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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목수 Feb 18. 2020

인도네시아에서 운전하기 #2

자카르타 도로 위에서 살아남는 법


 운전면허와 자동차를 모두 준비했다면 이제 자카르타의 도로 위에서 살아남는 법을 알아보자. 어쩔 수 없이(?) 자카르타에서 직접 운전대를 잡아야 했다면 'Good luck'이다. 운전 실력과는 상관없이 자카르타에서 운전할 때는 정말이지 행운이 필요하다. 자카르타의 도로 분위기는 한국과는 전혀 다르다. 한국에서 당연한 규칙과 논리가 이 곳에서는 일절 통하지 않는다. 자카르타에서는 기존에 알고 있던 운전에 관한 익숙한 사고방식을 모두 버리고 운전을 처음부터 새로 배운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는 편이 수월하다. 


 자카르타의 도로 위에서는 차선의 의미가 없다. 니 차선이 내 차선이고 내 차선이 니 차선이다. 2개의 차선을 3열로 만들어 차량 세 대가 나란히 지나가는 모습은 자카르타에서는 지극히 정상적인 풍경이다. 만약 도로 위의 모든 차들이 2개의 차선을 3열로 나눠 쓰고 있는데, 나 혼자 차선을 지킨답시고 정해진 차선 안쪽에서 반듯하게 운전한다면 다들 나를 향해 비키라며 경적을 울려댈 것이다. 그래도 여유가 좀 있는 도로에서는 차선을 반듯하게 쓰기도 한다. 차가 덜 막히는 도로에서는 차선을 지키되, 한 차선 안에서 2/3는 자동차가, 나머지 1/3은 오토바이가 다정하게 나눠 쓴다. 이때 만약 오토바이가 지나가는 바깥쪽에 1/3쪽을 막아선 채 운전한다면 이번에는 오토바이들이 경적을 울리며 미쳐 날뛰기 시작할 것이다.



 사실 자카르타에서 자동차를 운전할 때 가장 거슬리는 부분은 다른 차가 아니라 오토바이다. 자카르타의 오토바이는 도로 위의 무법자다. 차와 차 사이를 마구 파고들어 차들이 정상적으로 지나갈 수가 없게 만든다. 오토바이는 아주 좁은 빈 틈에도 무리하게 쑤욱 끼어들기 때문에 브레이크를 밟지 않으면 오토바이를 치게 되는 상황이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난다. 때문에 자카르타에서는 브레이크에 발을 걸친 상태로 운전을 해야 한다. 가끔 정말 개념 없는 오토바이는  차 앞으로 갑자기 파고들면서 동시에 브레이크를 잡기도 하는데, 그럼 나도 같이 급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마음 같아서는 오토바이의 똥꼬를 확 걷어차 버리고 싶지만 이 곳은 자카르타고, 그정도는 이 곳 상식에 따르면 뭐 그냥 살짝 예의 없는 정도다. 그러니 참아야 한다. 



 혹시라도 오토바이와 접촉 사고가 나서 도로에서 시비가 붙었다면 각별히 조심하자. 주변에 있는 수백 대의 오토바이들은 모두 오토바이 운전자의 편이다. 만약 오토바이를 몰던 접촉자가 실랑이를 하다가 말이 안 통해서 갑자기 '아이고 나 죽네' 하고 소리를 지르면, 주변 오토바이들이 벌 때처럼 모여들어 당신을 둘러싸고는 통째로 구워 먹으려고 할 것이다. 실제로 자동차 운전자가 오토바이 운전자들에게 뭇매를 당한 사건이 인도네시아에서 있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자동차 운전자가 오토바이와 부딪친 다음 함부로 거드름을 피우면 큰 곤경에 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런 곤란한 상황에 처하지 않으려면, 오토바이와 부딪힌 경우 예의 바른 태도로 원만하게 해결하려고 해야 한다. 아주 명백하게 오토바이 잘못으로 난 사고가 아니라면 말이다. 


 도로 가에 컴프레셔 한 대 놓고 타이어 수리를 한다. 바람 넣는데 200원, 튜브 교체하는데 4천원


 자카르타에는 끼어들기에 대한 규칙도 없다. 차와 오토바이를 막론하고 도로 위의 모든 운전자들에게는 끼어들기에 대한 본능적 감각이 존재할 뿐이다. 한 번은 삼거리에서 여러 방향에서 오는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초단위의 시간차를 두고 절묘하게 서로 교차 통과하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그토록 좁은 간격을 두고 부딪힐 듯 말 듯 속도도 늦추지 않고 이쪽저쪽에서 서로 들어오고 빠져나가는 지나가는 장면은 마치 서커스를 보는 것 같았다. 자카르타 사람들은 끼어들기를 위해서 시간과 거리, 그리고 각도를 특별한 수학 공식을 통해 계산하지 않고도 그냥 본능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모두 가지고 있다.


