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가 대신 한 선택
아들이 성장하는 모습에서 내 어릴 적 모습이 투영되었다.
내 기억에 초등학교 때는(난 국민학교 세대이다) 행복했다. 그리고 중학교 때는 그럭저럭, 고등학교 시절은 힘겨웠다. 사춘기와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집 안의 어려움을 함께 닥쳤던 시기였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학교 공부만으로도 성적 부담이 없었다. 그런데 고등학교는 학교 공부 만으로는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있는 성적을 내기가 어려웠다. 물론 내가 학교 공부에 집중하지 않은 부분도 있다. 고등학교 학창 시절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좌절과 패배감을 안겨준 시간이었다. 한 때 자퇴를 결심하기도 했지만, 어머니의 만류로 졸업은 했지만... 나의 고등학교 학창 시절은 암울했다. 질풍노도의 청소년기에 경험하게 된 좌절과 패배감은 꿈과 희망을 잃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고등학교 학창 시절의 불행을 극복하지 못한 또 하나의 이유는 탈출구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운동, 음악, 미술 등등 변변찮은 취미 하나 없던 나에게 지겹고, 하기 싫은 공부가 생활의 전부였기에, 당시 난 그저 가방만 들고 등하교하는 희망도 꿈도 의지도 없는 그저 그런 학생일 뿐이었다.
초중등 시절에는 그림 소질이 있었으나, 공부가 우선순위였기에 한 때 소질 있었던 아이로 스쳐 지나갔다. 만들기를 잘해서, 과학 공작 경진 대회에 나갔던 아이였지만 역시 한 때 소질이 있었던 아이가 되어버렸다. 테니스를 좋아해 하루 5시간 이상 연습을 했던 아이였지만... 그렇게 공부 앞에 모든 것이 묻혀버렸다. 제대로 공부도 하지 못했으면서 말이다.
이런 내 경험을 아들이 다시 겪는 것을 원 않았다.
짜인 틀 속에서 성공과 실패를 나누고, 꿈을 꿀 수 있는 청소년에게 좌절과 패배감을 안겨주는 교육시스템이 싫었다.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 갇히는 것도 싫었다. 어떤 능력이든 자신의 꿈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을 찾거나, 개척하여 자기 주도적 행복한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삶을 내 아들은 살기를 바랐다. 그래서 가능한 정규 학교에는 보내지 않기로 마음속 깊이 생각했다. 이러한 나의 생각이 아내와 교감하고, 공유하면서, 아들에게 부모로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선택에 대한 고민을 하였다.
아들이 5살이 되는 해부터 어린이 집을 다녔다.
동네 어린이 집에 처음에는 재미있게 다니던 녀석이 어느 날 가기 싫다는 것이었다. 몇 번의 등교 거부에 아들과 우리 부부는 대화를 하였다. 아들은 어린이 집에서 생활하는 것이 자유롭지 못하고,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하는 것이 많다는 것이 주된 이야기였다. 규칙과 규율에 따른 생활이 아이를 힘겹게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들에게 규칙과 규율도 필요한 듯하여, 조금 더 다녀 보고, 그래도 싫으면 다니지 않는 것으로 이야기를 나눈 후, 아내는 어린이집 선생님과 상담을 하였다. 어린이 집 선생님은 아들이 다른 아이보다 학습이나, 행동이 좀 떨어진다는 말을 하셨다. 보통 아이들이 하는 것을 따라오지 못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아내는 근심했고, 나와 상의하였다. 문득 내 어린 시절이 떠 올랐다. 난 하기 싫은 일이나, 마음에 내키지 않으면 하지 않는다. 그것 때문에 무던히 나의 부모님이 힘들어하셨고, 난 고집불통 아이로 낙인이 찍혔었다. 아내에게 아마도 아들이 나의 그런 성향이 있는 듯하다고 얘기하며, 좀 더 자유스러운 곳으로 옮겨 보자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아들은 어린이 집에서 레고(LEGO) 어린이집으로 옮겼다.
