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시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가슴에 가득한 상태. ’울분(鬱憤)의 사전적 의미다. 비슷한 의미로 쓰이는 울화(鬱火)는 ‘분한 마음을 삭이지 못하여 일어나는 화’를 뜻한다.
치미는 울화를 제대로 발산하거나 치유하지 못해 생기는 병이 ‘울화병(鬱火病)’인데, 보통 ‘화병’이라 불린다. 미국 정신의학계에 ‘Hwa-byung’이라 공식 보고돼 있는 한국인의 독특한 정신질환이다. 서양에서는 주로 ‘우울’과 ‘불안’이 정신건강의 주요 소재이지만, 한국에서는 ‘울화’와 ‘울분’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전상인 서울대 교수는 이미 2008년에 "우리나라가 헝그리(hungry) 사회에서 앵그리(angry) 사회로 변모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심리학자 김태형은 2013년 그의 저서 《트라우마 한국사회》에서 “한국인은 모두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고 했다. 한신대 윤평중 교수는 2015년 “우리 사회는 울화(鬱火)의 혈기(血氣)가 가득한 ‘울혈(鬱血) 사회’”라 주장했다. 화병이 개인 차원을 넘어 광범위한 사회적 현상으로 확산돼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한 것이다.
지난해(2019)에는 서울대 유명순 교수의 ‘한국의 울분’ 조사 결과가 소개됐다. 그 내용이 충격적이다. 한국인(일반인) 10.7%가 ‘심한 울분’ 상태이며. ‘지속적 울분’을 느끼는 사람(32.8%)을 포함하면, 43.5%가 울분을 만성적으로 느끼고 있다고 보고돼있기 때문이다. 이는 ‘누가 툭 건들거나’ 분노유발자가 나타나면 폭발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 분노조절 장애 환자들이 매우 많다는 것이며, 언제 ‘조커’ 같은 이가 나올지 모른다는 말이기도 하다.
유교수의 연구결과는 한국인들 절반 정도가 만성 울분상태에 있다는 것으로, 전상인, 김태형, 윤평중의 주장(울분사회)이 막연한 견해가 아니라 ‘실제’라는 사실을 확인해주고 있다. 이 정도면 한국사회가 거대한 정신병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울분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큰 이유는 불공정과 불평등이다. 사회는 공정하거나 공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신념을 무너뜨리는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울분은 촉발된다.
불평등은, 단순히 물질적 격차를 넘어 우울감·열등감 등 사회심리적 측면에서 사회적 상호관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불평등이 심화하면 타인과의 관계에서 상호 신뢰가 하락하고 사회적 응집력과 소속감을 떨어뜨리며, 이로 인한 좌절과 박탈감, 증오와 수치심 등 민감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2018.10.30 아시아미래포럼, 리처드 윌킨슨 영국 노팅엄대 명예교수)
특히 분노할 대상이 생기면 그 화가 삽시간에 급속도로 확산되는 우리 특유의 집단주의 문화도 한 몫 하고 있는 데, 온라인과 소셜미디어(SNS)가 이러한 분노의 결집과 폭발을 부추기고 있다.
<뉴스1>이 최근(2020.7.16) 빅데이터 분석업체 타파크로스에 의뢰해, 언론 기사와 소셜미디어(SNS)상에 나타난 사회갈등의 크기와 변화 양상을 지수로 도출해 낸 자료에 따르면, 최근 2년 사이 가장 갈등이 컸던 분야는 ‘이념갈등’으로 전체의 55%를 차지했다. 그 다음으로는 ‘젠더갈등(24%)’의 비율이 높았으며, ‘세대갈등(11%)’이 그 뒤를 이었다.
신조어 100개를 분석한 결과에서는 젠더갈등이 가장 높은 비중으로 나타났다(위 그림).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갈등을 나타내는 단어 중 젠더갈등이 나타난 비중은 2018년 46%, 지난해 41%, 올해 44% 등이다. 그 다음으로 이념 갈등과 관련한 단어의 등장 빈도가 해마다 각각 36%, 40%, 34% 정도로 비중이 높게 나타났다.
특히 젠더 갈등의 경우 다른 갈등 유형보다 원색적이고 노골적인 비난과 조롱을 담은 신조어들이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젠더 간 갈등의 골을 심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인, ‘관점이 다른 이들에 대한 관용도’ 최저
지난 2018년 4월 22일 입소스(Ipsos)는 <BBC 글로벌 설문 조사 : 분열된 세계?(BBC Global Survey:A world divided?>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사람들이 ‘배경, 문화 또는 관점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 얼마나 관용적인지’ 묻는 질문에, 한국인들은 응답자의 20%만 '매우 관용적'이라고 답했다. 입소스는 이 것이 ‘최소 허용 수준의 답변’이라는 친절한(!) 설명을 덧붙였다. 이는 조사 대상 27개국 중 26위로, 꼴찌를 차지한 헝가리(16%)를 제외하고 한국이 가장 부정적 답변이 많은 나라임을 알려준다. 전 세계 평균 응답률은 46%였다.
