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훈 Jun 19. 2020

서울과 제주, 어디가 행복할까?

행복지수, 선택이 아닌 필수

2년 전부터, 정부(지방정부 포함)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행복지표가 중요하며 필요하다 역설하니, 공직자들은 물론 의회 의원들 중에서 “행복은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개념인데 이를 어떻게 조사하고 지표로 만든다는 말이냐”며 고개 젓는 분들이 있었다. 일반적으로는 주로 식자연하는 이들이 이런 얘기를 마치 당연하다는 듯 종종 내뱉다(지금도 이런 경우를 가끔 접한다).      


이게 우리나라에만 있었던 현상은 아니었던 듯, UN이 2012년부터 매년 발간하는 <세계행복보고서>에도 “행복은 개인적 선택에 달린 문제며, 정부 정책의 문제라기보다는 개인이 추구해야 할 어떤 것이라 믿는 이들이 많다. (따라서) 행복은 국가적 목표의 기준으로 삼거나 정책적 내용을 담기에는 지나치게 주관적이며 모호한 것으로 보인다는 주장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이는, “행복이 주관적 경험이기는 하지만 객관적으로 측정되고 평가될 수 있으며, 행복이 개인 및 사회의 고유한 특성과도 연관된다(세계행복보고서)”는 것을 잘 모르는 주장이다. 실제로 많은 나라와 지역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이를 조사 측정하고 있는데, 그러한 사실(정보)을 모르고 이런 얘기를 하는 것 같다. 혹은 부탄처럼 인구가 적고 가난한 나라에서만 시행하는 - 우리나라에는 적용 불가능한, 특별한 정책으로 알고 있는 경우도 있다.       


UN은 2012년부터 전 세계 160여 개국을 대상으로 행복도를 조사하여 매년 3월 20일 ‘세계행복의 날’에 행복국가 순위를 발표한다. OECD도 2011년부터 OECD판 행복지수라 할 수 있는 ‘더 나은 삶의 지수(Better Life Index)’를 발표해 왔다. 개별 국가 차원에서도, 총행복지수로 유명한 부탄만이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제국은 물론, 캐나다, 호주, 일본, 태국 등 여러 나라들이 일찍부터 행복지수를 개발, 공공정책의 안내자로 활용해 왔다.      


미국의 시애틀시와 산타모니카시, 버몬트 주, 영국의 브리스톨시, 캐나다 빅토리아시와 크레스톤시, 르딕시는 물론 이웃나라인 일본의 아라가와구와 이와테현 등 선진 각국의 수많은 지방정부들 또한 행복지수를 정책의 기초로 삼고 있기도 하다.   

   

특히 지방정부들이 앞 다투어 행복지수를 조사하는 이유는, “실제 삶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대부분 지방적 수준의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지방정부가 주관적 웰빙을 측정하고 있으며, 또한 공공정책을 디자인하고 공공서비스를 공급하는데 행복연구를 안내자로 활용하고 있다(세계행복보고서)”.         


행복지수와 관련한 또 하나의 오해가 있다. 행복지수 조사를 단순히 사람들의 주관적 행복감을 묻는 조사로 이해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는 첫 번째 오해 - 추상적, 주관적 개념을 어떻게 조사? - 와 직접 연관되는 내용이다.     


앞서 국민총행복을 얘기하면서 행복하려면 소득만이 아니라 건강과 교육, 환경과 문화, 공동체와 민주주의 등이 고르게 발전해야 한다고 했다. 따라서 행복지표는 응답자의 주관적 만족도만 조사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가지 요소를 조사한다.      

      

UN 세계행복보고서는 삶의 만족도 외에 인간의 행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6가지 요소를 측정한다. 1인당 GDP, 사회적 관계, 건강 기대수명, 삶의 선택의 자유(자율성), 기부, 부패인식이 그것이다.      


OECD 더 나은 삶의 지수(BLI)는 좀 더 세분해 주거와 소득, 고용과 공동체, 교육, 환경, 시민참여, 건강, 안전, 일과 삶의 균형, 삶의 만족 등 모두 11가지 항목을 조사한다. 대부분의 행복지표는 이런 BLI 도메인과 유사하다. 이 조사결과를 아래 그림처럼 꽃잎 형태의 지수(Index Flower)로 종종 보여주는 데, 이 각각의 꽃잎이 길고 길이가 균등해야 - 완벽한 꽃 형태를 갖추어야, 행복하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간명하게 보여준다.  