 자카르타에서는 직진 차량 우선 원칙 따위는 재빨리 잊어버려야 한다. 이 곳에서는 갓길에 서 있던 차가 갑자기 도로 위로 튀어나오면서 주행 차량의 눈치를 보면서 나오지 않는다. 슬그머니 머리를 들이밀어서 도로 위에서 달리던 차가 기어코 브레이크를 밟고 멈춰 서게 만든다. 나란히 달리던 옆 차선의 차가 내 쪽 차선으로 넘어올 때, 뒤쪽으로 넘어오지 않고 굳이 내 앞으로 끼어들면서 차선을 바꾼다.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굳이 잘잘못을 따지자면 앞 쪽에 끼어들만한 빈틈을 내어 준 내 잘못이다. 그래서 자카르타 도로 위의 차들은 앞 차와의 간격이 한국의 경우보다 훨씬 좁다. 그러니 괜히 상대를 탓하지 말고 나도 앞 차와의 간격을 좁히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차선을 넘나들며 자카르타 지옥 같은 도로의 상황에 적응하도록 하자. 


 만약 한국에서처럼 직진 차량이 우선이라 생각하며 끼어드는 차를 향해 속도를 줄이지 않는다면 자카르타에서는 사고가 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자카르타의 차들은 직진 차량이 우선이라는 고상한 생각 따위는 평생 해 본 적도 없기 때문에 끼어들면서 미안해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끼어드는 차를 보고 브레이크를 밟지 않으면 그저 사고가 날 뿐이다. 매번 염치없이(?) 무리하게 끼어드는 차를 향해 욕을 하느라 멘털을 더럽히느니, 그냥 나도 자연스럽게 끼어드는 법을 배워서 현지 문화에 순응하도록 하자.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라고 하지 않았는가?






 로마법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그럼 자카르타에는 법도 없는 것일까? 그럴 리가?! 자카르타도 엄연한 법치국가(?)다. 하지만 교통법규를 어기는 것에서 오는 효용이 법규를 지키는 수고로움 보다 크기 때문에 다들 교통 법규를 무시하는 것뿐이다. 

 

 자동차 간에 접촉사고가 나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경찰이 나서서 사고를 처리하고 사고 경위를 정확히 파악해서 과실 비율을 정확하게 가려줄까? 매우 심각한 대형 사고가 아니라면 아마 경찰은 코빼기도 안 보일 것이다. 행여 경찰이 교통사고 현장에 나타나더라도 자카르타 경찰은 보통 뒷돈 주는 사람의 편을 든다. 인도네시아 경찰은 장사꾼이다. 그래서 이 곳 사람들은 자동차 사고가 나도 경찰을 부르지 않는다. 가벼운 접촉사고가 나면 보통은 손 붙잡고 ATM으로 간다. 반드시 그 자리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고 끝내야지, 사고 현장에서 한 번 벗어나면 그대로 끝이다. 차량 번호를 적어놨다가 나중에 경찰에 신고해봤자 씨알도 안 먹힌다. 


 한 번은 내가 탄 택시를 어떤 차가 뒤에서 들이받았다. 그런데 뒤에서 들이받은 차가 그냥 후루룩 도망가는 바람에 난데없이 추격전이 벌어졌다. 결국 내가 탄 택시는 도망가던 차를 막다른 골목에 몰아서 세웠고, 택시기사는 사고를 낸 운전자를 연행하듯 팔짱을 끼고 ATM으로 데리고 갔다. 나는 그 모습을 택시 뒷좌석에서 다 지켜본 다음 내려서 다른 택시를 타고 집에 갔다. 한국 같았으면 승객 입장에서 뒷 목을 잡고 들이 눕는 시늉이라도 했을지 모르지만, 자카르타에서는 안 통한다는 것을 저들도 알고, 나도 안다. 그래서 그냥 곱게 집으로 돌아왔다.


인도네시아의 택시 Blue Bird _ 사진 출처: https://www.idnfinancials.com


 한 번은 어떤 사람이 뺑소니 사고가 나서 경찰에 접수하러 갔더니 사고를 낸 차가 어디 있냐며 신고하러 온 사람한테 오히려 되묻더란다. 이런 미친 경찰아! 뺑소니를 경찰인 니가 찾아야지 어디 있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경찰은 사고 차량의 소재 파악이 안 되면 수사가 불가능하다고 하더란다. 하지만 돈을 좀 내면 뺑소니 차를 한 번 찾아볼 수도 있지만, 찾을 수 있다고 확신은 없다는 얘기도 덧 붙이면서, 역시나 이번에도, 돈을 요구하더란다. 교통사고든 어떠한 사고든 문제가 생겼을 때 경찰과 엮이면 보통은 일이 더 복잡해지는 것이 인도네시아의 상식이다. 경찰에 높은 사람과 친해서 그 영향력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인도네시아 경찰은 마피아 조작과 비슷하기 때문에 함부로 건드려서도 안 된다. 만약 인도네시아 경찰이 내 글을 보고 이해할 수 있다면, 나도 처벌받을 가능성이 있다. 인도네시아에는 정부를 폄훼하면 처벌하는 법이 있기 때문이다. 하하하...