정치적 갈등문제로 좁혀 보면 대한민국은 더욱 심각하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한국 사회를 분열시키는 가장 큰 갈등요인은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과의 갈등’(61%)으로 조사됐다. 같은 질문에 대해 벨기에 21%, 프랑스 23%, 스웨덴·이탈리아 26% 등 연정이 일상화된 유럽 국가들의 답변율이 20%대 인걸 비교해 보면 그 심각성이 두드러진다. 대한민국이 연정과 협치가 힘든 이유를 알만하다. 두 번째 갈등요인으로 빈부격차를 든 응답률도 44%로, 평균응답률 36%보다 높은 수준이다(아래 표 참조).
입소스 조사에서 또한 주목할 것은, 가장 신뢰할 수 없는 집단으로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꼽은 한국인들이 제일 많았다는 사실이다. 응답률 35%로 조사대상국 중 가장 배타적인 것으로 드러난 것.
이는 앞의 ‘정치적 견해가 다른 이와의 갈등(61%)'과 연동되는 내용이겠는데, 이 뿐만이 아니다. ‘다른 사람을 신뢰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도 한국인은 12%만이 그렇다고 답했단다. 사회적 신뢰는 거의 없고 바닥 수준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앞서 살펴 본 조사항목들은 서로 관련이 깊다. 타인에 대한 신뢰감이 매우 낮기 때문에 관용도 없다. 관용이 없기 때문에 신뢰감이 없다고도 볼 수 있다. 여하튼 이 상의 조사들은 지금 한국사회가 매우 심각한 분열과 위기상황에 처해있음을 말해 준다.
정당한 분노는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지금 한국 사회의 집단적 분노는 크게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념갈등, 빈부갈등, 정규직 비정규직 갈등, 세대갈등, 젠더갈등 등 여러 사회갈등으로 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합의가 매우 어렵다. 자기주장만이 앞선다. 나와 다른 입장과 견해를 수용하기 어렵다. 중립과 중용은 회색으로 낙인찍힌다. 언제부터인가 자신과 조금만 (생각이) 달라도 배제하고 적으로 취급하는 풍토가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앞의 조사결과에서도 드러나듯 정치 분야는, 특히 선거시기에는 더 심하다. 그 최전선에 ‘팬덤’이라는 돌격대가 자리 잡았고, 유력 정치인들은 그걸 즐기기까지 한다. 지방자치 선거가 실시되면서 이런 현상은 더 심해졌다. 심지어 동료와 이웃들 간에도, ‘마을’까지 편 가르기로 찢어 놓고 있으니...
선거 시기나 정치적 입장을 떠나 사회 전반에 걸쳐 사회적 갈등이 확산되는 추세다. 문제는 이 갈등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해소되거나 완화되기 보다는 더 확대되고 격렬해지고 있다는 데 있다.
특히 최근에는 앞서 살펴보았듯이 젠더갈등이 세대갈등과 결합되면서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에서 시작된 여성들의 분노, 2018년 이수역 폭행 사건으로 촉발된 젠더갈등, 올해 초 발생한 트랜스젠더 하사의 강제전역 사건, 모 여대에 합격한 트랜스젠더의 등록 포기사태 등 매년 큰 사회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갈등들이 갈등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진영논리와 확증편향과 결합되면서 대화와 타협은 사라지고 증오와 혐오만 난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포퓰리즘과 파시즘의 등장 위험성마저 가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관용’과 사회적 신뢰, 공동체성의 상실 때문이다. 그 배경으로 김태형은 돈 중심의 세계관이 가져온 계층 간 갈등, 죽음에 대한 공포를 기반으로 한 한국 사회 최대의 장애물로서 분단 트라우마를 든다. 이에 덧붙여 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만연한 적자생존과 각자도생 문화가 만들어낸 비극이기도 하다. 그 하부구조에 ‘불평등’이란 괴물이 깊게 뿌리내려 있다. ‘부패’와 ‘불공정’의 뿌리도 깊다. 당연 우리 국민들 행복할리 만무하다. 우울하고 불행하다.
성숙한 사회, 선진 사회는 자신과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을 관용한다. 정치적, 종교적, 성적 ‘입장의 다름’을 존중하고 포용한다. 사회적 신뢰의 회복. 그 첫 걸음은 관용이다. 아니 관용을 넘어 존중과 포용이다.
강남순 교수는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현재 “한국사회가 지닌 가장 심각한 악(vice)은 ‘흑백논리적인 이분법적 사유방식’”이라 진단했다. 냉소적 비난과 정죄 대신,“자신과 상이한 입장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성찰적 비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금 시기 우리에게 필요한 것, 바로 흑백논리적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극복이다.
스스로 돌아볼 일이다. 나는 다른 입장을 존중하고 포용할 자세가 되어 있는가? 자신이 믿고 있는 진리가 반쪽짜리일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자세가 되어 있나? 자신은 확증편향에 빠져있지 않나? 괴물과 싸우다 자신이 괴물이 되어 있지 않나? 묻고 또 물어볼 일이다.
또한 아래 <얀테의 법칙>을 새기고 또 되새겨 볼 일이다. 행복한 나라 덴마크에서는 이 불문율을 깨는 자 공동체를 파괴하는 적이라 간주되었다.
당신이 남들만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당신이 남들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당신이 남들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지 마라.
당신이 남들보다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마라.
남들을 비웃지 마라.
남들에게 뭐든 가르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라.
-<얀테의 법칙>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