  

                

아래 그림들은 작년(2019)에 공개된 대한민국 서울과 제주, 호주 퀸즈랜드주의 OECD 지역 웰빙(OECD Regional Well-Being) 조사결과다. 한국은 모두 7개 권역으로 나눠 조사돼 있는데, 이 중 서울과 제주만 함께 살펴보았다. 지수 꽃의 전반적 형태만 보아도 그 지역 사람들의 행복도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보이는 것처럼 서울과 제주 모두 지수 꽃 형태는 들쭉날쭉이다. 반면 호주 퀸즈랜드주 웰빙지수는 거의 완벽한 꽃 형태를 보여준다. 퀸즈랜드주는 다양한 행복의 조건들의 균형적으로 발전해 있어, 주민들이 행복도가 높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반면, 서울과 제주는 그림처럼 각 요소별 편차가 매우 심해서, 행복도가 낮은 지역임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oecdregionalwellbeing.org


oecdregionalwellbeing.org


oecdregionalwellbeing.org


나아가 각각의 지수 꽃잎의 길이를 보면 어느 분야가 시민들의 행복을 저해하고 있으며 취약한 분야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어떤 분야에 행정의 관심과 정책 초점을 맞추어야 하며 예산을 집중해야 하는 지 단번에 알 수 있게 한다. 그래서 행복보고서는 다시 얘기한다.     


“행복을 측정하는 일차적 이유는 시민들과 정책입안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문제와 기회가 무엇인지, 어려움이 얼마나 잘 해결되고 있는 지, 그리고 미래로의 창문이 잘 열리고 있는지 알게 하기 위함이다”라고!

                         

아래 그림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서울은 초고속 인터넷보급율과 건강, 교육 등은 OECD 상위 도시이다. 그러나 환경(대기오염)은 OECD 최저수준으로, 충격적이게도 10점 만점에 0점이다. 이것이 지금 서울시민들의 행복도를 가장 저해하고 있는 취약한 분야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주거도 2.2점으로 주택문제의 심각성을 알려준다. 이 보다 더 심각하다고 보여지는 것은 공동체(사회적 지원) 항목(3.1점)이다. ‘자신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을 부탁할 사람이 있나’는 질문에 서울시민 5명 중 1명은 ‘없다’고 답했다는 조사결과다. 이 또한 OECD 최하위 수준으로, 대한민국의 심각한 자살률(OECD 15년째 1위)과 연동되는 지표다. 이러한 제반 요소의 총합적 결과라 할 수 있는 ‘삶의 만족도’를 묻는 질문에, 서울시민들은 평균 6점을 선택, 이 또한 OECD 최저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oecdregionalwellbeing.org에서 인용, 재구성

            

oecdregionalwellbeing.org에서 인용, 재구성


제주는 어떤가? 놀랍게도 ‘세계 환경의 섬’이라 자랑하는 제주의 환경점수는 2.1점에 불과하다. 서울보다는 좀 나은 편이지만 OECD 기준으로는 최하위 수준이다. 주거 또한 서울보다는 약간 나은 편이나 최저 수준에 밑돈다. 심각한 것은 공동체 지수가 2.1점으로 서울(3.1점) 보다도 1점이나 낮다는 충격적인 조사결과다. 괸당 문화와 수눌음 문화로 상징돼 온 제주 공동체가 완전히 붕괴돼 있음을 알려주는 지표다.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안전지수(4.9)가 서울(8.6)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실로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도둑과 대문이 없다는 삼무정신으로 유명했던 평화의 섬 제주가 그 정체성을 완전히 잃어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삶의 만족도도 서울보다 0.7점이나 낮다. 이 지표만 보았을 때 제주도민들은 서울시민보다 행복하지 않다! 이는 단순히 소득 수준의 차이 때문이 아니다.     


OECD 지역웰빙 조사 결과는, 서울시와 제주도가 각각 정책 및 예산 투입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 지 명료하게 드러내 준다.         


제6차 OECD세계포럼(인천,2018) 프리젠테이션 화면. 필자 직접 촬영

                 

행복지표는 행복취약 분야를 도출해낼 수 있으며, 나아가 행복취약 계층, 취약지역 또한 살펴 볼 수 있어 정책 우선순위를 잡는데 매우 유익하다. 위 그림처럼 이를 지도에 각 지역별로 행복도를 색으로 나누어 표시하게 되면, 손쉽게 행복취약 지역을 전략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예산 책정 시 합리적 배분 근거로 삼을 수 있다.      


이렇듯 행복지수는 단지 형식적 실태조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정책 수립과 집행(예산 책정) 시 훌륭한 지침 역할을 할 수 있다. 따라서 행복지수는 정책의 안내자라 불리어지며 선택이 아닌 필수라 하는 것이다. 코로나19라는 복병과 일찍 다가온 무더운 여름 날씨에도 불구, 행복실현지방정부협의회의 소속 제 자치단체가 작년 개발된 행복지표 조사 작업에 박차를 기울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작가의 이전글 기본소득과 국민총행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