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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아 Mar 01. 2019

사왓디카 컵쿤카

그랩 택시를 이용하며 알게 된 점 하나는 어떤 태국인이든 태국말로 인사하거나 감사를 표하면 더 좋아한다는 것.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치인데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어이없을 정도다. 한국에 놀러 온 외국인이 어눌한 말투로 ‘캄사함미다’ 같은 한국말을 더듬더듬 노력해서 말할 때 재밌으면서도 훨씬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생각해보면 해외에서 우리는 왜 그리도 자연스럽게 영어로 의사를 표현해왔던 걸까.


어느 나라를 가든 영어가 만국 공통어임은 명백한 사실이기는 하다. 하지만 간혹 프랑스나 스페인 같은 유럽권 국가나 중국, 일본 같은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우에는 종종 당연하다는 듯 모국어로 설명하는 경우도 많다. 한국에서는 외국인이 영어로 길을 물어보거나 질문을 할 때 다들 겁에 질려 뒷걸음질 치는 사람이 아직까지도 많다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영어에 대한 고정관념을 잘 보여주는 경우다.



치앙마이에서도 잘 살펴보면 중국인들은 너무나도 놀라울 정도로 당당하게 중국어로 말을 꺼내는 경우가 많다. 이 곳에서 나는 태국인으로 가끔, 중국인으로는 곧 잘 오해받는 편인데, 중국인들의 경우 내가 중국인이라고 어떻게 확신하는지는 모르지만 다짜고짜 중국어로 말을 걸 때가 있다. (물론 누가 봐도 태국인인 사람에게도 중국어로 잘 물어본다.)


그런 태도가 특이하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면 당연히 영어로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 나 자신도 누군가의 눈에는 특이하게 비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국인들의 입장이라면 왜 영어권 국가의 국민도 아닌 내가 당연하게 영어로 묻고 답하는 건지 모를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의 언어인 태국어로 간단하게라도 질문하고 인사할 수 있다면 조금은 또 다른 사고의 장벽을 깨는 것이 아닐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사왓디카” 와 “컵쿤카”, 내 숙소가 위치한 골목길을 태국어로 말하는 것뿐이지만 이 짧은 단어로도 태국인들은 은근히 반가워한다. 누군가가 해외여행에 가서 의사소통이 안되면 답답하지 않냐고 물었을 때 “영어가 짧아도 얼마든지 통해.”라고 당연하게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그 당연함을 살짝 내려놓고 떠나는 나라의 언어를 조금이라도 들여다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단어 단어로 억양도 다 틀리는 엉성함이겠지만 허술한 그 노력이 내가 머무는 국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물론 나도 짧은 일정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올 때는 미처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머무는 시간이 한 달이 되고, 두 달이 되어 가니 ‘이 나라의 언어를 조금이라도 더 알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어딜 가든 영어로 간략한 설명이라도 다 쓰여있기에 생활하는 데에 큰 불편은 없지만, 차를 타고 지나가다 보이는 광고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방송을 들을 때, 여기저기 붙어 있는 태국어 글자들을 볼 때마다 무척 궁금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오래 지내다 보면 그 나라에 대해 관심이 깊어지는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


기회가 되어 태국에 다시 한 달 이상 머물게 된다면 그때는 사전에 간단한 태국말 몇 가지 정도는 외워가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물론 글자가 엄두도 안 날 만큼 어렵게 생긴 것이 학구 욕을 저하시키기는 한다.


" ................. "


치앙마이 여행길에 택시를 타게 된다면 태국어로 이렇게 말해보자. “사왓디카. 빠이 라차담넌(라차담넌은 치앙마이의 골목길 이름 중 하나다. 머무는 숙소의 골목길을 알아두자.) 쏘이(‘골목’이라는 뜻) 혹 (숫자‘6’. 숙소가 몇 번째 골목인지 알아두자.) 카. (빠이(사이에 갈 곳)카 는 ~에 갑시다)”.


택시를 타자마자 이렇게 말한다면 택시기사가 신나서 태국말로 말을 걸 수도 있다. 나 같은 경우는 기사가 “Can you speak Thai?”라고 반색을 표하며 영어로 질문했지만, “Sorry, I can’t. It’s all.”이라고 대답해야만 하는 슬픈 사연도 있었다.


외국인들이 워낙 영어만 사용하고 태국어는 거의 하지 않으니 현지인들의 경우에는 저렇게 완성된 한 문장만 말해도 태국어를 제법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알아둔 태국어를 현지인에게 처음 입 밖으로 꺼낼 때는 ‘못 알아들으면 어쩌지. 비웃으면 어쩌지’ 같은 생각을 하기 십상이지만, 몇 번 해보면 택시를 탈 때마다 “사왓디카~” 하면서 들어가곤 한다. 못 알아들으면 다시 영어로 하면 그만이다.


사실 ‘여여’가 태국어로 ‘많이’라는 것을 처음 알아내고 식당에서 “팍치(고수) 여여”라고 말했다가 자꾸 종업원이 “NO팍치(팍치 빼준다는 뜻이었던 듯. 동양인들이 워낙 ‘마이 싸이 팍치’ (고수 빼주세요.)를 외치니 동양인만 보면 ‘팍치는 뺀다’는 생각이 강한 것 같다.)” 를 남발하는 통에 “many many!!!”라고 외치면서 손짓으로 둥글게 둥글게 바디랭귀지까지 해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 태국어도 성조가 있기 때문에 능수능란하게 말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렇지만 태국말로 마음을 표현하려는 어느 정도의 노력은 치앙마이에서의 장기 여행을 좀 더 상냥하고 귀엽게 만들어줄지 모른다. 망설이지 말고 한 번 해보자. 활짝 웃으며 인사해주는 태국인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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