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하다. 감정이, 음식이...
한 줌의 소금이 빠진 국은 심심하다. 간이 덜해 싱겁고, 맛이 밋밋하다.
반면, 한 줌의 소금이 과하면 짜서 먹기 어렵다. 인생도 그렇다. 심심한 날들이 모이면 삶은 단조로워지고, 지나치게 자극적인 일들이 연이어 닥치면 버겁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심심하다’는 것은 과연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어린 시절, 방학이면 늘 “심심해!”를 입에 달고 살았다. 할 일은 넘치는데도 그 어떤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나른한 시간들. 엄마는 그럴 때마다 “심심하면 소금 먹어~”라는 말씀을 종종 하셨다. 부엌 한구석에 놓인 굵은 소금 한 봉지. 작은 손으로 공들여 빻기도 하고 금새 곱디고운 가루가 손끝을 간질였다. 하얀 입자들이 바스러지며 풍기는 짭조름한 향기, 그것이 심심함의 맛이었다.
어른이 되고 보니 ‘심심하다’는 말이 훨씬 다채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때로는 마음이 허전하고, 때로는 담백하고 순수한 느낌을 준다. 어떤 날은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라며 조용한 애도의 뜻을 전하고, 어떤 날은 “이 옷은 디자인이 심심하네” 하며 단조로움을 아쉬워한다. 음식에서도 ‘심심한 맛’은 왠지 정겹다. 조미료 맛이 강하지 않아 재료 본연의 맛을 살렸다는 뜻이니까. 심심한 음식이 주는 건강한 느낌처럼, 인생도 잔잔하고 소박한 순간들이 쌓여야 비로소 그 깊이를 알 수 있다.
소금은 참 신기한 존재다. 아주 조금만 더해도 음식의 맛을 확 살리고, 너무 많으면 모든 걸 망쳐버린다. 소금이 전혀 없는 음식이 밍밍하듯, 인생에서도 적당한 자극 없이 완벽한 평온만을 추구하면 어느 순간 공허함이 찾아온다. 반면, 지나치게 강한 맛을 원하다 보면 쉽게 지쳐버린다. 결국, 적당히 심심한 것이야말로 오래도록 질리지 않는 법이다.
프랑스 남부의 바닷가에서 소금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뜨거운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이 만나 바닷물을 증발시키고, 하얀 결정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바다에서 온 그것들은 이제 누군가의 요리에 한 꼬집 더해져 깊은 맛을 낼 것이다. 인생의 순간들도 그렇지 않을까. 때로는 소금처럼 약간의 자극이 필요하고, 때로는 심심한 하루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도 있다. 짭짤함과 담백함, 그 균형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삶의 참맛을 느낀다.
오늘도 심심한 국 한 그릇 앞에서 생각한다. 이 국에 한 꼬집의 소금을 더할까 말까.
그리고 내 인생에는, 오늘 어떤 맛을 더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