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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주씨 Jul 09. 2024

커피를 배움

20240709

바리스타 학원에 등록했다.

배워서 알바라도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내일배움카드 등록을 하고 국비과정을 신청했다. 퇴근하고 집에 주차를 한 다음에 지하철을 타고 학원에 간다. 저녁 일곱 시 반부터 열 시 반까지 화, 목.


새로 무언가 배운다는 건 시작이 어쨌든 즐겁다. 몸을 써 해야하는 일이라 집중도는 더 올라간다. 퇴근하고 피곤해진 몸을 이끌고 늦지 않기 위해 지하철로 바쁘게 걸어가며 어쩐지 에너지가 새로 채워지는 기분이 든다. 퇴근길 지하철에 올라 타 밀린 책을 읽거나 핸드폰을 보면서 사람구경도 한다. 한 번 환승을 하고 걸어 학원에 도착한다. 바리스타 학원이라 문을 열고 들어서면 은은한 커피 향이 기본이다. 에어컨이 켜진 적당한 공기와 커피 향, 안녕하세요 건네는 인사도 참 좋다.


한여름에도 어지간해선 뜨거운 커피를 마신다. 주말이면 좋아하는 까페로 간다. 잔에 마시는 공들여 내린 핸드드립 한 잔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 작년에 당뇨판정을 받았다. 식이 조절을 하며 제일 절망스러웠던 건 커피를 되도록이면 피해야 한다는 것. 집에서도 대충 발로 내린 커피라고 낄낄거리는 핸드드립, 캡슐커피, 모카포트를 번갈아가며 커피를 마시던 나는 갑자기 정말 나라 잃은 백성처럼 갈 길을 잃었다. 커피를 어떻게 안 마시지? 디카페인도 마셔보고 혈당 반응을 덜 일으킨다고 해서 커피를 참다 참다 도저히 힘든 날은 카누 한 봉지를 마신다. 커피를 오래 참다가 어쩐지 감지덕지하고 마셨다. 카누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어쩐지 카누는 커피가 간절한 타이밍에 작용하는 포션이지 커피는 아닌 기분. 이 정도면 커피를 꽤 좋아하는 축에는 들겠지?


혈당은 이제 어느 정도 안정권에 들었고 식이도 좀 느슨해지고 커피도 간간이 마신다. 바리스타 학원에 등록을 한 것도 어느 정도는 괜찮다 하는 감각을 믿고 시작한 일이다. 출결을 내일배움카드로 하는 것도 커피머신을 만져보는 것도 다 처음이다. 매일 비슷한 사람만 만나다 전혀 접점이 없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도 크다. 하나의 목적을 두고 모인 사람들은 공통의 주제를 놓고 꽤 열심히 공부한다. 이 분위기도 참 좋다. 내 손으로 에스프레소를 만들어내는 일, 그 커피가 생각보다 맛이 괜찮아서 너무 놀라웠던 순간, 선생님이 내려주신 우유거품이 끝까지 쫀쫀한 카푸치노의 풍성한 맛도, 커피는 예민하잖아 하며 아는 척을 하던 것들이 직접 분쇄도를 조정해 보고 시간을 재며 커피를 내리며 경험으로 몸에 쌓인다. 어쩐지 참 정직하게 행복하다.


우유 스티밍을 배웠다.  쫀쫀하게 만들어진 거품이 피처를 흔들어 윤이 나게 변하는 과정도 놀랍다. 세상엔 어쩜 이렇게 신기하고 놀라운 것들이 이렇게 많은가 감탄을 하며 조심조심 기계와 피처를 다뤄본다. 오늘은 아마도 진짜 카푸치노 만드는 걸 배울 것 같다. 두근두근. 맛없는 커피를 마셔야 할 때 커피맛을 속이는 수단으로 선택하는 라떼가 아니라 제대로 풍성하게 거품을 올려 다 마시도록 맛이 또렷한 카푸치노를 내 손으로 직접 만들 수 있다니. 이건 쫌 놀랍고 기대된다.


일이 앞을 알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들 때 일부러 여기저기 수소문하듯 문학강의를 찾아다녔다. 당장의 내 일과 접점이 하나도 없어서 시간을 들여 다닌다고 해도 당장에 도움이 1도 안 되는 그런 일들이 너무 간절했다. 내 일과 한 발 물러서 이야기와 작가의 살아온 일들을 들여다보며 되짚어 세상을 읽는 일. 지금 이 순간에 문학이 무슨 소용이야 할 테지만 잠시 생각을 접고 다른 차원으로 입장하는 기분으로 강의를 들었다. 시향 연주회도 열심히 다녔다. 돈이 너무 없는데 시향 연주회는 비교적 적은 돈을 들여 이끌어낼 수 있는 최대의 행복을 주었다. 치킨 대신에 연주회 그런 마음이랄까. 전화를 끄고 단절된 순간 귀로 눈으로 밀려오는 음악은 너덜 해진 심신에 풀칠을 하는 것 만 같았다. 드문드문 그렇게 버텼다. 커피를 배우는 건 강의와 연주회 다음 단계 같다.


오늘, 서식도 없는 공문을 만들어 읍소하듯 페이지를 채우고 났더니 세상 만구 귀찮다. 그저 눕고 싶다 퇴근하고 싶다 생각을 하다 아 오늘 바리스타 학원 가는 날이지. 퇴근 시간을 손꼽아 본다. 그래 가서 즐겁게 공부하고 오자. 비는 오지만, 양말은 젖겠지만 그래도 뭐 양말은 마를 테고, 오늘은 카푸치노 배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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