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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정환Juancho May 19. 2024

'맨스티어' 콘텐츠는 풍자일까?

'맨스티어 디스' 사건으로 몇 커뮤니티가 시끄러웠다.


사건을 설명하면 이렇다.

패러디 콘텐츠를 올리던 2인조 개그 유투버 <뷰티풀너드>가 있었고 그들이 만든 ‘언더그라운드’ 시리즈가 최근에 화제가 됐는데 영상의 주인공이 바로 허세 가득한 래퍼 듀오 '맨스티어'


K$AP Rama와  Poison Mushroom


이들은 모순적이다.

한국 기독교 가정에서 평범하게 자라놓고 ‘AK47 맞고 사망한 외할머니’ 같은 가사를 쓴다거나

여자라면 사죽을 못 쓰는 여미새지만 'P***Y 같네' 같은 말을 습관처럼 붙이고

패드립을 일삼으며 욕을 날리다가도 강자 앞에선 입꾹닫.

그야말로 허세에 취한, 전형적인 '힙찔이'다.


물론 이들은 허구의 인물이(었)다.

예전의 페이크 다큐 히트작  <UV 신드롬> <음악의 신>에 나왔던 사람들처럼,

최근에 인기를 끈 '99대장 나선욱' '꼬ㅊ미남 다나카' '신도시 서준맘'처럼,

맨스티어도 일종의 부캐였던 것.


그런데 슬슬 판이 커졌다.

영상에 나오던 우스꽝스러운 가사가 인기를 끌더니 하나의 밈이 되었고 뷰티풀너드는 이 분위기를 캐치, <AK47>라는 음원을 '실제로' 냈다.


2024년 가장 인기 많은 힙합 음원 <AK-47>. 공연도 '실제로' 많이 했다.


결과는 유투브 조회수 1000만 돌파, 그리고 뜨거운 반응.

쏟아져 나오는 양산형 기믹 래퍼들과, '돈,마약,여자,차' 자랑에만 몰두하는 허세 힙합퍼들을 제대로 짚어냈다고 다들 감탄했다. 유명세가 생긴 가상인물 '맨스티어'는 어느새 실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일이 터졌다.

뮤지션 pH-1이 '뷰티풀너드'를 디스하는 랩을 올린 것이다.


주된 메시지는 '조롱 적당히 하고 존중해달라'


그리고 뷰티풀너드 기다렸다는 듯(!) pH-1의 디스곡이 올라온 19시간만에(!!) 맞디스(!!!) 랩을 올린다.


그 이후로 커뮤니티는 아수라장.

스카이민혁, 코르캐쉬 같은 래퍼들은 불만을 표현했고

인터넷엔 누가 더 잘했냐 누가 더 역겹냐는 댓글이 올라왔다. 물론 대부분은 맨스티어(뷰티풀너드) 손을 들었다. 허세와 모순 덩어리인 힙합러들 ㅉㅉ 너네가 뭔 얘기를 할 수 있겠냐는 게 주류 의견이었다. '부들'거리는 힙합 팬들의 댓글도 더러 있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니

처음에는 별생각 없던 나도 꽤 진지해졌다.

사실은 몹시 기분이 나빴고 슬펐으며 원망스러웠다.


왜냐면 난 힙합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특히 pH-1의 가사 한 문장이, 마음 쓰였다.

'근데 이제는 한번 물어볼까 대체 어디까지 허락되는 거야 풍자?'




고등학교 시절 인강으로 풍자와 해학의 차이를 배웠더랬다.

나의 국어 선생님이 말하시길, 이렇게 다르다고 했다.


풍자: 웃긴데 통쾌하다.

해학: 웃긴데 안쓰럽다.


일단 공통점은 '웃기려는 목적'이라는 거.

과장하거나 혹은 우스꽝스럽게 묘사해서 웃음을 유발한다.

그럼 '통쾌'와 '안쓰러움' 차이는 어디서 나오는데.


대상이다.


풍자: 웃긴데 통쾌하다. 그 대상이 ‘힘 있는 자'다.

해학: 웃긴데 안쓰럽다. 그 대상이 ‘약한 자'거나 '본인'이.


나랏님이나 권력을 향해 있는 비꼼을 '풍자'라 하고, 자기 자신을 향한 자조를 '해학'이라 한다고. 그러니까 풍자와 해학은, 가진 것 없이 살던 서민들의 무기였다고. 10년이 넘었지만 그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부터 난, 누군가의 비꼼을 볼 때 그가 놓인 권력 구도를 먼저 짐작해 본다.


해학과 조롱 그 사이의 어딘가...


'맨스티어'가 원망스러웠던 이유가 아마 이거였나 보다.


난 괴로웠던 것이다.

100만 구독자를 모을 만큼 '힘 세진 사람'이 '약한 사람'을 살살 긁는 모습을 보는 게.

이건 풍자가 아니다. 해학도 아니고.


<나는 솔로> 출연 비연예인을 패러디하는 콘텐츠는 괜찮을까?


며칠 사이에  마음은 다시 차분해졌다.

여러 의견들을 접하게 됐다. 내가 느낀 감정의 원인이 뭐였는지 고민해보기도 했다. 그 결과


나의 긁힘은, 결국 '내(內)집단을 건드린 에 대한 불쾌함'에서 비롯되었음을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편협했다. 아마 '맨스티어' 캐릭터가 '허세 힙찔이'가 아닌 '락찔이', '오타쿠'였다면 별생각 없었을 거다. (사실 난 비슷한 결의 유투브 채널 <별놈들> 영상들을 재밌어했다. 어찌 보면 참 모순적으로.) 제삼자가 보기에 내 급발진은 과민반응인 것이다.


뷰티풀너드를 향한 원망도 거의 사라졌다.

달리 보면 그들은 뒤샹과 같다.

기성품을 전시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든, 예술 장르의 경계를 흐려놓은 창의적인 플레이어.

그들도 최선을 다해 코미디를 짠다. 이 악물고 그 가치를 깎고 싶지 않다.


어쨌든 난 '그럼에도' 힙합 음악을 계속 들을 것 같다.

힙합이 어쩌고저쩌고, 자정 작용을 하고, 어디로 가야 하고...

그런  씬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알아서 잘할 일이고, 난 내가 기억하는 좋은 모습들을 향유해야지.

내 속에서 그렇게 정리가 되었다.


이센스, 원슈타인, 스카이민혁... 의견은 다 다르지만 다 이해가 된다.


그러나 아직도 약간은 헷갈린다.


뷰티풀너드는 계속 영상을 올리고 있고 사람들은 좋아하고 있다.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통쾌해하고 있다.


사람들은 정말 힙합이나 래퍼가 꼴사나웠던 걸까?

혹시, 그게 뭐가 됐든 같이 조롱하는 것에 중독된 건 아닐까?


어느새 난 ‘힙합이 어떻게 되어야 한다’나 '이센스가 뭘~ 어땠으면 좋겠다'는 생각보다는

사람들은 맨스티어에 열광했을까’를 알고 싶어졌다.


(다음 글에 이어 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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