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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정환Juancho Apr 12. 2024

절묘한 양동 작전 <연애남매>

'연애'인 줄 알았는데 '남매'였던

프로그램 만드는 게 업이다 보니 습관이 생겼다.

그게 뭐든, 새로 나오는 콘텐츠를 2회까진 보는 것.

개인 유투브 채널 영상까지 챙길 순 없지만 'new'라면 한 번은 접하려고 한다. 인풋과 아웃풋의 퀄리티는 비례한다는 마음으로.


재밌으면 계속 보고, 별로면 2,3화에서 멈춘다.

가끔은  모르게 평론가 혹은 참견맨이 돼버리는데

'아니 이런 걸 사람들이 재밌다고 생각한 건가?' '완전 감다뒤...'   말이 불쑥 나오려고 한다. 이내 속으로 삼키지만.


'그렇게 되어버린' 이유가 있었겠지. 그런 걸 '어른의 사정'이라고 했던가? 어쨌든 입 밖으로 뱉진 않는. 건방지고 싶지도, 쓸데없이 가혹해지고 싶지도 않으니까. 난 이제 안다. 진심을 다해 만들어  경험이 있는 사람은, 타인작품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재밌게 봤으면? 얘기가 다르지.

기꺼이 칭찬하고 열심히 응원한다.

요즘 가장 눈여겨본 콘텐츠는 <연애남매>.



마디로 정리하면 '남매끼리 찍는 환승연애'

tvN 출신 이진주 PD의 첫 JTBC 프로그램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어째 시큰둥한 마음이 들었다. 처음에는.

티저 겸 예고를 봤는데 영 별로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내 안의 '평론가 모드' on.


'... 뇌절인데?'


그때쯤 난 대한민국에서 연애 프로그램은

이제 수명이 다한 게 아닐까 생각하던 차였다.



<하트시그널>이 등장한 지가 7년이 됐다.

그리고 지금까지 <환승연애> <솔로지옥> <돌싱글즈> <러브캐처> <남의연애> <체인지데이즈> <비밀남녀> 등... 웬만한 변주 콘셉트는 다 나와서 이제까지의 '짝짓기 예능'을 나열하면 마치 아이돌처럼 세대를 나눌 수 있을 지경이다. 심지어 <나는 로>가 매주 건재함을 보여주는 이 상황에서


연프(연애 프로그램)이라니.


<환승연애> <윤식당> 뭐 다 성공시켰던 분의 신작이니 보긴 하겠다만, 환승연애 이상의 뭔가가 나올 수 있을까? 소신발언 하자면 '이건 뇌절이야...'란 의심이 절로 들었던 것이다.


그래도 이진주 피디라니까... 하는 마음에 시청.

웬걸 1,2화를 보며  놀랐다.


<연애남매>는 연프가 아니었다. 가족 예능이었다.

한 방 맞은 기분, 신선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따뜻해진다


가족 예능이라.

이제껏 그런 장르가 없던 것도 아니다.

외려 뻔질나게 나왔다. 식상할 정도로. <미운 우리 새끼> <살림하는 남자들> 뭐 이런, 지금 지상파에서 요일마다 편성된 레귤러 프로들도 다 가족 예능 아니겠나. 근데 어째서 <연애남매>는 좀 다르게 느껴진 건지.


생각해 보니 그런 가족 예능들은, 주제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하나같이 단조로웠던 것 같다. 그저 관찰(+그 안에서의 갈등 에피소드)과 속마음 인터뷰. 누구나 생각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다.


아니 가족애가 소중한 걸, 부모자식 사랑이 뭉클한 걸 누가 모르나. 그런데 '여기 가족의 모습을 보여줄게, 재미와 감동이 있을 거야. 한번 느껴볼래?' 하면 누가 보겠냐고. 딱히 보고 싶은 마음이 안 든다. 


이전에도 '혈육'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이 있었다


여기서 의외의 전략을 펼치는 <연애남매>. 연애를 방패로 내세웠다가, 별안간 숨겨둔 가족을 꺼낸다.


연프라더니 부모님의 전화를 받게 한다거나, 집반찬을 받아와 포트락파티를 하고, 데이트 신청은 혈육으로 추정하는 사람에게 대신하기.


제작진은 멈출 생각은 없다. 막 몰아친다. 혈육의 관계와 성장 과정을 빨리 오픈해 버린다. 긱 집에 있던 홈 비디오와 사진을 통해서. 출연 남매들이 얼마나 끈끈하고 애틋한지 보여주는 데 공을 들인다. 그리고 다시 데이트 돌입.


그러니 띠용? 하지 않겠나. 약간 낚인 것 같기도 하다. 액션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들어갔는데 알고 보니 다른 독립영화 상영관에 들어간 걸 알게 된 기분? 근데 그 독립영화가 너무 재밌고 매력 있어. 이런 나, 오히려 좋을 수도?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은 것 같기도 하고.


분명히 <환승연애>처럼 진행되는데, 그 중심에 있는 건 가족애다. 소중하다는 건 모두가 알지만, 그리고 매번 경험하지만, 살면서 자꾸 잊어버리는. 그래서 다들 그리워하는.


닳고 닳은 소재인데 '환승연애'와 섞으니 완전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제작진이 그걸 노리고 만든 건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감탄했다. 이거 완전 양동작전이네. 시청자의 시선을 딴 곳으로 돌리고 펀치.


패널 배치도 좋다. 파트리샤 파이팅 (??)


남매라는 장치는, 연프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출연자의 자연스러움'을 끌어낸다는 점에서도 꽤 센 무기 같다.


방송이 그렇다.

카메라 앞에서 내 모습을 온전히 보여주기는 불가능하다.

카메라를 통해 상대방의 모습을 온전히 담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출연진은 자기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연기하고, 제작진은 자기가 담고 싶은 모습을 기다린다.

미묘한 기싸움. 그 과정에서 '진짜 감정'이라든지 '자연스러움'은 사라지곤 한다.


하물며 연애 프로그램인데, 되겄나. 시청자는 안다. 이거 가짜네.

 

하지만 가족과 있으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편안하니까.

나도 모르는 새 진짜 내 말투와 행동이 나오는 것이다. 보는 사람은 알 수 있다. '찐'이라고 느낀다.

꿈보다 해몽일지도 모르겠으나, 그런 디테일도 느껴졌다.


2시간 반짜리 1화 풀버전 영상이 유투브에 올라와 있다. 조회수가 137만!


집요한 디테일과 영리한 양동작전.

<연애남매>는 꽤 잘 되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풀릴지도 궁금하다. 여러모로 재밌는 이 프로그, 내게도 공부가 된다. 역시 추천합니다.


새로움은 이런 데서 나오는 걸까. 기획과 연출은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일까.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는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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