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수료생의 퇴사 후 백수 생활 연재기
2020년의 시작을 화려하게 칸쿤에서 시작했던 나.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이전에는 삶의 낙이 해외여행 가기, 해외 출장 핑계로 여행하기, 힘들면 해외여행하기, 혼자서도 해외여행하기였던 나는 아주 갑갑한 한 해를 보낸 셈이다.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해외여행을 못 가는 것에 그치지 않고
대학원 박사 수료 후 첫 번째 직장에서 개인적인 사유로 퇴사를 하게 되었고, 그 다음 회사로 이직하기까지 약 2달간의 방황도 있었다.
매년 내가 노력하는 것보다 더 좋은 수확을 얻어서일까?
전 세계적 공황상태에 무력감과 우울감은 2020년 한 해 동안 천천히 나를 옥죄어왔고, 힘들게 이직한 두 번째 직장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 등을 사유로 퇴사하게 되었다.
한국 나이 30살이 다 되도록 가진 것이라곤 긴 가방 끈 뿐인 나는 당황했다.
사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당황하고 불안한 상태이다.
한국에서 박사 학위라는 것은 찾아보기 힘든 것이 아니다.
누구나 원한다면 (학비가 감당되는 한) 본인의 전공분야나 관심분야에서 공부를 할 수 있고, 논문을 작성할 수 있다.
나는 내가 학부 때 전공했던 분야로 해외취업 후 약 1년간 경험을 쌓고 한국으로 들어와서 대학원을 간 케이스였다.
이유는 ‘직접 임상에서 일을 해 보니 전공 관련 공부가 더 하고 싶어서’.
감사하게도 부모님은 그런 나의 선택을 지지해 주셨고, 나는 운이 좋게 소위 서울 SKY 중 한 곳에서 석사-박사 공부까지 하게 된 것이다.
사실 공부를 하면서도 늘 생각했던 건 ‘내가 졸업하면 교수가 아닌 다른 일을 할 수 있을까?’였고,
남들과는 조금 달라 보이고 싶은데다 젠체하기 좋아하는 나는, 동기들에게 ‘교수 말고 외국계 기업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어~’ 라며 으스대곤 했다.
서두에서 언급한 내용과 같이, 나는 노력하는 것보다 더 좋은 수확을 얻곤 했다.
박사 졸업도 아닌 수료를 한 첫 해에 운이 좋게 ‘찐’ 외국계 기업에 specialist로 일하게 되었다.
한국에 사장이나 지사장이 있는 체계가 아닌 싱가포르 아시아 지부에 소속된 곳이었다.
나는 그렇게 내가 젠체하며 잘 살아가게 될 줄 알았다.
해외 출장도 정말 많았다. 바빴지만 ‘해외’라는 키워드에 꽂혀 그저 재미있었다.
그러던 내가 갑자기 다닌 지 1년도 안 돼서 퇴사했다. 이유는 업무가 맞지 않아서.
주위에선 모두 이직할 곳을 정해두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며 내 결정을 늦추라고 했지만 이미 내 맘은 떠나버린 뒤였다.
두 번째 직장을 구하기까지 나는 약 2달간 코로나 1차 유행 시기와 맞물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꾸역꾸역 면접, 이력서 수정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래도... 내가 토익도 컴활도 없지만 외국계 업무 경험에 박사 수료증까지 있는데 뭐가 돼도 되지 않겠어? 하는 알량한 마음이 여전히 존재했다.
역시나 운이 좋게도 두 번째 직장에 생각보다 수월하게 입사했다.
첫 번째 회사보다 글로벌 규모도 더 크고 한국에 지사도 있는 업계에서 소위 네임밸류가 있는 곳이었다.
그 러 나
급하게 먹은 떡은 필시 체한다고 했던가?
업무는 나와 너무 맞지 않았고 구성원들과의 마찰이 너무 심해 고생을 했었다.
결국 나는 직장 구성원들과의 트러블이 크게 번져 고용노동부에 '직장 내 괴롭힘'을 이유로 진정서를 제출하였고, 짧은 두번째 회사생활을 마감하게 되었다.
그 기간 동안 받았던 정신적 스트레스로 난생처음 정신건강의학과도 여러 차례 다녀왔다.
다시 재기하기 위해 나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건 그렇게 대단하게 생각했던 나의 박사 수료증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 더 이상 박사 수료증으로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것을 어렵지 않게 느꼈고, 박사 졸업장을 받기 위해 다시 학구적인 사람이 되어야 했다.
길을 잃은 기분이다.
이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급하게 이직할 회사를 정하고 싶지도 않다.
이런 내 마음을 아시는 건지 모르시는 건지 하루아침에 백수가 된 딸을 보며 부모님도 은근히 눈치를 주고 있다.
세상의 모든 백수들... 다들 안녕하신지요? 나는 눈칫밥 3주 차라 아직 얼굴이 두꺼워지지 않아서 인가?
백수가 된 이유도, 백수 생활을 언제쯤 청산하고 다시 사회의 일원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오늘도 무사히 잘 보냈다.
다음 편에는 하루가 너무나도 긴 백수생활을 담담하게 풀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