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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정환Juancho Nov 03. 2022

아 하나도 못 알아먹겠네

오히려 좋아

일정은 빡빡했다.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카메라를 챙겨 나왔다.


"지금 가는 곳이 통곡의 벽인데요"


차에 있는 사람들이 ‘오~’라든지 ‘와아...’ 같은 감탄사를 내뱉었지만 난 졸려서 눈도 못 뜨고 있었다. 운전하시는 분이 덧붙였다. 이스라엘 왔으니까 여기부터 보셔야죠. 문이 열리고 다들 내릴 차비를 했다. 아니 근데 통곡의 벽이 뭔데.


그게 유대인에게 가장 큰 성지라고 했다.


왼쪽 사진이 통곡의 벽 전경. 자세히 보면 몇 번이나 증축한 흔적이 있다.


2천 년 전 유대인들이 성을 짓고 살고 있을 때, 로마 제국이 그들의 땅을 침략한다. 당시 로마는 정말 강했다. 그리고 무자비했다. 사람들을 죽이고, 적의 성전까지 깨끗하게 헐어버렸다.


그때, 담장 한쪽을 흔적으로 남겨두었다. 본인들이 우위에 있음을 확실히 보여주기 위해서. 다 허물어진 벽 앞에서 절망하는 유대인들을 보고 로마군이 비웃었다는 이야기도. 쨌든 유대인은 하루아침에 국토를 잃었다. 곧 전 세계로 흩어진다. 디아스포라.


한참 후 로마 시대가 저물고 나서야, 패자들은 벽 앞에 찾아올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유대인들은 1년에 한 번 이곳에 모여 기도하기 시작했다. 한 서린 눈물을 흘리며. 무심한 시간도 함께 흘렀을 때. 20세기의 유대인은 국가를 다시 세운다, 기어코. 무너진 성도 올리고, 담장 옆에 돌을 올려 벽을 다시 쌓는다. 그 벽. 그게 통곡의 벽이다. 그들은 다시 쌓은 벽 앞에서 기도를 시작했다. 이번엔 기쁨의 눈물을 담아.


흥망성쇠가 담긴 역사. 이스라엘 사람에게 통곡의 벽은 그런 의미였다.


그런데 내가 그 의미를 알 리가 있나. 사람들이 벽에다 머리를 찧고 손을 올리고 중얼거리고 난리를 치는데 나는 그냥 서 있었다. (이렇게 적은 내용도, 현장에서 귀동냥으로 들은 것 반 나중에야 인터넷 찾아본 것 반.) 신기했지만 이유를 모르고 말도 안 통하니까. 그래도 확실히 신기하긴 했다. 캠 돌리는 와중에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둘째 날에는 팔레스타인으로 넘어갔다.


팔레스타인? 오 마이 갓.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둘 사이가 안 좋다는 건 알고 있었다. 러프하게 비유하자면, 과거 한국-일본 같은 느낌(으로 생각하고 있었단 얘기). 아... 거길 꼭 가야 하나요? 나 총 맞는 거 아냐? 그러나 차는 달리고.


국경을 넘으려는데 무장 세력(?)이 막아세운다.

그들은 이스라엘 군인이다. 총을 들었다.


OH SHIT!!! (썸바디 헬미~)


여권을 건네고 관광객(방송 찍는다고 하면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갑자기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암튼 복잡해지기 때문에 그냥 투어 왔다고 하는 게 현명하다고 했다)임을 증명한 후 짐 수색을 받은 후에야 입장할 수 있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운전사 분께서는 문자도 받았다고 했다. '위험지역에 들어갔으니 조심하라'는 현지 이스라엘 정부의 경고 문자. 렌터카에 달린 GPS가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찍히면 자동으로 발송된다던가...


그런데 문제는 왜 그러는지 정확히 몰랐다는 거.


팔레스타인 베들레헴. 의외로 평화롭다고 느꼈다. 아참, 난 한국인이라.


그 외에도,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땡볕이 자글자글한데도, 저 아저씨는 왜 불편해보이는-솔직히 괴상한-검정 옷을 입고 수염 붙인 채로 거리를 걷는지를.

종교인 가족은 왜 자식을 7명씩 낳고도 경제활동을 안 하는지. 근데 또 왜 그렇게 잘 사는지.

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건물은 다 잿빛 같은 사막색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둘째 날 밤,

숙소에 누워 잠을 자려는데 나는 몹시 아쉬워졌다.

약간 바보가 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세계사를 좀 알았어야 하는데'

고등학교 때 세계사를 안 배웠다. 흥미를 못 느꼈다. 종교에 대해선 더더욱.


'히브리어를 좀 배워놓을 걸'

아예 못 읽고 못 봤다. 뭔 말인지 1도 모르겠다. 영어나 스페인어라면 솰라솰라는 못해도 알아는 듣고 말은 할 텐데. 입도 뻥끗 못 했다.


시각 청각 후각 모든 것이 낯선 일상. 대학생 때가 마지막이었나... 새삼스럽다. 근데 정말 난 그런 거에 엄청나게 자극받는데. 새로 알아내는 것을 좋아하고 내 세계가 확장되는 것에 흥분하는데. 정말 오랜만에 발견한 것이다. 예상치도 못한 순간 시점에.


나는 내 시야가 많이 좁아져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내 시야가 좁아졌음을 한참 동안 모른 채 살았다는 걸 깨달았다.  SHIT!!!!


그날은 꽤나 늦게 잤다.

태블릿을 들고 호텔 복도로 나와 한참을 웹 서핑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역사를 디깅하다가 넷플릭스 <필이 좋은 여행, 한 입만! - 텔아비브 편>을 틀어 필 아저씨의 먹방을 감상했다. 아 내가 호텔 조식에서 안 먹고 지나간 게 샥슈카라는 거구나. 토마토 수프에 계란을 통째로 넣다니 이게 웬 괴식인가 싶더니만 아닌가 보네. 이건 낼 꼭 먹는다(넷플에서 나온 대로 빵에 찍어먹었는디 꿀맛이었다).


삐걱거리는 침대에 누워 다짐했다.

내일은 더 많이 봐야지.


이스라엘의 이런저런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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