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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니 Jun 15. 2021

여기서 길을 잃었을 때


커피 머신 위로 길게 늘어서 있는 주문서들은 마치 내 앞에 길게 늘어서 있는 손님들과도 같았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매일이 오늘 같기를 어언 2주째가 다 되어간다.

왜 하필 이 큰 매장 곳곳에 흘러 퍼지는 음악이 나오는 스피커는 내 머리 위에 달려있는지, 음악 없이는 1초도 살 수 없는 나로서도 이건 정말 머리가 아플 일이었다.

그렇게 모닝 타임이 지나고 Break time 가기 전 마지막 커피 한잔을 만들고 있는데 머리가 하얘졌다. 귀에선 핑~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하늘로 붕 뜨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밀려오는 커피 앞에서 더 이상 울렁거리는 속을 붙잡고 있을 수가 없어 처음으로 조퇴라는 걸 하게 되었다.

그래도 "돈 킬 유어셀프 Don't kill yourself" 라며 아프면 얼마든지 마치고 가서 쉬라고 얘기해주는 주인이어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매장 밖으로 나왔다. 차가 없는 나로서는 마치는 시간에 맞추어 데리러 오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다.

띠리링 띠리링 "오빠 나 마쳤어. 갑자기 숨이 잘 안 쉬어져서."

"어? 왜?? 괜찮아?? 나 지금 이거만 끝내고 바로 데리러 갈 테니까 근처에 좀 앉아서 쉬고 있어."

"응 천천히 해. 지금은 좀 괜찮아."

그렇게 전화를 끊고 몇 분을 걸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쇼핑센터에서 시내까지 인도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걷다가 하늘을 보니 하아, 날씨가 너무 좋네. 이 시간에 밖의 모습은 이랬구나. 하늘이 참 파랗네. 구름이 마치 그림 같다. 그러고 걷다 보니 어느새 우리 동네에 딱하나 있는 "신문판매점 Newsagency" 앞에 도착해있었다.

언제 한번 가보나 했던 이 조그마한 신문가게 앞에 지금 이렇게 서있는 내가 약간 신기하기도 하고, 괜히 웃음이 났다. 반차의 기쁨이란 이런 것인가. 그렇게 들어간 가게 안에는 뉴스페이퍼뿐만 아니라 문구류와 여러 가십 잡지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나 같이 생긴 아저씨가 괴팍한 목소리로 "뭐 찾아? 거기 있는 게 다야. 더 둘러봐도 없어!"라고 했다. 쓸데없이 별일 아닌 일에도 남들에게 민폐 주는 건 아닌지 자주 생각하는 나는, 얼른 눈앞에 보이는 디자인 책 하나를 집어 들고는 "아, 여기 찾았어요." 하고 계산대로 가서 현금을 꺼냈다. 그러니 아저씨께서 "너 여기 살아? 이 동네에서 너는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나는 여기서 오래 장사했어. 우리 딸은 지금 시드니에서 대학 다녀."라고 하셨다. 딸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애가 이 시골 동네에 있으니 궁금하셨나 보다. 그렇게 "다음에 또 와"라는 인사를 받으며 한 손에는 디자인 북을 들고 다시 거리로 나섰다. 그렇게 조금을 더 걷다 보니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쬐는 벤치 의자 하나가 보였다.

햇빛을 등에 지고 앉아 방금 산 책을 뜯어보는데 기분이 좋아졌다. 뜻밖에 주어진 '나만의 시간'이랄까. 따뜻한 햇살 덕분이었는지 괜히 마음속까지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여기 호주 시골에서 산 디자인 북 안에 신기하게도 한국 이야기가 담겨져 있었다. 아마 이번 주제가 한국이었나 보다. 글은 온통 영어인데 소개하는 그림이며 도자기이며 작품들이 하나같이 다 한국 작가님들 것이었다. 괜히 지금 내가 보내고 있는 이 순간이 한국인 것만 같아 갑자기 두 눈이 뿌예졌다. 그때 마침 전화가 울렸다. 오빠였다. 눈물을 닦으며 전화를 받았다.


"오빠! 나 지금 거기 공원 앞에 앉아 있는데 여기로 데리러 와줄 수 있어?

아 그리고 있잖아. 있잖아. 나 방금 근처 뉴스 에이전시에서 책 하나 사서 읽고 있는데, 이제 아무렇지도 않은 거 있지. 나 지금은 너무 멀쩡한데? 꾀병이었나 봐" 그러니 오빠가 대답했다.

"니 그거 공황장애다!"라고.


우습게도 늘 이렇게 호들갑? 떠는 와이프 옆에 명쾌하게 진단 내려주는 남편이 있어 또 이렇게 버텨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연말 시즌으로 바쁜 매장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몸은 괜찮은 듯 서있어도 마음은 조급하게 달리며 그것이 내게는 조금 부담이었나 보다. 많은 사람에게 받는 집중이 힘들 땐 조금 내려놓는 건 어떨까.



내 친구들의 위로가 누군가 에게도 힘이 되길 바라면서 ...


자유로운 영혼: 맙소사,, 열정이 강한 사람에게 찾아오는 정신적 감기 같은 거죠. 정신 휴식이 필요하겠어요.

: 아푸지마,,

: 나두 그래,,

코코:한 박자 쉬고 가는 것도 가끔은.

주이: 건강 챙겨요.

혀니: 지금 그곳에 서있는 것도 너무 대단한 사람. 쉬어가요.

똘망: 토닥토닥

: 휴식 많이 많이 취해요.

YS: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 건강부터 챙겨야죠.

마이: 오늘은 한 발자국 쉬어가라고 몸에서 신호를 준듯해요. 아프지 마요.


이렇게 우리는 사람들 속에서 아프고, 사람들 속에서 힘을 얻는다. 그러니 오늘도 내일도 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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