 차량 홀짝제 단속에 걸리거나, 갓길 주행을 하다가 경찰에 걸리면 무척 당황스러울 것이다. 경찰은 차를 세운 다음 차 유리를 내리라고 한다. 그리고는 운전석 안쪽으로 머리를 쑤욱 들이 밀고는(외부에서 안 보이도록 하기 위함이다) 경찰은 운전자를 향해 뜨거운 숨결을 내뿜으며 손가락으로 돈 표시를 한다. 언뜻 잘 못 보면 소심한 하트처럼 보이는 그 손 짓. 공식적인 교통 범칙금은 약 500,000루피아, 우리 돈으로 대략 4만 5천 원이다. 그리고 경찰이 요구하는 뇌물은 보통 5천 원 정도. 운전자가 외국 사람이거나 돈 많아 보이는 중국계 운전자를 상대로는 따블(1만 원)로 부르기도 한다. 대부분은 5천 원이든 1만 원든 주고 빨리 경찰의 불쾌한 숨결에서 벗어나는 것이 편하고, 돈도 아낄 수 있기 때문에 다들 쉽게 지갑을 연다. 그리고 경찰들은 재산 축적을 위해 쉬는 날에도 열심히 제복을 갖춰 입고 자발적으로 도로 위로 출근을 한다. 조코위 대통령은 뭐하나, 인도네시아 경찰 개혁이나 좀 하지!






 그럼 자동차 보험은 어떤가? 경찰은 도움이 안 될지라도 보험회사는 사고 처리를 도와주지 않을까? 역시 잘 못 짚었다. 인도네시아는 서비스 문화가 매우 후진적이다. 인도네시아의 자동차 보험은 사고처리를 돕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차 수리비를 대신 내주기 위해서 있는 정도로 보면 될 것이다. 그리고 수리 비용 결제 과정이 놀라울 정도로 느리다. 파손된 차량을 정비소에 맡기면 보험처리를 끝내고 수리된 차량을 돌려받기까지 시간이 정말 정말 오래 걸린다. 수리 기간 동안 대차 서비스 지원 같은 건 없다. 보험처리를 신청하면 차를 보름 정도 못 쓴다고 생각하고 맘 편히 기다려야 멘털이 안 상한다. 그래서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차가 조금 찌그러지거나 범퍼가 깨져도 차곡차곡 모으며 기다렸다가 고칠 부분이 대여섯 군데 정도 되면 수리를 한꺼번에 맡기고서는 한 번에 보험처리를 한다. 


 인도네시아에는 자동차 등록증 뒤쪽에 자동차 세금 명세서가 붙어 다닌다. 이 자동차 세금 명세서에는 SWDKLLJ (Sumbangan Wajib Dana Kecelakaan Lalu Lintas Jalan)라는 '의무교통보험'도 포함되어 있다. 나는 이런 것이 있는 줄도 모르고, 인도네시아는 대인 사고에 대한 보험이 없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인도네시아 자차 운전을 10년 가까이 한 현지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그런 보험이 없는게 확실하다고 우겼기 때문에 나도 그리 믿었다. 차량 파손을 수리하는 보험은 비싸고, 그래서 보험 가입을 하지 않고 운행하는 차량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사람이 다친 경우에는 자동차 등록증을 발급.갱신할 때 함께 납부하는 '의무교통보험'이 치료비를 보장한다고 한다. 얼마나 보장이 잘 되는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이런 보험이 있다는 것은 정말 다행스런 일이다. (잘못된 내용를 바로잡아 주신 @발리필렌님,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는 바람 쐬러 가고 싶을 때 ‘우리 드라이브나 갈까?’고 말하곤 한다. 자동차를 운전해서 교외로 가는 일은 즐겁다. 어딘가로 떠나는 것도 좋지만,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 자체에서 오는 즐거움도 있다. 자카르타에는 ‘우리 드라이브나 갈까?’와 같은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드라이빙이 바람이나 쐬러 갈 때 하는 편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지 친구의 말에 따르면 자카르타에서 자가운전 차량과 기사가 운전하는 차의 비율은 대략 6:4 정도 될 것이라 한다. 대략 10대 중 4 대는 전용 기사가 운전하는 차인 것이다. 이러한 통계마저도 자카르타에서 기사 없이 직접 운전하는 것이 힘든 노동임을 말해주는 지표가 아닐까? 


 자카르타에서 운전하는 당신에게 행운을 빈다. 오해 마시라. 당신의 운전 실력이 부족해서 행운이 필요할 이라는 뜻이 아니다. 자카르타는 운전할 때 정말로 행운이 필요한 혼돈의 도시이기 때문에 진심으로 행운을 빌어 주는 바이다. Gool luck!


우리 집에 과속을 즐기는 녀석이  한 명 있다.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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