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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림 Jan 30. 2019

24.평범한 일상이 더 이상 평범하지 않게 될 때

달걀 한 판

ⓒmaywood

“그 그림에는 내가 이전에 그렸던 어느 그림과도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시간은 느리게 흘렀고, 어느 순간 나는 다른 세계로 빠져드는 듯했다. 마음이 비워지고 호흡은 느려졌으며, 마침내 종이를 내려다보았을 때 나는 내가 이렇게 아름다운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데 놀랐다. 처음에는 우연인줄 알았다. 하지만 다음으로 약 놓는 선반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려보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차이는 그리는 방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방법에 있었다. 나는 내가 그리는 대상을 눈으로 사랑스럽게 어루만지듯 했다.”

-<모든 날이 소중하다>, 대니 그레고리      


<모든 날이 소중하다>는 저자가 직접 그림을 그리고 까지 손으로 써내려간 독특한 책이다. 이 책을 쓰고 그린 대니 그레고리는 아내가 지하철 사고로 다리를 다쳐 휠체어 생활을 시작하게 되자, 그녀의 모습을 그림에 담으며 힘들고 괴로웠던 자신이 자연스레 힐링이 되는 느낌을 받는다.      


그가 한 거라곤 주변에서 쉽게 지나치기 쉬운 대상들에 애정 어린 눈길을 던지며 새롭게 바라본 것뿐. 만약 이 책을 손글씨가 아니라 그냥 인쇄용 활자로 채워나갔다면 평범한 일상은 그대로 평범하게 보였을 것이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아침 9시부터 6시까지 꼬박 책상에 앉아 일하는 나는 주말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간혹 난감할 때가 있다. 시간에 나를 맞추고 살아가는 평일의 리듬이 너무 견고한지, 주말에 주어진 나만의 시간에 뭘 해야 할지 머뭇거리다 그냥 흘려보내기 일쑤이다.      


빨래와 청소 등의 집안일은 해야만 하는 일이어서, 사실 회사 업무와 비슷한 강제성이 있다. 여기에 평일에는 내 뒷모습을 더 많이 본 딸아이와 함께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미션이라, 함께 외출을 하고 아이에게 필요한 부분들을 채워주다 보면 시간은 어느새 훌쩍 저녁을 향해 가고 있다. 특히 소파와 한몸이 되어 TV라도 볼라치면, 이만큼 시간이 잘 가고 멍하니 있어도 좋은 때가 없구나 싶다가도, 리모컨으로 TV를 끄고 나면 허무함이 스멀스멀 밀려온다.       


그나마 나만의 시간을 꼽아보라면 일요일마다 도서관을 잠시 가서 다음 한주 동안 살펴볼 책들을 빌려오고 반납하는 일이다. 어떨 때는 도서관을 올라가는 길이 마치 교회나 성당을 가는 길처럼 성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다행히도 1년 전부터 이런 혼란스럽던 일상에 ‘데일리 키친 아트’라는 자그마한 닻을 내리고 비교적 안정감을 찾아가고 있다. 작업을 하지 않는 시간에도 내 머리와 눈으로는 주변의 뻔한 사물들의 이면을 뒤지기 시작했다. 용케 찾아냈을 때는 잊지 않도록 메모는 필수이다.      


이번 주말에도 나는 여느 주말들과 별반 차이가 없이 보낼 예정이다. 아마 회사에서 가져온 일도 펼쳐보지도 않고 그대로 고스란히 다시 가져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평범한 시간들이 점점 의미있게 느껴지는 건 그 평범함 이면의 다른 모습들을 보게 된 덕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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