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말 우연히 채널 돌리다 '유퀴즈(온 더 블록)'이란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법의 날 특집이라 변호사, 검사, 판사 등 법률가들만 초대 손님으로 출연한 방송이다. 이 중 마지막 출연자인 시각장애인 김동현 판사의 스토리를 감동적으로 보다가, '가장 가치를 두는 헌법 조항'이 뭐냐는 질문에 '헌법 10조'라 답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더 놀란 건 이 공통 질문에 그동안 이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박일환 대법관,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 등도 똑같이 답했다는 유재석씨의 설명을 들으면서다.
대한민국 헌법 10조
1.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2.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언제부터 이렇게 헌법 10조가 우리 사회에 이렇게 가치 있는 조항으로 자리매김했나? 그간 헌법 1조는 촛불집회를 거치며 그 의미와 가치가 광범위하게 회자되며 공유돼왔으나, 헌법 10조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왔다. 그간 헌법 10조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던 필자로서는 참으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동시에 이 헌법 10조의 탄생 시기와 그 배경을 돌이켜 보며, 그 역사의 아이러니에 만감이 교차했다. 이는 쿠테타로 집권한 대통령이 군대를 없애고 평화행복국가가 된 코스타리카의 그것과 비견될 만하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가슴 울리는 조항이, 1980년 전두환 정권을 탄생하게 한 국가보위비상대책위(국보위) 작품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 조항은 제5공화국 헌법 제정이라 불리는 8차 개헌시 처음 삽입돼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군사쿠테타와 5.18 광주학살로 권력을 찬탈한 전두환 정권이 '인간의 존엄'과 '행복추구권'을 헌법에 담다니 이해가 되시는가? 하기야 '민주정의당'이 집권 여당의 당명이었으니 그 역설을 조금은 이해할 만 하다. 또한 일본헌법을 제외하고는 헌법에 행복추구권을 규정한 국가는 없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도 극히 드물다.
그렇다면 왜 신군부는 이 조항을 헌법(당시는 9조)에 넣었을까? 앞서 민주정의당의 당명에서 드러난 역설처럼, 군사반란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의도였을 게다. 독재헌법이라 비판받던 유신헌법과는 다른, 국민의 기본권과 행복추구권을 보장하는 새로운 헌법이며 체제임을 홍보하려는 목적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이 새로운 조항은 헌법학계에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개인적이며 추상적인 개념인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기본권으로 보아야 하느냐는 논란이 야기돼 왔으며, 이 행복추구권 조항은 추후 헌법 개정 시 삭제되어야 마땅하다는 주장이 대세를 이루기도 했었다. 다행히 직선제 개헌으로 유명한 1987년 9차 개헌에서도 이 조항은 살아남아 현재에 이르게 된다.
조항은 있었으나 유명무실했던 이 조항이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말 이후부터다. 1997년 헌법재판소의 동성동본 혼인금지법 헌법 불합치 판결을 비롯, 호적상 여성으로 기재된 남성 성전환자의 성별정정 신청을 허가한 2006년 대법원 판결 등이 그것이다. 헌재는 이 조항에 의거 계약의 자유, 사적자치권, 개인의 자기운명결정권, 휴식권, 소비자의 자기결정권 등을 인정하고 있다.
급기야는 2020년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헌법 10조를 국정의 목표로 제시함으로써 더 높은 가치를 획득하기에 이른다. "개인이 나라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나라"를 천명하면서 문대통령은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는 헌법 10조의 시대"이며 "우리 정부가 실현하고자 하는 목표"라고 밝혔다. 헌법 1조의 힘으로 집권한 대통령이 이제 헌법 10조를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행복추구권은 조지 메이슨이 기초하여 1776년 6월 12일 버지니아 의회가 채택한 버지니아 권리장전에 처음 나타난다. 이 조항은 버지니아주 헌법 제1조로 편입되어 오늘날에도 법적으로 유효하다. 이는 동년 미국 독립 선언과 1789년 미국 권리 장전 및 프랑스 혁명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독립선언서에는 국가의 기능과 책임을 개인의 행복 추구를 보장하는 것으로 명시하고 있다. 국가는, '모든 국민'의 행복, 즉 '공공의 행복'을 최대한 보장해 줄 책임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 선언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로크는 인간의 행복이 공공의 선이기에 이를 보장해 주지 않거나 실패한 정부는 전복할 수 있다는 혁명적 이론을 주창했다.
이는 군주가 덕을 상실하여 민심이 떠나게 되면 그 군주를 바꿀 수 있다는 맹자의 '역성혁명론'과 유사하다. 이런 의미에서 행복추구권은 매우 급진적이며 혁명적이다.
이보다 50년이나 앞선 1729년, 남아시아의 작은 히말라야왕국 부탄 법전에 "정부가 백성을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면 그런 정부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그런 정부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말보다 더 급진적 표현이 있을까?
언급한 대한민국 '헌법 10조'도 뒤집으면 "국가는 국민의 천부인권인 행복추구권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 만일 이 의무를 다하지 못할 시에는, 국가와 정부로서 자격이 없으므로 탄핵되거나 전복되어야 마땅하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엄중한 조항임에도 역대 정권과 정치권은 이 헌법 10조를 그저 상징적 조항으로 치부해 왔다. 국민들에게 의무를 요구하고, 그 의무를 다하지 않을 시 처벌까지 해 오면서도, 정작 국가와 정부는 그 의무를 다해오지 않았던 것이다. 누가, 어느 세력이 정권을 잡든 이 조항을 가슴에 깊이 새길 일이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