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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외자 Nov 06. 2018

넘치는 가르침에 불편한, 영화 <완벽한 타인>

- 영화에서 느끼는 감정은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길...

<완벽한 타인>/이재규 감독/ 유해진, 조진웅,이서진/117min/2018년


예전에 홍보영상 제작 PD를 갓 시작했을 때, 영상의 정확한 콘셉트를 잡지 못해

기획 회의에서 계속 퇴짜를 먹었던 적이 있었다.

그 과정이 답답했는지 기업 홍보담당자는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PD님 도대체 Tone & Manner가 뭐예요?”


나는 순간적으로 ‘내 태도에 문제가 있나?’라고 생각했고,

대답 대신 웃음으로 때운 기억이 있다.


경력이 쌓이면서 그때 담당자가 나에게 물었던 질문의 뜻을 알게 됐고

그 이후 나 역시 영상의 기획단계에서

후배들에게 ‘톤 앤드 매너’를 부르짖게 되었다.

(Tone & Manner는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잘 전달할 수 있도록

일정한 분위기와 느낌을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과거 이야기가 문득 떠오른 이유는 영화 <완벽한 타인>을 보면서였다.


영화를 보는 내내 순간순간 확 바뀌는 분위기에 이 영화의 장르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완벽한 타인>은 <역린>(2014)에 이은 이재규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다.

영화로서는 두 번째 작품이지만 사실 이재규 감독은

<다모>, <베토벤 바이러스>, <더킹 투 하츠> 등의 드라마로

유명감독의 반열에 서 있는 분이다.    


영화 <완벽한 타인>은 개봉 2주 차인 현재도 여전히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이라서,

그리고 꽤 많은 호평이 있어서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완벽한 타인>은 누구나 궁금해하고 연애상담 프로그램에서 자주 나오는 주제 거리


‘연인의 전화기를 본다? 안 본다?’ 


이 이야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친했던 친구들은 어른이 되어 각자 가정을 이루었고,

석호(조진웅)의 집들이에서 오랜만에 만나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도입부 각자의 가정을 잠깐씩 보여주며

석호(조진웅)와 예진(김지수) 부부,

태수(유해진)와 수현(염정아) 부부, 준모(이서진)와 세경(송하윤) 부부의

관계를 짐작게 한다.

여기에 애인을 데리고 오겠다는 이혼남 영배(윤경호)까지

뒤늦게 집들이에 참석하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예진과 준모의 친하지만 둘 사이에 흐르는 어색한 기류는

‘남편의 친구’ 혹은 ‘친구의 아내’만의

관계는 아니라는 것이 짐작되는 상황에서

준모, 세경 부부의 깨 쏟아지는 모습에

예진은 서로의 말을 완벽하게 다 믿는다면

지금부터 휴대폰으로 오는 문자, 톡 그리고 전화를

다 함께 공유하는 게임을 하자고 제안한다.  


 

영화 초반 영화 속에서 휴대폰의 내용을 공유하면서 발생하는 상황에

서로에게 짜증을 부리고, 예민하고 불편한 공기에

내가 그 자리에 앉아 게임을 하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켜

숨이 막히는 불편함을 느꼈다.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판단은 관객 각자의 몫일 듯하다.


다만 세상 모든 것들과 그리고 영화와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길 바라는 나의 입장에서는

그냥 좋지 않은 기분이었다. 


물론 초반이 지난 후부터는 그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영화는 세 부부 그리고 이혼남 영배의 사랑까지 네 커플의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각각의 에피소드를 풀어내는 방식은 재밌다.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지루함을 주지 않았고,

배우들의 연기는 빈틈없이 영화를 채워나갔다.


거기에 항상 실장님 혹은 왕 역할을 맡아


“아프냐, 나도 아프다”(드라마 ‘다모’ 중)


“송연아”(드라마 ‘이산’ 중) 등


슬픈 눈으로 속삭이기만 하던 이서진의 변화는 새로운 발견이었다.  

  

다만 각각의 에피소드가 끝나고 다음 에피소드로 넘어갈 때 두 번째 의문이 들었다.  

  

‘이재규 감독은 이 영화를 미국 시트콤처럼 만들고 싶었던 것일까?’    


