비정규 파파라치 기사나 인터넷, 증권가 찌라시 기사들을 요리조리 선정적으로 편집해서 내보내는 '~카더라' 통신이 언론의 한 단면이다. 누가 카더라 식이라 오보, 허위에 대한 책임도 없다. 출처 불분명한 기사 하나를 온 방송사, 신문사마다 다 받아쓰기도 하는데 그 받아쓰기마저 허술해 상상과 소문, 짜집기 편집으로 기록이나 기사가 아닌 창작에 가까운 기사도 많다. 언론의 사명감, 책임감은 희박해지고  언론의 '자유'만 자유롭게 막 쓰고 있다. 이런 시류 속에서 보기 드물게 '발로 쓴 기사'를 이 책을 통해 오랜만에 본 것 같다.

T

  비정규 3D 작업장, 주택난, 보육, 병, 대출 등 빈곤의 5대 현장을 심층 취재하고 그 대안까지 제시한 취재, 기사집이다. 시장, 텔레마케터, 청소업체 등 열악한 근무 현장에 직접 취업한 체험 기사, 장애인, 중증 장기 환자, 빈곤층의 의료복지 제도, 청년 빈곤 대출 등을 직접 당사자로 분해 심층 대면 취재한 흔적이 페이지 곳곳에 살아 있다.

  이 책에 실린 기사 중 무책임한 소문에 의존한  '~카더라'는 한 줄도 없다. 직접 겪고 바로 옆에서 들은 자만이 쓸 수 있는 수기같이 생생한 취재록, 기사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고 현실적인 대안 고민, 제시까지 한다. 예를 들면 의료 보험비 1인당 1만 1천 원 정도만 더 내면 연간 12조의 세액이 증가되므로 어떤 중증의 고액 치료도 선진 유럽국같이 연간 병원비 부담이 수 십만 원을 넘지 않게 할 수 있다는 예를 들고 근거를 제시한다.


  의료민영화가 왜 무서운지를 단순히 감정적 공포감으로 접근하지 않고 미국과 선진 유럽의 사례와 통계를 들어 예시한다. 병원 만족도, 사고 발생률, 서비스, 의료 직원 수 등의 모든 면에서 '상급' 판정 10위 권 안에 든 병원 중 '민영'은 하나도 없었다는 구체적 사례들을 조목조목 짚는다.  국민들 의료 보험 부담률과 8,90프로 이상을 국가가 부담하는 나라의 경제 수준, 정책 시기 등 여러 항목에서 비교 사례를 드는데 나 같은 경제, 의료 무식자도 아주 알아듣기 쉽게 설명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1년에 병원 몇 번 안 가고 비정규직자나 불안한 자영업자를 번갈아 사는 내 의료보험이 항상 과다하다고 생각하던 나도 '내 시급보다 많은 ' 1만 1천 원을 기꺼이 내지고 싶어 진다. 이밖에도 현행의 주택, 육아, 복지, 학자금 등 여러 복지, 교육 지원 제도가 4대 보험 가입자(정규직), 대기업, 성적 우수자, 잔고 보유자 등 어차피 가진 자 위주로 돼 있어 비정규직 극빈층은 제외 대상이 되거나 방법, 금액 면에서 비현실적 지원만 되고 있다는 중요한 지적을 한다.

  예를 들면 예전에 나도 지적한 얘기인데 지방에서 상경한 흙수저 자식이 4년 내내 알바로 생활비 버느라 공부할 시간이 없는데, 학자금이나 기숙사 입소 우선 조건이 '성적 상위자'니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중상류층 학생한테나 해당되는 법이라는 얘기 같은 것. 또, 운신도 불편한 중증 장애인에게 '고속도로, 항공료 할인 요금'보다는 병원 왕복 택시비 지원이나 교통편 공급 같은 게 더 현실적이라는 지적 같은 것.

  페이지마다 가슴 아프지 않은 이야기, 울분이 솟지 않는 이야기가 없었지만 특히 2, 30대 청년층의 고행에 가까운 고생담을 읽을 땐 읽기를 몇 번씩 더 많이 멈춰야 했다.

  이 좋은 기사를 쓴 그때의 청년 기자들은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까? 그때처럼 세상과 사람에 아파할까? 좋은 세상이 되기를 아직도 염원하고 열망하고 있을까? 이 책 속 주인공들은 벼랑에서 좀 물러나 있나?

  이 좋은 책을 낸 출판사 이름을 보니 '오월의 봄'이다. 어쩌다 보니 마침 5월에 나는 이 책을 읽었는데 이 책 속 주인공들에게도 '5월의 봄'이 좀 도착했으려나? 했으면 좋겠다. 이 포스팅을 읽을 여러분들도 이 책 많이 많이 구하고 빌려서 읽으시길. 읽고 같이 고민하고 같이 아파했으면. 좋은 시민으로 공생하며 사는데 이런 좋은 책이 밑절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관련 포스팅은

https://brunch.co.kr/@hin-son/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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