이곳은 짜인 수업이 아닌 선생님이 레고 블록을 이용하여 자유 주제와 특정 주제를 갖고 아이들이 자유롭게 만들고, 만든 레고를 활용하여 놀이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어쩌면 기존 어린이 집의 프로그램보다는 이곳이 아들에게 어울릴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어린이 집을 옮겼다. 집에 좀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레고 원장님의 배려로 어린이 집 차량 혜택까지 받으며 다녔다.
아들은 레고 어린이 집을 다니면서는 달라졌다, 웃음도 많아졌고, 무엇인가를 만든 것을 갖고 집에 오는 날이면 해냈다는 기분에 아들은 아내에게 자랑을 하곤 하였다. 몸에 열이 좀 있던 날로 기억한다. 그날도 아픈데도 불구하고 아들은 레고 어린이 집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려 해열제를 먹인 후 보내기도 하였다. 레고 어린이 집 원장님과 선생님도 아들이 적극적이고, 레고 활동에도 두각을 내며 잘하고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기존의 어린이 집과 레고 어린이 집의 어떠한 차이가 아들 모습을 이렇게 바꾸어 놓았을까?
우리 부부는 아들이 구속과 틀에 짜인 곳에서는 자신의 생각을 담을 수 없어 행복을 느끼지 않을 가능성이 있고, 나의 고등학교 학창 시절을 비추어 볼 때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이 아들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부모가 아이에게 공부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다 하여도 우리 교육 시스템에서는 학교와 교육 환경이 아들에게 스트레스를 가할 것이며, 아이는 실패와 좌절, 패배감을 앉고 살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에서 학교 공부를 위한 기본으로 사교육을 시켜야 한다. 그리고 사교육비가 만만치 않다는 것까지 고려한다면, 굳이 한국의 정규 교육과정에 아들을 보내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부모로서 아들의 미래와 행복한 삶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선택이 무었을까?
공부보다는 가능성 있는 능력을 키우는 기회를 제공하고, 스스로 선택에 대한 책임을 갖고 살아가도록 하는 것! 그리고 행복감을 느끼고 다양한 경험 시켜 줌으로 스스로 행복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찾도록 도와주고,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도록 지원해 주는 것! 우리 부부가 합의한 아들에게 부모가 줄 수 있는 것이라고 정하였다.
우리 가족을 위한 교육법을 정한 후 나는 아내에게 아들을 화교 학교 입학을 제안하였다.
아내는 내 제안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을 하였다. 고민의 시간 동안 서울, 인천, 수원 등의 화교 학교에 대한 정보와 교육 시스템 등등을 조사하였다. 공부는 본인 의지이지만, 중국어를 한국에서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어쩌면 아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부모로서 최소한의 기회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나는 했었다.
아내 고민의 시간이 끝나고 최종적으로 결심을 하였다.
아들의 미래와 행복한 삶을 위한 선택으로 무모하면서 용감하게 우리 부부는 화교 유치원을 선택하였다. 화교 학교 입학을 위해서는 화교 유치원을 2년을 다닌 후 초등학교 입학이 가능했다. 아들은 7살로 1년을 다녀야 하는 상황인데, 수원 화교 유치원에서는 1년 특별 과정이 있어 다행히 입학이 가능했다.
화교 유치원의 입학은 모험이었다.
어린 아들에게 또 다른 힘겨움을 주는 것은 아닐까? 우리 부부의 욕심은 아닐까?
수원으로 이사까지 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었지만... 화교 유치원 입학 후 다행히 아들은 잘 적응해 주었다. 잘 적응했다는 의미는 레고 어린이 집처럼 자유와 자율이 있었고, 더불어 선생님과 학생, 학생들 간의 유대 관계가 좋았기에 아들은 잘 다닐 수 있었다.
그렇게 아들은 또래의 친구들과는 좀 다른 출발을 하였다.
다른 출발의 의미는 우리 부부가 아들 중심으로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사회 통념에 아들을 맞추지 않고, 아들이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이 무엇인지를 고민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