국내에서도 익숙한 미국 시트콤 <프렌즈>, <섹스 앤드 더 시티>

그리고 멀리 가지 않아도 한국의 유명한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서 보면

하나의 에피소드에서 시간의 흐름이나

다른 에피소드를 보여줄 때 도시의 풍경을 보여준다.


가장 간단한 방법이기도 하고 한정된 장소에서의 

장면전환 효과를 줄 수 있으니

썩 괜찮은 방식이다.


하지만 문제는 의미 없이 카메라가 집 밖의 풍경을 훑는다는 것이다. 

차라리 카메라를 고정해서 외부의 소음과 함께 보이는 풍경을 보여줬다면

시간의 흐름이나 잠시 호흡을 정리하는 시간으로 인식조차 하지 못한 체

관람을 했을 텐데 흐름을 뚝뚝 끊어버리는 외부풍경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생뚱맞음을 이해하기 힘든 장면이었다.



그리고 배우의 입을 통해 갑자기 시작되는 감독님의 훈화 말씀 시간은


‘아. 굳이 뭐 이렇게까지 친절하실까?’


라는 생각이 들기에 충분했다.


영화 속 상황을 통해 느끼는 것들은 관객의 몫으로 돌려야 하는데

굳이 부연 설명까지 하면서 순간적으로 ‘내가 놓친 장면이 있나?’라는

착각까지 불러일으키는 감독님의 훈화

즉,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관계의 미학은

관객에게 본인의 생각을 너무 많이 설명하고자 하는 게 아니었나 싶다.    


곧이어 두 번째 감독님의 훈화 말씀이 등장하는데

동성애자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에 대한 가르침이었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그 얼마나 생뚱맞은 정적이

상영관에 흘렀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세 번째 가르침을 당하는 순간

심형래 감독의 <디 워>(2007)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났다면

너무 오버하는 걸까.

하지만 정말 난 <디 워>의 크레딧과 함께 나왔던 애국가가

영화관에 앉아있던 나를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었고

<완벽한 타인>의 영화가 끝날 때 나오는 자막

세 줄은 그 당시를 회상하게 하는 

벅찬 괴로움을 주었다. 


<완벽한 타인>에서의 장점 중 하나는


배우들의 ‘말발’이 되어 나오는


시나리오의 ‘글발’이다. 


배우들이 주고받는 대사는

러닝타임 내내 영화를 꽉꽉 채워나가며

감탄을 불러일으킬 만큼

대사가 찰지다.


하지만 거기서 멈춰야 했었는데

더 많은 걸 관객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감독의 욕심은

영화의 톤 앤드 매너와는 상관없이 

분위기를 반전시켜버린다.   

  

이재규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공간의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극적인 리듬감을 주려고 애썼다.

이야기가 급박하게 치닫다가도 갑자기 정적인 순간이 찾아오는 등

패턴화된 전개를 피하는 데 중점을 뒀다”라고 했다.


하지만 감독의 의도와는 다르게 순간 찾아오는 정적과

영화의 맥을 끊어버리는 넘치는 말들의 향연은

관객들에게 어떤 괴리감을 주고 있는지 알고 있을까.



다들 한 번쯤은 상대방의 거짓말을 우연히 보게 된(혹은 훔쳐본)

휴대폰을 통해 알게 되고

상대방에게 따져 물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왜 나한테 거짓말했어?”

“내 핸드폰 봤어?”

“지금 그게 문제야? 왜 거짓말했냐고?”

“왜 허락도 없이 남의 핸드폰을 봐?”

“남? 우리가 남이야? 그리고 그냥 우연히 본 거야!”  

  

뭐 이딴 식의 경우는 내가 겪어보지 않았더라도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봐왔던

일상생활의 비일비재한 일이다. 


먹어본 맛이 더 먹고 싶고,


아는 이야기가 더 재미있는 사람의 심리가 통한 영화


<완벽한 타인>이 아닐까 한다.      

  

영화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이 이야기의 끝은 어떻게 될까 하는

궁금증이 무색할 만큼의 어처구니없는 결말이었지만,


<완벽한 타인>은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소리 내어 크게 웃으며 본 영화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 웃음이 영화의 미흡한 부분을 모두 커버할 수 있는 만큼의 가치가 있는지는

각자 알아서 판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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