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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분 Aug 05. 2021

근데 저 지금 왜 혼나요?

이유는 알고 혼나고 싶습니다. 이유가 있다면.




우리 회사는 반기에 한 번 한 해 동안 좋은 성과를 냈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로 업무의 효율을 향상시킨 직원을 포상한다. 우리 팀에서도 모두가 한 마음으로 지목한 직원 한 명을 추천했고, 기쁘게도 최종 심사까지 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것이 내 눈물을 흘리게 하는 일이 될 줄이야.



사건의 발단은 나를 제외한 팀의 모든 인원이 출장을 간 것이었다. 포상직원을 선발하던 때가 마침 현장업무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시기라 사무실에 돌아가면서 남았는데, 하필 내가 혼자 남은 날 해당 직원의 업적에 대해 최종 보고하는 자리가 열린 것이다. 전화로 상황을 설명하자 나라도 가서 설명을 하고 오라는 팀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당시 포상 후보에 오른 직원이 했다는 일은 내가 해당 팀에 배치되기 전의 일로, 귀동냥 정도로만 들었던 터라 안다고 하기도 뭐한 상태였다. 그나마 어깨너머로 봤던 것이 있어 대략적인 틀 정도만 이해하고 있는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랴부랴 한 장짜리 요약 보고서를 작성해서 올리고 오후 세 시에 열린 회의에 참석했다. 처음 보는 얼굴들이 가득했다. 공유폴더를 뒤져가며 찾아낸 자료들로 짜깁기해 간 종이 한 장에 모든 것을 내맡기고 발표 순서를 기다렸다. 귀퉁이에 메모해둔 내용을 훑고 또 훑었다. 내 차례가 되었고, 3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발표가 끝이 났다. 바로 다음 차례에는 다른 팀에서 과장이 직접 나와 우리 직원이 받아 마땅하다며 만면에 미소를 띄고 여유롭게 발표를 끝냈다. 이건 반칙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별 도리가 있나.



이튿 날 오후 심사 결과가 나왔다.

이럴 수가! 우리 팀 직원이 포상을 받는단다.

뿌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의기양양한 마음이 얼굴에 드러날까 조심하며 그 직원에게 축하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한다는 말이, '괜한 짓'을 해서 자기가 '귀찮게' 성과보고서를 써야한다나?

아, 얄밉다. 사람좋은 줄 알았더니, 오늘은 겸손함이 지나치다.



살짝 나온 입술을 굳이 집어넣지 않은 채 자리로 돌아와 앉았는데, 팀장이 나를 불렀다.

그 직원이 훌륭한 일을 해서 받은 건데 뭘 굳이 불러서까지 수고했다는 말을 하나 생각하며 옆에 가서 섰다.

그런데 시작이 심상치 않다.



너 가서 뭐라고 설명했냐, 가 첫마디였다.

이러이러해서 저러저러하다고 했어요, 했다.


그것만 얘기했어? 가 두번째였다.

음. 그러그러한 점도 있다 까지 얘기했는데요, 했다.


야, 이거하고 저거하고 그거는 왜 빼먹었냐, 세번째였다.

겹치는 내용이기도 하고 시간이 안돼서 최대한 압축해서 얘기했어요, 했다.


신문기사를 띄워둔 모니터만 쳐다보며 마우스를 내리는 손가락이 심상치 않더니 급기야 일장연설이 시작됐다. 우리가 한 일은 어떤 의미가 있으며, 중요한 건 이 부분이고, 발표를 이렇게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저 부분이 아쉽고, 어쩌고저쩌고.



수고했다 한 마디로 끝나리라 예상하며 팀장 옆에 놓인 의자에 앉지도 않은 참이었다.

팀장 모니터 너머로, 귀찮지만 성과보고서를 써내려가는 직원이 보였다.

갑자기 서러움이 복받쳤다.

무아지경에 빠져 멈출 줄 모르는 팀장의 염불같은 연설을 끊었다.



팀장님, 근데 저 지금 왜 혼나요?



순간 내 눈에 부딪치던 팀장의 당혹스러운 눈빛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어? 야, 그게 아니라...

저, 제 자리로 갈게요.

어어, 그래. 야, 고생했다.



자리로 돌아가다 난처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아뿔싸, 눈물이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다. 황급히 화장실로 뛰듯이 발걸음을 옮겼다. 한 번 터진 눈물은 좀처럼 멈추려들지를 않았다. 팀장과 직원을 교대로 흉보다 가까스로 진정하고 사무실로 돌아갔다.

(지금 생각하면 눈물까지 흘릴 일이었나 싶다. 시간은 모든 것을 우습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 날 팀장은 점심으로 만삼천원짜리 돈까스 정식을 사줬다. 밖에서 먹는 거 돈아깝고 귀찮다고 닭가슴살로 도시락 싸오는 사람이 큰 돈 썼네 싶었다.

밥을 먹다 팀장이 내 맘알지? 하기에,

아니요, 팀장님 미워요. 했다.



그 후로도 팀장은 모든 (부하)직원에게 두루 공평하게 이해할 수 없는 분노를 표출하거나, 밑도 끝도 없이 토라져있거나, 주제를 알 수 없는 설교 혹은 하소연 혹은 넋두리를 읊어댔다. 그럴 때면 브레이크가 없는 1톤 트럭이 덜컹거리며 질주하는 것같았다. 마냥 흘려듣지 못하는 나는 백에 백까지는 아니어도 열에 서넛 정도는 그 앞에 뛰어들어 그 질주를 중단시키곤 했다. 심지어 나를 향한 질주가 아닐 때도 그랬다.



휴직에 들어온 지금, 그 당시를 떠올려보면 팀장은 자신의 존재감을 참 요란스럽게도 확인했구나 싶다.

거기에 맞서 싸우던(?) 나는 몹시도 혈기왕성한 사나운 병아리였고.

만약 복직 후에 그런 상사를 다시 만난다면 그 때도 저 지금 왜 혼나냐 고 물어볼 수 있을까?

직장인의 세계에서 육아의 세계로, 다시 직장의 세계로 차원을 넘나들며 내 혈기가 쪼그라들지는 않을까?



혼나더라도 이유는 알아야겠고,

이유가 없다면 혼나지 않겠다.



이것을 혈기라고 할 수 있다면, 아니 해야한다면, 아직은 그 혈기를 놓치고 싶지 않다.

비록 만삼천원짜리 돈까스 정식에 풀리는 서러움일지라도 서러울 땐 서러워하겠다.

나는 그렇게 천천히, 겨우겨우 철이 들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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