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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옥 Jun 05. 2022

보이지 않는 손


수도원에 갔다.  키를 받아 문을 여니 십자고상이 반긴다. 성호를 정성스럽게 그었다. 책상 위에는 성경책과 두봉 주교님이 쓴 <가장 멋진 삶>이라는 책이 올려져

있다.


책을 펼치니 반쪽으로 잘린 우편봉투에 압화 된 갈퀴 나물이 들어 있다. 아! 유난히 예쁜 보라색을 하고서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 보라꽃 내게 선물한 것도 아닌데 성경을 보다가도 기분이 괜히  좋아진다. 어느 길손이었을까 그 방에서 오래 묵었는가 싶다.


뜰을 지나 기도하러 가는 길목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갈퀴 나물이 피어 있다. 그 꽃  몇 줄기 가져와  압화 시켰으리라.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봉투에 다소곳하게 담아 놓 이 방을 떠나지 않았을까


아침 기도를 마치고 뜰을 거닌다. 뜰에서 갈퀴나물, 개갓냉이, 개망초 토끼풀, 애기똥풀을 만난다.


그 꽃들 가지고 들어와 싱크대 선반에서 흰색 컵 하나 꺼내 물을 붓고 꽂으니 운치 있다.  풀꽃들의 어우러짐은 가히 나무랄 데가 없다. 식탁에 올려진 꽃을 바라보며 기분 좋은 점심식사를 했다.


나도 드봉 주교님의 책 속 갈피마다

컵에 꽂았던 꽃을 사뿐히 끼워 두고

왔다.


어느 누가 그 방에 머물게 될지 책을 펼치면서  기분이 좋아지기를 바란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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