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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아 Mar 01. 2019

오만과 편견

택시를 타고 치앙마이 도심을 벗어나 교외로 나가다보면 우리나라의 옛날 시골풍경 같은 모습이 펼쳐지곤 한다. 비쩍마른 소가 달구지를 끌고 있는 논밭을 보기도 하고, 차가 막힌 도로에서 밥이나 과일을 팔며 돌아다니는 아줌마를 보기도 한다. 우리네 옛날 시골 골목에서 마주치고 기절하게 놀랐던 들개떼들도 마주한다.


가끔 가게에 앉아있다보면 땅콩이나 꽃, 과일 같은 것을 들고 다니며 사달라고 하는 어린 아이들을 쉽게 만날 수도 있다. 그런 모습을 처음 맞닥뜨렸을 때 순간 스쳐지나가는 나의 생각은 ‘불쌍하다.’ 였다. 행상을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가엾다’ 는 생각을 하고, 발전이 되지 않은 시골풍경을 보면 ‘낙후됐다’ 고 생각한다. 어디까지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온 도시인의 눈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이다.



태국은 확실히 한국에 비하면 빈부격차가 심하고, 민도의 격차도 크다. 가끔 태국이라는 나라 전체를 한국에 비해 후진적이고 살기 힘든 나라로 규정하고 여행을 온 사람들의 무례를 본다. 그들은 모든 기준이 자본의 선진에 있는 듯이 행동한다. 후진국이라고 여겨지는 나라의 사람들에게는 마치 계급시대의 귀족처럼 하인을 대하듯이 막 대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함부로 말하고, 고마워하지 않고, 불쾌한 장난을 치면서 무례를 범한다. 그런 사람들을 태국 살이 중에 마주치면 한동안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고 불쾌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 경우를 목격하게 되면 한동안은 내가 태국인에게 서비스를 받거나 우연히 스치게 될 때라도 더 상냥하게, 더 깍듯하게 감사를 표현하곤 했다. 나의 그런 태도는 태국에 와서 무례하게 행동하던 그 사람들보다 훌륭하고 수준있는 태도라고 스스로 내심 그들과 차별을 두는 데에 있어 파생되었던 것 같다.



치앙마이에서 지내며 생각해보니 나의 그런 태도에도 문화우월주의가 조금은 섞여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도 나만의 판단 기준이 있었던 것이다. 저렴한 인건비에 고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은 가엾다, 어린 나이에 공부를 하지 못하고 행상을 다니는 것은 불행하다, 발전된 문명의 삶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항상 문명의 삶을 부러워만 할 것이다. 나도 모르게 내가 마음 속에 숨겨두고 있었던 판단의 기준이다.


처량하고 가엾다는 것은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고 누가 그렇게 정해준 것인가? 현대 기술 문화로 가득 찬 도시들이 밀집해있고, 많은 이들이 교육을 마땅히 받고 성장한다고 해서 그런 것들이 한 나라의 의식 수준을 상징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태국에 머물면서 만난 태국 사람들은 몇 달을 지켜봐도 참 예의바르고 선량하다. 대다수의 국민이 평등한 교육을 받고, 비슷한 수준의 문화 생활과 편의를 누려야 국민 수준이 높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편견이 태국에 와서 정말 많이 깨졌다. 오히려 한국에서 만났던 불특정다수의 사람들보다 태국에서 스쳤던 불특정다수의 사람들은 훨씬 여유가 있었다.


혹자들은 ‘상류층만 만난 것이 아니냐’ 고 물을 수도 있겠다. 절대 그렇지 않다. 방콕의 BTS (지상철) 에서 만나는 중산층의 회사원들부터 치앙마이의 길거리에서 만난 로띠 장수 할머니까지, 태국인들은 자신의 개인적인 사연이나 사정과 상관없이 판단과 편견을 배제하고 사람을 평범하게 대할 줄 안다. 굳이 태국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상냥하고 친절하다는 것이 아니라 참 자연스럽고 무던하게 사람을 대한다는 것이다.


가만 보면 태국 사람들은 쉽게 누군가를 불쌍해하지 않고, 부러워하지 않는다. 오밀조밀 치밀하게도 짜여있는 나의 판단의 기준이라는 것이 그들에게는 없는 모양이다.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떠돌이 개들에게조차 어쩌지도 못할 동정심을 가졌던 내 자신이 한 장의 종이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뜨거운 뙤약볕에 팔리지 않는 과일을 한 꾸러미 들고 계속해서 걸어다니는 아주머니나 땅콩 봉지를 잔뜩 들고 여전히 거절당하고 있는 아이를 볼 때 마음 한 켠이 무겁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과일이나 땅콩을 20밧에 사주는 것 뿐이다. 내가 가진 것은 달랑 20밧의 알량한 자만심이다. 내가 얻는 문명과 문화의 혜택 이전에 어떤 모습으로 사람이 자연과 공존했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는지 전혀 모르는 어리석은 현대인인지라 그 기준으로 그리도 쉽게 모든 것을 판단하고 마음을 썼던 것이다. 태국은 한국보다 훨씬 문명과 그 이전의 모습이 공존한다. 그리고 사람들 역시 어느 한 쪽을 기준으로 그렇게 쉽게 판단하지 않는다. 그들의 조금은 무던하고 무심한 그 태도를 보고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다른 모습과 형태의 삶을 ‘그러려니’ 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될 때 비로소 위축된 몸도 조금 풀어졌다. 애써 과장되게 웃어보일 필요도 없고, 불쾌하다고 얼굴 찌푸릴 일도 없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니 치앙마이에서의 나도 과장된 친절과 감사를 버리게 됐고, 딱 그만큼의 감사만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의 삶을 동정하거나 걱정하는 대신 나와 다른 또 하나의 인생을 지켜보게 되었고, 각자의 나라마다 시대를 관통하는 속도가 다르다는 것도 이해하게 되었다. 마음의 근육이 풀어지니 얼굴의 근육도 유연해짐을 느낀다. 생각이 달라지니 표정이 달라진다. 그 때문인지 서울에서 써본 적 없던 얼굴의 근육을 쓰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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